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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하남 Dec 08. 2022

사틴은 언제까지 코르셋을 입어야 할까

날씬한 여배우가 여성 관객에게 미치는 영향

세계적인 뮤지컬 <물랑루즈>가 곧 한국에서 첫 공연이 시작될 예정이라고 한다. 주인공 사틴 역에는 뮤지컬 배우 아이비와 김지우가 선발됐고, 홍보성 인터뷰 기사가 나왔다. 해당 기사를 읽고 나니 마음이 편치 않다.


두 배우는 사틴의 메인 의상인 코르셋을 입고 연습해야 하는 어려움을 언급했다. 김지우는 골반 뼈에 멍이 들 정도였고, 아이비는 코르셋 장인이 "어느 각도에서든 완벽해야 한다"며 더 타이트하게 조이는 바람에 노래를 하기 힘들 정도라고 했다. 노래를 핵심 콘텐츠로 하는 뮤지컬인데 노래를 편히 하는 것보다 배우의 몸매를 전시하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 것이다.


배우들은 신체에 대한 학대를 당하고 있음에도 이를 자발적인 투혼으로 인식하고 있다. 스스로 오디션에 지원했기 때문이다. 물론 표면적으로는 그들이 코르셋을 입는 것을 선택한 것이 맞다. 하지만 여성 주연 배우를 뽑는 공연에서 날씬한 몸매를 요구하지 않는 곳이 없다면 그게 선택한 것이라고 볼 수 있을까?


189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만큼 당대의 모습을 묘사하는데 충실하는 것이 뭐가 문제냐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전통'과 '명성'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변하는 시대상과 사회적으로 요구되는 윤리를 반영하지 않고 그대로 구시대적인 모습을 재현하는데 그치는 것이 옳은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공연을 관람하는 여성들은 코르셋을 입은 사틴의 날씬함에 감탄하게 될 것이다. 반면 자신의 배가 너무 많이 나왔고, 팔뚝이 너무 굵으며, 엉덩이는 너무 쳐졌다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집으로 돌아가서는 저녁을 먹지 않을 것이며,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라면을 끓였을 때 죄책감을 느낄 것이다.


츄리닝을 입은 사틴을 기대하며

온라인의 일부 남성들은, 외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도 개인의 선택이라며, 탈코르셋 운동은 꾸며도 별 수 없는 여성들이 열등감을 상쇄하려고 일으킨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여성이 외모를 가꾸고 싶어하는 감정과 꾸밈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지나치다고 생각한다. 동물들도 이성의 선택을 받기 위해 외모를 꾸미는 행동을 한다.


하지만 일상에서 신체 관리를 하는 기준도 결국 사회에서 정한 기준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바디프로필을 찍는 것이 자기만족이라고 하지만, 날씬함의 기준이 아프로디테 여신상만큼만 여유로워져도 코르셋이 들어갈 정도로 허리가 마를 필요도, 스키니진이 들어갈 정도로 허벅지가 얇을 필요도 없을 것이다.


미디어와 패션 산업계에 의해 이상화되어 있는 여성의 몸매는, 기존에 남성들이 원했던 수준을 한참 넘어섰으며 여성의 건강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 사회적으로 주어진 다이어트에 대한 강박은 여성이 사회에서 펼칠 수 있는 다양한 가능성과 그에 맞는 능력 신장에 투자할 수 있는 노력과 시간을 갉아 먹는다. 극심한 다이어트로 인한 체중감소와 배고픔은 짜증, 집중력 결핍, 불안, 우울, 감정기복 등을 초래한다는 것은 과학적 사실이며, 이는 여성의 직무 수행 능력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여성에게 비정상적인 아름다움을 강요하는 것에 맞서는 사회적 움직임이 없진 않지만, 단발적인 메시지에 그칠 뿐 결국 대중문화를 장악한 코르셋은 해체되기는커녕 오히려 시각적 이미지를 장악하고 여성들의 내면을 더욱 잠식하고 있다.


많은 뮤지컬을 섭렵한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뮤지컬에서 여성 주연 배우는 코르셋을 소화할 수 있는 몸매를 요구받고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 2021년 인터파크의 뮤지컬 예매 비율을 보면 여성이 77.3%로 압도적이다. 많은 여성들이 자신들을 가혹한 다이어트를 강요하는 사회적 시선을 만드는 콘텐츠 제작 비용을 충당해주고 있다.


취미 생활로서 뮤지컬이라는 장르를 포기할 수 없다면, 묘사되는 여성의 모습에 대해 비판의식을 가지고 여론을 형성하는 것이라도 필요하다. 사틴이 코르셋을 벗고 츄리닝을 입은 채 공연을 연습하며, 노출을 강요하는 극장주에 맞서서, 배에 힘을 빼도 입을 수 있는 의상으로 여성의 주체성을 보여주는 공연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길 바라는 것은 지나친 기대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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