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을 할 때 지루하지 않기 위한 선택은 두 가지로 귀결된다. 좋아하는 음악을 듣거나 라디오를 켜는 것이다. 나 같은 경우 보통은 usb에 넣어둔 노래를 듣는 편이지만, 매번 같은 돌림 노래에 지쳐 이따금 라디오로 돌아갈 때가 있다. 오늘이 그런 날이었다. 아마 라디오의 매번 똑같은 중간광고에 지치면 다시 나의 플레이리스트로 돌아갈 것이다.
모처럼 라디오를 켰는데, 처음 듣는 목소리의 DJ가 문자 사연을 읽어주었다. 사연을 보낸 사람은, 경상도 출신인데 서울의 직장에 취업했다. 그런데 아직 사투리 억양이 많이 남아있을 때 회사에 걸려온 전화를 받았더니, 거래처에서 조선족 직원을 쓰냐고 물었단다. 그리고 사장이 당분간 자신에게 전화를 받지 말라고 했으며, 자신 역시 조선족 취급 받은 것이 매우 억울했다고 했다. DJ 역시 아무런 당황 없이 정말 억울하셨겠다면서 가볍게 웃으며 다음 사연으로 넘어갔다. 조선족이라는 용어 사용은 아무도 문제삼지 않았다.
이 대화에는 한국 사회가 서울>수도권>지방>한국보다 '못사는' 외국 순으로 차별을 행하는 관행이 그대로 녹아있다. 사연을 보낸 사람 역시 지방 차별의 희생자이지만 그것이 문제임을 인식하지 못하며, 자기보다 사회경제적으로 낮은 위치에 있는 집단의 구성원으로 오해를 받은 것에 발끈하며 우월감을 표시한다. 정도의 차이일 뿐 그가 느낀 감정의 근원은 식당 종업원에게 반말을 하고 행패를 부릴 수 있는 자신감과 다르지 않다. 나보다 못사는 사람은 무시하고 함부로 대해도 된다는 전형적인 한국식 갑질 마음가짐이다.
조선족이라는 용어는 중국 정부 측에서 재중동포를 소수민족으로 간주하며 부여한 명칭이다. 세도정치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이어지는 수탈에 지쳐, 혹은 맞서 싸우기 위해 낯선 땅으로 이주했던 이들은 재중동포다. 한국 사회는 중국 정부의 동북공정에 분노하고 간도를 우리땅으로 되찾아야 한다고 소리치면서, 정작 그곳에 터를 잡고 개척하고 우리 문화를 뿌리내리는 데 기여한 이들을 타자화한다.
재중동포는 도덕적 관념과는 별개로, 경제적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한국에 들어와 살아가는 대다수 재중동포는, 법과 제도를 지키고 한국인들이 기피하는 3D 서비스 업종을 극도의 저임금으로 수행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들이 이런 일자리를 거부하고 일시에 돌아가버리면 가벼운 외식부터 간병인 구하기까지 모두 극심한 물가 상승이 초래될 것이다.(물론 그들의 저임금 노동을 방치하자는 뜻은 아니다. 기여하는 바에 따라 정당한 임금과 대우를 받아야 한다.)
보이스 피싱 등 일부 범죄에 재중동포가 연루되어 있는 것이 차별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한국인들에게 가장 많은 범죄를 저지르는 집단은 같은 한국인이며, 여러 통계를 봐도 특별히 재중동포의 한국인에 대한 범죄 비율이 높은 것도 아니다.
이들이 직장에 출근했을 때, 흘러져 나오는 라디오가 하필 내가 들은 것과 같았다면, 얼마나 큰 좌절을 느낄까. 백인들의 나라에서 한국인이 차별받았다는 이야기에는 온갖 분노를 쏟아내며 정의로운 척 하는 사람들도 차별의 가해자일 때는 아직도 자기 성찰이 안된다. 조센징이라는 모욕적 표현에서 벗어난지 얼마나 되었다고 이럴까. 한국 사회는 아직도 여전히 선량한 차별주의자가 너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