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연하남 May 28. 2022

쇼핑몰 나들이, 이렇게 버거울 수가

비장애인 성인만을 위한 건축 설계의 문제

나들이 겸 근교의 아울렛을 들렀을 때의 일이다. 거주지와 어느 정도 거리가 있는 곳이기에 자주 방문하는 곳은 아니었고, 아기들과 동행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이전에 방문했을 때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는데, 예상하지 못한 난관을 만났다. 걷지 못하는 아기들이 유아차에 타고 있었기 때문에 에스컬레이터는 이용할 수 없는 상황인데, 엘리베이터를 찾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동 약자에 대한 배려가 없는 공간

이곳은 총 3층으로 이루어진 쇼핑몰이다. 그런데 1층에 위치한 엘리베이터는 2층까지만 이동이 가능하며, 3층으로 가려면 2층에서 내린 후 다른 엘리베이터로 이동해야 한다. 그런데 2층에 있는 엘리베이터를 찾기 어려워 한참을 헤맸다. 이곳이 엘리베이터로 1층에서 3층까지 한 번에 이동할 수 없게 설계된 이유는 명확하다. 2층도 구경하며 돈을 쓰라는 것이다. 유아차가 있는 가족이나 휠체어를 탄 사람이 겪을 불편함은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쇼핑몰은 나름대로 아기를 동반한 가족을 배려하는 구색은 갖추었다. 유아차를 대여해주는 안내소와 수유실을 구비한 것이다. 문제는 이곳이 모두 3층에 있다는 것이다. 주차장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곳이기도 하다. 유아차를 대여하기 위해서는 아이가 걸어오거나 어른이 안고 와야 한다. 에스컬레이터에 아기를 안고 타면 위험하니 또 엘리베이터를 찾아야 한다. 어른 1명이 아기 2명 이상을 보호해야 하는 경우 이곳을 방문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마 이곳을 설계한 사람은 비장애인 남성일 것이다. 결혼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유아차를 끌고 아내와 함께 외출해 본 경험은 거의 없을 것 같다. 장애인들을 만나 대화해본 적도 없을 것이다.


배려가 담긴 건축 설계의 근본은 모두의 참여

휠체어를 탄 사람과 아기를 동반한 고객을 배려한다면 엘리베이터는 눈에 띄는 곳에 설치해야 하며, 유아차를 빌릴 수 있는 안내소와 수유실은 3층이 아니라 아울렛 입구의 눈에 띄는 곳에 있어야 한다. 엘리베이터는 1~3층을 한 번에 오갈 수 있어야 한다.


돌이켜보면 쇼핑몰뿐만 아니라 우리가 출입하는 아파트, 도서관, 학교, 각종 공공기관 등은 과연 충분히 다른 모습을 갖추고 있을까. 구색 맞추기 식으로 마련해놓은 장애인용 편의 설비들은 제대로 이용되고 있는 걸까. 집 근처에 조성되어 있는 산책로에 오토바이 진입을 막는 용도로 설치된 구조물이 아기들이 탄 유아차까지 막는 꼴을 보면 여전히 갈 길은 멀어 보인다.


어떤 건물이나 각종 구조물을 설계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면, 아마 사회적 약자의 입장을 자신의 삶에서 겪을 일이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다. 이들이 아무리 자기들끼리 여러 변수를 고려한다 해도 직접 겪지 않는 불편을 모두 파악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면 다른 방법은 결국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는 것이다.


전문가뿐 아니라 아기를 키우는 부모, 어린이, 장애인 등 이동 약자로 볼 수 있는 사람들에게 설계를 미리 제시하고 불편이 예상되는 부분을 확인하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 번거롭다고,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하지 말고 그런 시스템을 구축하는데 예산과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장애인이 도서관에 출입해 책을 찾는 것이 쉬워지고 아기들이 동행해도 이동에 불편을 느끼지 않는 사회가 뿜어낼 수 있는 에너지는 그 비용을 상쇄하고도 남을 것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