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첫 대작 뮤지컬 관람기
지난주 뮤지컬 <엘리자벳>을 관람했다. 평소 뮤지컬을 즐기는 취미는 전혀 없지만, 교직원공제회 이벤트에 응모해 두었던 것이 당첨되었기 때문이다. 뮤지컬에 대한 소양도 없고, 캐스팅과 관련해 논란이 있었지만 어찌됐건 주어진 기회는 누려야 하지 않겠는가.
생전 처음 뮤지컬 전용 극장을 방문 했고, 부인과 함께 포토존에서 사진도 찍었다. 관람객 한 분은 인스타용 사진 촬영에 매우 익숙해 보였다. 뒤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의 눈총을 견디는 강인함, 짧은 시간 동안 다양한 포즈를 펼치는 순발력, 전문 모델 뺨치는 시선과 발 끝 처리의 전문성 모두 인상적이었다.
공연도 참 좋았다. 무대는 웅장했고 배우들의 노래와 연출도 훌륭했다. 연출진과 배우들의 노력과 소모 비용을 생각하면 비싼 티켓 가격도 이해가 됐다. 시나리오 자체가 그다지 흥미가 없었고, 여성에 대한 시선이 시대에 맞지 않게 낡은 부분이 느껴졌지만, 3시간이 빠르게 지나갔다. 다만 이야기의 개연성보다는 노래와 연출로 감정선과 각 장면의 임팩트를 살리는 것이 뮤지컬의 포인트라는 것도 알게 됐고, 뮤지컬 <캣츠>는 흥했지만 영화 <캣츠>는 망한 이유도 알 것 같았다.
인사는 이미 끝났네?
공연이 끝나고 감동의 여운이 남았을 때, 출연한 배우나 관련 기사를 검색해 보았다. 그런데 이상했다. 한창 전국을 돌며 해당 공연이 진행 중인데, 주연 배우의 공연을 끝낸 소감을 담은 기사가 이미 여기저기 넘쳐 흐르고 있었다.
이미 공연 소감이 나온 이유는 단 하나였다. 서울에서의 공연이 끝났기 때문이다. 심지어 뮤지컬 원작자도 서울에서의 마지막 공연에 특별히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뭔가 억울했다. 아직 지방 공연이 엄연히 진행 중이지만, 운영사는 서울 공연을 실질적 피날레로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른 지역에서 공연이 끝났을 때 같은 수준의 이벤트는 벌어지지 않았다. 내가 관람한 지역도 마찬가지다. 원작자가 다시 공연장을 방문하지는 않을 것 같은데, 올해의 공연 마무리를 기념하는 의미에서 참석했다면 최종 공연 장소인 대구가 그 장소로 더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올해의 최종 공연이 끝나는 순간에도 별도 인사를 할 수 있다. 하지만 서울만 특별대우를 받은 것은 분명하다.
지방민이 느끼는 일상의 차별
이번 사례 말고도, 지방민으로서 느끼는 차별은 일상에서 항상 느낀다. 나는 출근길에 장성규 아나운서가 진행하는 굿모닝FM을 듣는다. 코너 중 하나는 서울 교통상황 소식이고 진행자가 몸소 코너를 이끈다. 서울에서 출퇴근을 하지 않는 사람이 이 코너를 굳이 들어야 하는 이유는 없지만 라디오 연출진의 머릿속은 서울 사람들로만 채워져 있다. 내가 필요한 교통 상황은 쉬어가는 광고 시간에 요약식으로 특이사항만 간단하고 빠르게 훑고 지나간다.
TV예능을 보다보면 출연진이 서울의 특정 지역을 가지고 당연히 서로 아는 상황이라는 것을 전제하고 이야기한다. 물론 나는 알아듣지 못한다. 한남대교니 마포대교니 하면서 서울 사람들만 아는 개그도 나온다. 나는 전혀 모르겠는데 그들은 뭐가 그렇게 웃긴지 낄낄댄다. 무슨 면적 이야기가 나오면 기준은 항상 여의도가 된다. 여의도가 어느 정도로 큰지 별로 감이 오지 않고 알 필요도 느끼지 못한다. 일기예보에는 서울 상황이 항상 전국을 대표하는 제목으로 걸리고 내가 사는 지역과는 전혀 맞지 않을 때도 많다.
모든 인프라와 기반 시설이 서울과 수도권 중심으로 운영되고 지방의 경제력을 빨아들이고 있는 현실을 당장 쉽게 바꿀 수는 없다. 하지만 서로 조금만 배려하고 고민하면 바꿀 수 있는 장면조차 지방민에 대한 고려 없이 서울만 기준으로 삼는 것은 많이 아쉽다. 대중을 대상으로 콘텐츠를 생산하는 업종에 종사한다면, 좀더 넓고 배려 깊은 시야를 갖춰주시길 부탁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