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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하남 Nov 28. 2022

여혐, 결핍에 대한 신포도 전략

나의 브런치북 <스윗남의 맨박스 탈출 표류기>는, 한국 사회에서 남성들이 여전히 기득권을 누리고 있으며 여성들의 권리 신장이 더 필요하다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 그러다보니 가끔 이를 인정하지 못하는 일부 남성들이 반발하는 댓글을 남기기도 한다. 댓글에서 나타나는 공통점은 공격성과 추상성이다. 자신이 옳다는 확신에 차서 윽박지르고 있으며, 구체적인 사실은 무시하고 논리는 없이 분노에 차 있다. 차분하게 논리적 허점을 말씀드리고 토론을 요청하면 사라진다. 무지도 권력이고 기득권이라는 것을 이렇게 다시 한 번 확인한다.


얼마 전에도 이러한 댓글이 하나 달렸다. 그 역시 분노에 차 있었다. 그는 나를 '남페미'로 규정하고, 나 같은 사람들은 방어기제로 페미 사상을 고집하고 있으며 내 이야기는 무언가 '결핍'되어 있는 것을 해소하기 위한 개똥 철학이라고 했다. 물론 차분하게 허점을 지적해 드리고 토론을 요청하니 다시 댓글은 달리지 않았다. 그 사람이 보기에, 아마 내가 매력적인 여성들의 선택을 받지 못하고 알파수컷들에게 여성들을 내준 패배감을 , 혹은 '퐁퐁남'이 된 자신의 처지를 인식했지만 현실을 부정하고 싶은 마음을 승화시키려고 '남페미' 짓을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실제로 내가 결혼해서 살고 있는 모습을 그 사람이 본다면 퐁퐁남이라고 생각할 지도 모르겠다. 부인이 먼저 출근을 하면 내가 아기들을 돌보다 어린이집에 보낸 후 늦게 출근을 하며, 밤에 밀린 설거지와 빨래 정리를 하는 것도 내가 절반은 넘는 것 같다. 부인이 친구를 만나러 나가면 혼자 아기들을 돌볼 때도 종종 있다. (부인 역시 다양한 장면에서 나와 비슷한, 혹은 그 이상의 노동을 수행하지만 그 사람은 아마 내가 일하는 것에만 주목할 것이다.) 연애경험 역시 부인이 더 많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내가 특별히 더 벌지는 않기 때문에 '퐁퐁남'으로서 자격이 충분한 것 같지는 않다. 여하튼, 그 사람은 여성 위에서 군림하며 소위 '남편 대접'을 잘 받고 사는 것이 정상이라 생각하는 것 같다.


유튜브에서 결혼정보회사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는 콘텐츠를 보면 참 재밌다. 결정사 직원, 혹은 여자들의 이해타산을 따지는 태도에 지친 남성들의 인터뷰가 자극적으로 방송되고 구독자 남성들은 다양한 여성 직군을 비하하며 잔치를 벌인다. 물론 그런 사례가 계속 발생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이 평범한 인연으로 평범한 연애를 통해 평범한 결혼 생활을 하는데, 그들 눈에는 튀는 일부의 사례만 보인다.


차분히 고민해보니, 그 '결핍'이라는 것은, '남페이' 타령하는 그들이 더 많이 느끼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에게 된장녀는 자신의 경제적 능력으로 사귈 수 없는 여성이라는 뜻이다.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은 사람들 역시 개별 행동과 사상이 여성 차별적일 수 있고 여성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을 수 있지만, 굳이 인터넷 상에서 여혐 콘텐츠를 생산하는데 열중할 가능성은 낮다.


여성들이 이리저리 재가며 결혼 상대를 찾아도, 어차피 그 조건을 충족할 수 있는 사람들은 크게 신경쓰지 않으며 오히려 그 매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편의점에서 100원 단위를 따져가며 간식을 골라야 하는 남자 눈에는 매일 스타벅스 커피 한 잔을 마시는 것이 된장녀로 보이겠지만, 건물주 아들에게는 아무런 감흥도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물론 나름의 안정된 일자리를 구하고 타인의 시선에 대해 당당할 수는 있는 정도의 남성들도 여혐을 하는 경우가 있지만, 결국 본질적으로 자신이 느끼기에 충분한 경제력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마음이 드는 것이다.

 

결국 경제적으로 안정된 환경을 구성하지 못해 여성과의 연애를 제대로 할 수 없거나 하기 힘든 경우에, 오히려 그 결핍을 해소하기 위해 여혐에 임한다고 볼 수 있다. 물론 그러한 경제력을 갖추지 못한 것이 그들의 탓만은 아니다. 사회의 다양한 구조적 모순이 작동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한 상황이 타인을 혐오하고 멋대로 재단할 권리를 주는 것은 아니다. 여성 전체를 멋대로 집단화해 혐오를 지속해봐야 삶에서 나아지는 부분은 없다. 스스로 더 비참해질 뿐이다.


나 역시 100원 단위를 따져가며 물건을 사야 하는 경제력밖에 없지만, 좋은 인연을 만나 결혼해서 아웅다웅 행복하게 살아간다. 그 이유는 첫째, 현실을 왜곡해서 인식하고 여혐을 할 시간에 자신의 일상에 충실했기 때문이다. 둘째, 여성을 집단화해서 재단하지 않고 각 개인을 존중하며 대했기 때문이다. 그 사람이 다시 이 글을 본다면, 신포도는 그만 쳐다보고 스스로를 잘 돌아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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