오랜만에 웹소설 작가로 회귀합니다

반년간 던져 놓은 내 캐릭터들과 마주하기

by 변방의 오타쿠

올해 초에 첫 작품이 나온 후로 슬럼프 아닌 슬럼프가 찾아왔다. 초심자 행운인지 뭔지 첫 작품은 무료 연재부터 반응이 소소하게 있었고 웹소설 쪽에서도 나름 유명한 출판사랑 계약도 하고. 물론 중간에 프로모션이라고 해서 광고 겸 홍보 행사 참여 문제 때문에 약간의 어려움이 있었지만 담당자님을 잘 만난 덕에 잘 풀려서 출간도, 그 이후의 상황도 말 그대로 '무난'하게 흘러갔다.


다만 처음이라서 기대가 컸던 걸까. 보통 웹소설 같은 경우에는 출간하고 나서 두 달 뒤에 첫 정산금이 들어오는데 정산금이 기대에 미치지 못해서 멋쩍었다. 먼저 웹소설 업계에 진출해서 활동하고 있는 선배 겸 친구에게 정산금과 장부를 고스란히 보여주며 내 작품이 망한 건지 아니면 적어도 평타는 친 건지 물어봤다. 수치를 계산한 친구가 내놓은 답은, 1에서 10까지 중에서 수치로 매기자면 내 스코어는 4정도. 성공보다는 실패에 가까운 결과. 이 말에 얼마나 눈물이 후드득 쏟아지더라. 물론 여러 좋지 못한 조건 속에서 처음 치고는 선방한 케이스라고는 했지만, 첫 작품이라 애정도 컸던 만큼 아픔도 컸던 것 같다.


이런 와중에 이를 갈고 준비한 차기작의 반응이 시원찮았다. 무료 연재도 첫 작품에 비해 반응이 반토막. 첫 작품은 먼저 출판사에서 연락이 여러 번 왔는데 두 번째 작품은 출판사로부터 연락은커녕, 출판사 문을 두드리고 다녀도 문전박대를 당하기 일쑤였다. 그나마 다행인 건 취업이든 투고든 늘 하는 생각은 하나라도 잘 되면 되는 것. 다시 말해 한 출판사라도 OK 사인을 보내준다면 그걸로 이미 반은 성공한 셈이라고 볼 수 있다는 점. 이 말을 하는 건 당장 출판사 방향으로 절이라도 올리고 싶을 만큼 차이고 차이던 나를 품어준 출판사를 만났다는 소리.


그런데 말입니다. 매화마다 사사건건 댓글로 태클을 거는 분의 등장이라, 이거 재미있어지겠는데? 상황을 직설적으로 적어 보자면, 차라리 욕을 박았더라면 깔깔 웃으며 신고를 눌렀겠지만 정중하고 예의 바르게 맥이는 느낌, 뭔지 알지? 멘탈이 건강하고 튼튼하신 분이라면 그 댓글을 보고 '음, 그렇군요! 당신의 의견이 일리가 있어요!'하고 넘어가거나 수용했겠지만, 안 그래도 반응도 시원찮은 상황에 매화마다 달리는 댓글 중 하나가 그렇게 초를 치고 앉아 있으니. 하. 작가 쉽지 않다.


그래서 어떻게 됐냐고요? 일시 정지 버튼을 눌렀습니다. 즉, 휴재 모드 돌입. 뭐 이런 근성 없는 놈, 멘탈 약한 놈, 쿠크다스 같은 녀석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긴 합니다마는. 내 글이니까 자기변호를 해보자면 첫 작품은 객관적으로 망했다고 하지, 차기작은 반응이 시원치 않지, 거기에 매화마다 예의 바르게 속을 박박 긁는 독자까지 등장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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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가끔 까먹는 내 직업이 한 개가 있었으니. 바로 회사원. 아차! 나 회사원이었지? 삼시세끼 주고 커피도 주고 간식도 주고 추울 때는 난방 틀어주고 더울 땐 에어컨 틀어주는 회사가 돈 따박따박 주면서까지 날 먹여 살려 주고 있는데 내가 굳이 머리카락 뽑아가며 거친 눈빛과... 가사 뭐지? 아무튼 그런 세상에서 싸워야 할 필요가 있나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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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 설명

1. 원고 인도일까지 한 달쯤 남음

2. 친구랑 이런저런 상담 진행하다 원고 이야기가 나옴

3. 친구가 "계파 하지 말고 걍 써" 스킬 시전

4. 울면서 출판사에 원고 인도일 조정 요청

5. 출판사의 따수운 격려를 받음

6. 짝사랑 거하게 망함 <- now



아잇, 잠깐만! 또 네이버 블로그에서 하는 말 같이 쓰고 있잖아? 브런치의 언어랑 블로그의 언어가 다른데 짤을 쓰면 저도 모르게 블로그의 언어로 변경됩니다. 좀 쓰다보면 다시 브런치 언어로 돌아오니 조금만 버티세요.


5번과 6번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지요? 싶겠지만요. 저도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깨달았습니다. '나 차였구나!'라는 걸요. 그래서 펑펑 울다가도 한편으로는 '아, 이 감정을 소설로 써먹으면 개꿀...' 이런 생각을 하고 말았습니다. 어느 극한 상황을 마주해도, 설령 눈물 콧물 쏟을 만큼 서러움에 휩싸여도 마음 한편에서는 그 순간의 모든 것들을 글감으로 생각해 버리는 걸 보니 아무래도 진짜 글러 먹은 작가가 된 모양입니다.


흔히들 글쓰기의 긍정적인 힘 중 하나가 치유라고들 하죠. 글을 쓰면서 내면의 나와 마주하고 또 문장이라는 형태로 보이지 않았던 감정들을 구체화하면 객관적으로 내 감정들을 바라볼 수 있다고 합니다. 어쩌다 보니 이번 작품이 '짝사랑'을 소재로 한 작품이라 거하게 망한 짝사랑으로 인해 파도처럼 밀려왔던 서러운 감정, 상처에 눈물이 닿아 아프고 아팠던 경험을 잘 녹일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렇게 저의 감정과 경험을 먹고 자란 캐릭터들이 저와 달리 해피 엔딩을 맞이하게 된다면요. 저는 그제야 아픈 짝사랑, 첫사랑과 오롯하게 이별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나 역시 치유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품어 봅니다.


덧붙여 얼마 전에 읽은 책에서 이런 말이 나오더라고요. 책을 만드는 사람은 책이 이 세상에 나오고 나서도 마지막 순간까지 내 책을 책임져야 한다, 라는 비슷한 말이었는데요. 곰곰 생각해 보면 이 캐릭터들과 이 캐릭터들의 이야기가 세상에 태어난 순간부터 그들의 엔딩까지 무사히 이끌어 가야 하는 건 오로지 작가뿐이더라고요. 제가 오타쿠다보니 캐릭터도 하나의 생명이자 저들만의 세상에서 살아 숨 쉬는 존재로 여기고 있어서요. 제 인생은 미생이지만 그들의 인생을 미완으로 남겨둘 수가 없어서, 내 애들은 내가 책임져야겠단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런 의미로! 다시 적어봅니다.


본업 오타쿠.

부업 회사원, 출판사 대표, 그리고 웹소설 작가!


바쁘다, 바빠. 현대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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