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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하남 May 01. 2022

장애인, 구분짓기와 응원 사이

<수상한 이웃> 에피소드를 통해 보는 장애인 조명의 딜레마

예능 <수상한 이웃>에 등장한 밝은 모습의 장애인

얼마 전, 아기들을 재운 후 부인과 함께 오랜만에 케이블 TV 채널을 살피던 중 <수상한 이웃>을 보게 되었다. 나름의 사연이 있지만 밝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조명하는 예능 프로그램인 듯 했다. 그날 소개된 분은, 골 이형성증 진단을 받고 매우 작은 체구로 살아가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배우지망생 장애인이었다.


내용은 감동적이었다. 모녀가 모두 같은 장애를 안고 있지만 좌절하지 않고 열심히 살고 있으며 사연의 주인공인 딸은 연극영화과에서도 아주 활발하고 재능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듯 했다. 학과 친구들과의 사이도 매우 친밀해 보였고,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자연스럽게 어울려 지내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한국 사회도 아직 갈 길은 멀지만 장애인이 사회에서 활동할 수 있는 반경이 점점 넓어지고 있는 것 같았다. 


방송된 에피소드는, 사연의 주인공(이하 주인공)이 학내 연극 오디션에서 목표했던 배역을 따냈다는 소식을 전하며 훈훈하게 끝났다. 아름다운 내용이었다. 그러나, 부인과 나는 뭔가 찜찜함을 느꼈고 왜 그런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 부부가 고민했던 부분을 하나씩 던져본다.


고민 하나, 주인공에 대한 특혜 문제

우선 즉시 문제를 느꼈던 것은 취재과정이다. 방송에서는 학과의 주요 활동 모습, 주인공의 오디션 준비 모습, 그리고 오디션을 심사하는 교수의 인터뷰도 나왔다. 오디션 실시 전, 해당 학과는 전국민에게 방송되는 프로그램에 장애인인 주인공이 오디션에 응시하는 모습, 그리고 그 결과가 방송될 것이라는 점을 인지했을 수밖에 없다. 학과 친구들이 인터뷰에도 응한 만큼, 학생들도 확실하게 이 과정을 목격했을 것이다.


주인공이 따낸 배역은 희곡 <리어왕>의 등장인물 코델리아였다. 코델리아는 리어왕의 막내딸로 다른 딸들에게 배신당한 리어왕을 구원하는 핵심 역할이다. 과연 심사과정에서, 오디션 과정 및 결과가 방송을 타게 된다는 것을 의식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만약 주인공이 합격하지 못한 결과가 방송에 나오게 되면, 결국 장애인에게 제대로 된 기회는 주지 않는다는 이미지가 학과에 씌워질 것을 우려하게 되지는 않았을까. 


심사한 교수들은 공정하게 심사했다고 주장할 것이고, 나도 그렇게 믿는다. 하지만 과연 동일한 배역을 가지고 경쟁했던 학생들은 그 결과를 공정하다고 인식할 수 있을까. 상당히 치열한 경쟁을 하는 과정에서, 특별하게 관심을 받는 것은 말그대로 특혜 소지가 있다. 특히 주인공은 오디션 전 프로그램 MC인 배우 하석진의 원포인트 레슨을 받을 수 있었다. 다른 학생들은 받지 못한 기회를 받은 것이며, 그 이유는 단지 주인공이 장애인이기 때문이다. 장애인이라고 해서 특별히 다른 호의를 베푼다면, 그것 또한 차별이다.


주인공을 취재한다면, 오디션과 관계없는 시기 혹은 오디션이 끝난 이후의 시기에 취재를 했어야 했다. 아마 프로그램 제작진은 1회 방송 안에 기승전결을 채우고, 주인공이 무언가를 성취하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했겠지만 이로써 오디션에는 부당한 압력이 행사되었다. 방송이 심사과정에 실제로는 영향을 주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증명할 방법은 없다. 경쟁에 임했던 학생들은 주인공의 아름다운 사연 완성을 위한 들러리가 되고 말았다. 주인공 또한 오디션 합격을 위해 엄청난 노력을 했겠지만, 그 결과를 온전히 자신의 노력에 따른 것으로 인정받기 힘들게 되고 만 상황이다.


고민 둘, 장애인은 남들과 달라야만 하는가

우리는 그냥 산다. 그냥 별다른 생각 없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산다.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한 이야기는 많은 방송의 소재가 된다. 유퀴즈, 한끼줍쇼, 인생극장 등 많다. 심지어 연예인들은 별다른 노력 없이 즐겁게 취미 활동만 즐겨도 출연료를 받는다. 


하지만 장애인은 그냥 평범하면 방송에 나오지 않는다. 불쌍하게 나와서 동정의 대상이 되거나, 주인공처럼 뛰어난 인격으로 뭔가 서사를 만들어야만 나올 수 있다. 평범한 학교에 다니고, 평범한 직장에 다니고, 퇴근해서 누워서 유튜브를 보며 노닥거리거나 친구를 만나 수다를 떨며 사는 보통의 장애인은 방송에 나오지 않는다.


이는 현재의 사회구조 내에서 남들보다 뛰어난 정신력을 갖추지 못하면 일상을 영위하고 꿈을 성취하기 어렵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이와 더불어, 방송 제작진을 포함한 비장애인들의 머릿속 장애인은 불쌍하거나 아니면 뭔가 특별한 사람으로 이분화되어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고민 셋, 관심 자체의 구분짓기 효과

매년 4월 20일은 장애인의 날이다. 학교에서도 매년 이 날짜가 되면 형식적인 가정통신문이 나가고, 창의적 체험활동 시간에 관련 교육 영상을 틀어준다. 하지만 상당수의 장애인들은 이 날을 그다지 반기지 않는다고 한다. 자신이 남들과 다른 존재임을 굳이 상기시키기 때문이다. 


주인공이 방송에 나온 이유도 이와 다르지 않다. 그는 남들과 다른 존재라고 인식되기에 방송 소재로 선택된 것이다. 장애를 극복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물론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사례를 보면서 용기를 얻는 사람들도 분명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를 조명하는 것 자체가 결국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구분 짓는 딜레마에 빠지고 만다. 장애인들이 가장 원하는 것은 자신들을 비장애인과 다른 존재로 여기지 않는 것이다. 내가 이런 내용을 쓰면서도 자꾸 비장애인과 장애인을 구분해서 이야기하는 것도 역설적이다.  


장애인이 특별하지 않은 세상 

장애인에 대한 차별이 완전히 철폐되었다는 지표로는 어떤 것이 있을까. 이 글에서 다룬 방송 영역으로 대입해 본다면, 주인공과 같은 사례가 더이상 특별하지 않아서 방송 소재로 매력이 없어 관심을 받지 못하는 상태가 아닐까. 궁극적으로는 장애인이라는 용어 자체가 사라질 때, 장애인 차별이 완전히 종식되었다고 할 수 있는 것 같다. 장애인들의 삶을 조명하고 그들을 돕는 사람들의 선의는 사회를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중요한 원동력이다.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그들을 도울 필요가 없고 따로 구분해 인식할 여지가 없는 사회를 지향해야 할 것이다. 선의를 실천할 때도 성찰이 필요하다는 것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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