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도새와 비둘기

갈등은 인류를 성장시킬까 퇴보시킬까

by 아싸이트

평일 오후 3시경, 사무실에서 창 밖을 보며 커피를 마신다.

꼭 해야할 바쁜 일을 마무리하고 잠시 쉬며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리기 위한 습관이다.


창밖으로 빼곡히 내려다보이는 빌라 건물 옥상에 비둘기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있다.

한 건물 주인은 비둘기들이 옥상에 앉는게 싫었는지 비둘기 모형 세 마리를 가져다 뒀다. 처음엔 오브제인줄 알았는데 비둘기들이 그 건물만 피해 앉는다. 생각보다 효과가 있나 보다.


커피를 두 세 모금 마실때 쯤 문득 ‘비둘기들은 넓고 안전한 곳도 많은데 왜 굳이 위태로워 보이는 안테나 위나 건물 난간에서 쉬는걸까’ 생각을 해본다. 이내 곧 ‘새는 날 수 있으니 전혀 위험하지 않겠구나. 쟤들한테는 추락사 개념이 없겠네'하고 인간 위주의 사고를 깬 스스로에 잠시 흐믓해 한다. 새삼스레 비둘기가 저렇게 비대해진 몸으로도 정교하게 날 수 있다는게 신기하다.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유명 휴양지인 인도양 모리셔스섬에는 비둘기보다도 훨씬 덩치가 컸던 도도새라는 녀석이 살았다. 그들에게 모리셔스는 지상 낙원이었다. 천적이 전혀 없었고, 따스한 햇살을 받고 자란 식물들은 사시사철 풍족한 열매를 공급해줬다. 야생동물에게 생존을 위협하는 천적이 없고 먹을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건 퍽이나 꿈같았을 것이다. 마치 건너 건너 아는 사람 중 한 명쯤은 꼭 있는, 투자로 대박을쳐서 젊은 나이에 은퇴하고 시그니엘에서 맘편히 산다는 사람들처럼 말이다. 어떻게 찾았는지는 몰라도 종족을 모리셔스로 인도한 리더 도도새는 아마도 모세급 대우를 받았을 것 같다.


도도새는 천적이 없는 모리셔스에서 몸무게가 20kg이 넘도록 커졌고 날개는 퇴화했다


이런 풍족한 환경은 대를 거듭하면서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을 것이다. 새로 태어난 도도새 눈에는 이 모든게 기본설정 값이다. 재벌집에서 태어난 아이처럼 말이다. 천적이란건 본적도 없다. 할아버지가 간혹 옛날 이야기를 해줬다. 젊었을때 네 엄마를 등에 업고 먹이를 찾아 이틀을 꼬박 정처없이 날았단다. 먹이가 이렇게나 많은데 에너지 소모가 큰 날개 짓을 했다는 말이 전혀 와닿지 않는다. 마치 KTX나 자동차가 있는 요즘, 10일 밤낮을 걸어 부산에 갔다는 옛날 이야기처럼 말이다. 그렇게 도도새는 불필요한 날개짓을 그만뒀고, 쓰임새가 없으니 자연스레 퇴화했다.


dodo bird food.png 먹을게 넘쳐났던 모리셔스에서 도도새는 날개가 퇴화됐다

모리셔스는 1505년 포르투갈 선원들에 의해 발견된다. 몸무게가 23kg이나 나가도록 피둥피둥해진 도도새는 급격한 시련을 맞는다. 우리나라에서 길러지는 식용 닭 무게가 1.5kg 수준인 것을 감안하면 이들이 선원들에게 얼마나 풍족한 식량이 됐을지 짐작할 수 있다. 평생 달려본적도 없을테니, 전력질주를 해봤자 문워크로도 따라잡혔을 테다. 사실 잡아먹힐 수 있다는 위협을 느껴본 적이 없는 탓에 도망조차 가지 않았다고 한다.


도도새가 그 동안 수천년을 살아왔을지 수만년을 생존했을지 모르겠지만, 이처럼 조그마한 변화에 대응하지 못해 단 176년만에 허망하게 멸절됐다고 한다. 도도새 입장에서는 마치 SF영화에 나타난, 어떤 짓을 해도 도망칠수 없고 공략할 수 없는 외계인 둘 셋이 어슬렁거리며 나타나 자신들을 싹 쓸어버리는 것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dodo bird crisis.png 도망칠 능력을 상실한 도도새는 인간에 의해 허무하게 멸종되고 말았다.

도도새가 이 사건을 역사에 어떻게 기록했을지 궁금해졌다. 평화롭고 풍족한 환경만을 추구해온 안이함이 불러온 비극으로 적었을까, 아니면 외세의 무자비한 침략과 학살을 비판했을까. 만약 도도새가 도착한 모리셔스에 천적이 들끓었다면 비행 능력은 퇴화하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발달했을지도 모른다.


저기 보이는 빌라 옥상의 비둘기 역시 도심속을 거니는것 만으로도 음식물을 충분히 섭취할 수 있다. 이들 역시 에너지가 많이 소모되는 비행보다 걷는걸 선호하는 듯 하다. 자동차가 접근해도 점멸 신호에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들처럼 발걸음을 재촉하는 시늉을 할 뿐 쉽사리 날개짓을 하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 집비둘기는 2009년 유해야생동물로 지정됐다. 개체수가 많아져 털날림이 심하고, 분변으로 인한 건물 부식이 이유다. 법적으로 금지된 건 아니지만 이후 공원에서는 비둘기에게 음식을 주지 말라는 현수막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불현듯, 이녀석들이 유해야생동물로 지정됐기때문에 더욱 오래 생존할 수 있게되진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이들에게 팝콘을 뿌려주는 사람들이 없다면, 비둘기는 먹이를 찾아 계속 날개짓을 하며 먹이를 찾아 날아다녀야 할테니 말이다. 어쩌면 인간이 의도치 않게 비둘기에게 생존 훈련을 해주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남녀 갈등, 세대 갈등, 정치 갈등같은 문제들도 유해동물지정처럼 생존력을 강화시키는 효과가 있을까 생각해본다. 평화와 화합을 방해하고 혐오와 분열을 조장하는 갈등은 해결돼야 할 문제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이런 갈등으로 인해 서로의 다른 생각을 확인하고 공존하기 위한 절충안을 찾는데 성공한다면 후대에는 '건강한 시련'으로 기록될 수도 있겠다. 물론 그러기엔 너무 위태롭고 점점 악화되는 듯 하다.


비둘기는 시련을 겪어 더욱 진화하게 될까 퇴화하게될까?

우리 모습이 뒤뚱거리며 걷는 비둘기들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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