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코리아의 ‘러브 유어 더블유 2025’ 행사의 '핑크워싱' 논란이 한창이다. 패션업계의 위선은 오래된 문제다. 이 행사가 아무런 논란없이 모범적인 모습으로 진행되었다 한들, 이 업계가 여성에게 극단적인 마른 몸매, 비정상적인 체형의 이상화, 과소비의 미덕을 강요해왔다는 추악한 진실을 가릴 순 없다. 이 논란은 단순히 한 잡지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그보다 더 오래되고 단단한, ‘착한 척의 경제학’이 이 모든 것을 지탱하고 있다.
기업이 온갖 사회적 의미를 담은 캠페인을 벌이는 이유는 간단하다. 진짜 변화보다 싸기 때문이다.
정규직 채용 확대, 직원 복지 개선, 환경오염 물질을 줄이기 위한 생산 구조 개편, 해외 공장의 노동 조건을 윤리적으로 바꾸는 일 — 이런 건 모두 돈이 든다. 게다가 단기 실적은 나빠지고, 주주들은 불만을 가진다. 반면 캠페인은 싸다. 포토월 하나 세우고, 셀럽을 초대하고, “세상을 위한 작은 실천” 따위의 카피를 붙이면 된다. 비용은 적고 효과는 크다. 그 몇 장의 사진만으로도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브랜드라는 이름을 얻는다.
윤리를 경영하지 않고 윤리를 연출한다. 변화를 만들지 않고 변화를 이야기한다. 실제 공장을 바꾸는 대신 ‘착한 포스터’를 만든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세상을 바꾸고 있다”는 서사를 얻고, 많은 사람들도 속는다. 사람들은 분홍빛 리본과 ESG 광고를 보며 잠시 안도한다. 세상이 그래도 나아지고 있다고. 감동이 구조를 대신하고, 포스터가 현실을 지운다. 공감은 잘못된 현실을 바꾸는 동력이 아니라, 불편한 양심을 잠재우는 진통제가 된다.
기업이 사회를 위한다는 말은 언제나 단 한 가지 질문으로 걸러볼 수 있다. 그들의 ‘착한 말’이 아니라 그들이 감수한 손해가 무엇인가. 누군가의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이익을 포기했는가, 환경을 위해 제품 구성을 줄였는가, 광고비 지출을 줄이는 대신 임금을 올렸는가. 아무것도 감수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책임이 아니라 연출이다.
착한 척은 싸게 먹히고, 진짜 변화는 비싸다. 그래서 기업들은 오늘도 감동의 언어로 대중을 속인다. 마음껏 소비하고 싶은 대중도 속고 싶어한다. 그러나 우리가 정말 필요로 하는 것은 리본도, 해시태그도 아니다.
무엇을 포기할 의지가 있는지 묻는 용기이다. 그 질문이 사라질 때, 세상은 계속 착한 척을 하며 나빠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