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 개그, 언제까지 할 건가요
개인의 동의를 빌미로 혐오를 허용할 수 없는 이유
학급 공식 돼지의 공개 처형식 체험
초등학생 시절 이야기이다. 나는 초등 5학년생이 되었고 수련회를 가게 되었다. 수련회를 가면 저녁에 레크리에이션을 한다. 조용한 범생이였던 나는 그냥 앉아서 조용히 행사를 관람했다. 그런데 진행자는 갑자기 각 반 별로 엉덩이가 가장 큰 사람을 한 명씩 무대로 데려오라고 했다. 당시 나는 의학적으로 중등도 비만이었고 반에서 뚱뚱하다는 취급을 받고 있었다. 평소에는 나와 별로 말도 섞지 않았던 같은 반 남학생들이 나를 억지로 데리고 나왔다.
무대는 곧 나처럼 끌려 나온 학급 공식 돼지들로 채워졌다. 진행자는 도살장에 끌려 나온 돼지들의 공개 처형식을 진행했다. 열심히 노력한 돼지가 소속된 학급에게 포인트를 부여한다며 온갖 재주를 부리게 했다. 그중 기억나는 것은 엉덩이 춤을 강요한 것이다. 나는 결국 엉덩이를 열심히 흔들었다. 즐거워서가 아니라, 아무것도 하지 않고 무대를 내려갔을 때 학급에서 받을 원망의 눈초리가 두려웠기 때문이다. 나의 신체는 그렇게 전시되고 다른 학생들의 웃음거리가 되었지만, 나는 어떠한 항의도 하지 못했다.
신체 혐오 개그, 여전하네요
아기들이 마지막 분유를 깔끔하게 잘 먹고 빨리 잠들어줘서 아주 기분 좋은 저녁이었다. 아내와 함께 빨래를 개면서 TV 채널을 돌려 보던 중 오랜만에 <코미디 빅리그>를 시청했다. 그런데 한 코너에서 남자 개그맨이, 여성 개그맨이 화장을 하는 행동에 대해 튀김옷을 입히는 중이냐는 멘트를 했다. 그 여성 개그맨을 돼지에 비유한 개그였다. 관객들은 크게 웃었다. 인정하긴 싫지만 나도 웃고 말았다.
이는 전형적인 신체 혐오 개그다. 사회적 기준으로는 이제 이런 것이 옳지 않다는 것을 어느 정도 인식한 시대라고 생각하는데, 여전히 이런 수준의 코미디가 전국에 방송되고 있다. 조롱 대상으로 설정된 여성 개그맨들은, 물론 이 개그에 동의를 했기에 상황극을 구성했을 것이고, 매주 비슷한 방식의 콘셉트를 사용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타인에 대한 조롱이, 개인 몇 명이 동의했다고 해서 이렇게 합법적으로 공공연하게 전파를 타도 되는 걸까.
일상에서 가해지는, 타인의 신체에 대한 혐오
타인의 신체적 특징을 빌미로 그를 조롱하거나 괴롭히거나 상대해주지 않는 것이 옳지 않은 행동이라는 것은 이제 사회 구성원 대부분이 알고 있다. 그런 짓을 하는 사람들도 그게 옳지 않고 비열한 행동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정작 조롱당하는 사람들은 이에 반발하면 생길 인간관계의 손상을 우려하며 속은 썩어 들어가도 겉으로는 동의한 척하고 아무렇지 않은 척, 쿨한 척하고 넘어간다. 실제로 조롱 대상이 되는 개그맨과 비슷한 체형을 가진 사람들 가운데 자신에 대한 조롱을 웃어넘길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이들은 동의를 하지 않은 상황에서 무차별적으로 비난 혹은 조롱에 직면한다.
왜 비열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은 당당하게 웃고, 조롱당하는 피해자가 숨게 되는 걸까. 여러 가지 이유를 들 수 있겠지만, 이런 식으로 타인의 신체를 비하하는 개그가 횡행하는 현실도 한몫하고 있음을 부정하기 어렵다. 눈앞의 여성이 돼지로 비하되는 순간, 관객 및 시청자들은 대체로 웃었을 것이다. 아무리 그것이 옳지 않다는 것을 배웠다 하더라도, 이런 조롱을 보며 웃고 살면 혐오를 경계하는 감수성이 옅어질 수밖에 없다. 사회 구성원들이 타인에 대한 조롱을 보고 즐기는 게 견제되지 않으면 일상에서도 그것이 너무 당연해져 버린다. 사회가 만든 이상적인 신체 기준에서 벗어난, 뚱뚱하다고 여겨지는 사람에 대해 쑥떡 거리며 무시하고 왕따 시키고 불쾌감을 대놓고 드러내는 게 통제되지 않는 것이다.
혐오 개그, 이제는 끝내야
지상파 코미디 프로그램 개그콘서트(이하 개콘)는 심각하게 재미가 없다는 비판을 들으며 시청률이 하락하면서 폐지되었다. 그런데 여전히 그런대로 인기를 모으고 있는 <코미디 빅리그>를 꾸려가고 있는 개그맨들 상당수는 개콘 출신이다. 일부는 유튜브에서도 활발히 활동한다. 이는 앞서 폐지된 프로그램은 개그맨들의 능력 부족으로 몰락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반영한다.
개콘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코너들은 하나같이 혐오 내지 조롱 대상이 있었다. 아프리카 부족, 가슴이 작은 여성, 뚱뚱한 사람, 재중동포, 그냥 못생긴 사람 등 가지각색이었다. 그런데 시대 흐름에 따라 이런 개그는 사회적 약자 혹은 타자에 대한 혐오라는 인식이 공유되면서 더 이상 이런 방식의 코미디는 적어도 지상파에서는 할 수 없게 되었다. 지상파에서는 혐오가 금지되는데, 케이블과 개인방송에서는 여전히 자극적인 혐오 콘텐츠가 넘쳐나니 개콘은 애초에 망할 수밖에 없는 구도가 형성된 것이다.
유튜브나 아프리카 TV에서 어차피 자극적 혐오 표현이 무차별적으로 방송되고 있으니 심의규정이 의미 없다고 여기는 사람이 점점 많아지는 것 같다. 나도 때로는 꽉 막힌 심의규정이 자유로운 표현을 가로막는 부분이 있다고 느낄 때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타인을 조롱하는 콘텐츠를 막는 것은 의미가 있다. 통제하기 어려운 곳에서 혐오 표현이 생산된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잘못됐다고 인식하고 긴장감을 유지시키는 것은 중요하다.
무방비 상태인 개인방송 콘텐츠 규제 방안을 사회적, 국제적으로 만들어가야 하는 것이지, 혐오가 범람하는 현실을 인정하고 손 놓을 수는 없다. 전파를 타는 모든 프로그램은 최소한의 사회적 책임이 있다. 대중이 보는 콘텐츠에서는 타인의 신체적 특징을 조롱하며 소비하는 것이 나오지 않아야 한다. 한 명이라도 그 개그를 보고 웃을 수 없다면 방송되지 않아야 한다. 모두가 웃을 수 있는 내용으로 코미디를 만들어야 한다. 불가능하다면 없는 게 낫다. 사회적 약자가 일상에서 더 웃을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