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청에 따르면 국내 생산연령인구(15세~64세)는 2020년에 3,583만 명이었다. 2040년에는 2,676만 명이 된다고 한다. 20년 만에 일 할 사람이 무려 907만이나 줄어든다. 서울시 인구가 삭제되는 수준이다. 25%가 없어지는 셈이니 팀원 4명 중 1명이 사라질 것이다.
일 할 사람이 줄면 회사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구직자 우위의 시장이 생겨나, 취준생들이 가고 싶은 회사와 가기 싫은 회사가 나뉠 것이다. 많은 회사들이 인력을 구하는데 애를 먹을 것이다. 특히, 고급 인력을 구하기가 점차 어려워질 것이다. 우수한 인재들을 공급해 주던 일류 대학들의 경쟁력 자체가 낮아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어떤 일류 대학교가 매년 3천 명의 신입생을 뽑는다고 가정해 보자. 이 학교는 인구가 줄든 말든 늘 지원자가 넘쳐 우수 학생을 뽑는데 애를 먹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과연 그럴까?
전체 학생 수가 줄어들면 이 학교에 지원할 수 있는 학생도 줄어든다. 내신 1등급 같은 조건은 비율로 책정되기 때문이다. 모수가 줄어들면 경쟁률이 낮아지면서 점차 문턱을 넘기가 쉬워진다.
2000년도에 수능을 치른 응시생은 86만 명이었다. 당시 상위 3천 명이 되려면 287대 1의 경쟁률을 뚫어야 했다. 20여 년이 지난 올해 고3 학생은 40만 명이 안 된다. 상위 3천 명 안에 들려면 약 133대 1 경쟁률을 넘어야 한다.
절반도 안 된다. 20년 후에는 다시 절반이 될 수도 있다. 경쟁률이 계속해서 낮아지면 어느 지점에서는 뛰어난 인재 속에 조금은 덜 뛰어난 인재들도 섞이기 시작한다. 반복되면 경쟁력이 낮아진다.
대학들은 이 문제를 어떻게 바라볼까?
인구 문제는 어쩔 도리가 없으니 최대한 우수한 학생들을 뽑아서 잘 가르쳐보겠다고 할까? 어쨌든 기업들도 사람이 필요할 테니 삼성, 현대, SK에 취직시키는 비율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 안도할까?
그럴 리가 없다. 학교의 위상은 연구 실적에 달렸다. 이는 대학원이 결정한다. 대학원생이 없어서 수십 년 동안일궈 놓은 연구를 이어가지 못하는 어이없는 상황을 피해야 한다.
이름 있는 대학들은 파격적인 시도를 해 볼 수 있다.
이를테면 서울대가 베트남에 캠퍼스를 열어 해외 인재를 육성할 수도 있다. 황당한 소리 같지만, 모두의 니즈가 맞아 떨어진다면 말이 된다.
성장잠재력이 크고 젊은 연령층이 두터운 개발도상국에 학교를 세우면 얻을 게 많다. 우수한 인재를 더 많이 확보할 수 있다. 이들과 연구 성과를 내 학교의 국제적인 위상을 높이고, 기술 개발에 따른 지적재산권도 확보할 수 있다. 한국의 핵심 산업을 넘어 해당 국가에서 주목하는 산업 기술로 연구 영역을 확대할 수도 있다. 수준 높은 졸업생들을 배출해 더욱 많은 기업에 취직시켜 사회적 역할도 할 수 있다.
한국의 유력 대학을 유치하는 개발도상국 입장에서도 구미가 당기는 제안이다.
가령 베트남은 극단적으로 젊은 국가다. 1억 명에 가까운 인구 중 19세 미만 인구 비중이 무려 30%에 육박한다. 20세~39세 인구 비중은 32.5%다. 40세 미만이 인구의 60%를 넘는다는 말이다. 성장 잠재력이 매우 큰 인구구조를 가졌다. 그런데 국내 대학만으로는 미래를 이끌어 갈 우수인재를 키우기에 한계가 있다.
이런 국가들이 해외 우수 대학과 협력해 캠퍼스를 만들면, 단 숨에 뛰어난 연구 역량과 인프라를 흡수할 수 있다. 인재를 대거 육성해 낼 수 있을 뿐 아니라 해당 국가의 글로벌 기업에 취직시켜 첨단 산업에서 선진 기술을 배워올 수 있다. 이들이 자국에 돌아오면 그 자체가 국가 경쟁력이 된다.
학생들에게도 이득이다. 하버드, MIT, 버클리 분교가 한국에 들어선다고 생각해 보자. 뛰어난 교수들 밑에서 첨단 장비와 연구 인프라를 통해 우수한 연구실적을 낼 수 있다. 테슬라, 구글, 아마존에 곧바로 취직할 수 있다. 국내 기업에 취직할 때 보다 연봉을 2배~3배로 받는다. 가장 뛰어난 학생들이 몰리지 않겠는가?
다시 돌아와서 삼성, 현대차, SK는 서울대 호찌민 캠퍼스 출신 학생들을 뽑을까?
실력만 확실하면 안 뽑을 이유가 없다. 심지어 보다 경제적으로 우수인력을 채용할 수 있다. 악용해서는 안 되겠지만, 고용 유지에 대한 부담이 덜하다는 것도 장점이다. 문화적 차이나 언어적 차이에 대한 조율이 이뤄지고 나면 아예 현지 법인을 키울 것이다. R&D 센터나 공장이라도 지으려 할 것이다.
머지않은 미래에 서울대 호찌민 캠퍼스, 연세대 자카르타 캠퍼스, 고려대 뭄바이 캠퍼스 출신 신입사원들을 옆자리에서 보게 될 날이 다가올 수도 있다.
핵심은 분교가 생기든 아니든 미래 한국 사회에 외국인들이 많아질 것이라는 점이다. 이 것은 인구 구조상 피할 수 없는, '예정된' 일이다.
그날이 오면, 우리는 일터에서 외국인들을 쉽게 마주치게 될 것이다. 심지어는 피부색이 짙은 외국인들이 우리보다 더 급여를 많이 받는 모습을 보게 될 수도 있다. 이들이 팀장으로서 당신에게 지시를 내리기도 할 것이고, 회의실로 불러 업무처리에 대한 질책도 할 것이다. 반대로 당신이 이들의 관리자가 돼 한국인과 외국인 사이를 오가며 문화적 차이를 조율해야 할 수도 있다.
집으로 돌아오면 외제차를 타고 퇴근해 같은 아파트에 사는 동남아시아 국가 출신 외국인을 이웃으로 두게 될 것이다. 엘리베이터에 같이 타고 출퇴근을 하고, 분리수거장에서 마주치고, 커뮤니티센터 러닝머신에 나란히 서서 땀 흘리며 운동을 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필연적으로 지금까지 겪어왔던 세대 갈등, 남녀 갈등과 같은 이슈와는 차원이 다른 다양성의 시험대에 오르게 될 것이다.
한국 사회에 만연한 파벌 문화, 인종 차별, 혐오 발언 등으로 홍역을 치르지 않았으면 좋겠다. 심각한 직장 내 괴롭힘으로 불매운동 표적이 되고 전 세계적으로 망신을 당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기를 희망한다.
미리 준비를 해야 한다. 고정관념과 편견은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는다. 다양성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은 그 자체로 경쟁력을 갖추게 될 것이다. 새로운 기회로 가득한 세상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그렇지 않은 이들은 늘 갈등의 중심에 서고 문제를 일으킬 것이다. 날카롭고 부정적인 기분에 잠식된 삶을 살게 될 것이다.
그날이 오기까지, 응우옌 과장을 동료로 맞이하고 같은 인간으로 대할 수 있는 김부장, 박과장, 이대리가 많아져 있기를 기대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