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전무는 김팀장을 볼 때마다 머리가 끓는다. 시키는 대로만 하면 좋겠는데 무슨 대단한 일을 한답시고 허구한 날 이러쿵저러쿵 의견을 낸다. 하는 말을 들어보니 역시나 이미 다 겪어봤던 상황이다. 시간만 낭비했다. 이제 좀 더 매몰차게 이야기해야겠다.
“지난번에 이야기한 건 어떻게 됐어?”
“저희가 지금 그것까지는, 도저히 시간이 안 납니다. 이대리 퇴사하고 충원도 아직 안 해주셔서”
사람이 부족하다, 시간이 없다며 우는 소리도 지겹다. 언제 회사가 필요한 리소스를 다 갖춰놓고 일하라고 하던가. 주어진 상황에서 일을 해내는 게 능력이지. 답답하다.
“시간이 없어? 어제도 내가 술자리 하고 10시쯤 사무실 올라와보니 아무도 없던데? 집에 일찍 갔으면 새벽에라도 나와서 했어야지. 당신 이렇게 해서는 절대 임원 못 돼. 내가 어떻게 임원이 된 줄 알아? 내가 팀장 때 사장님이 상무셨는데, 나는 매일 7시에 출근해서 업무보고 메일 보냈어"
김팀장은 최전무와 대화를 할 때마다 속이 뒤집힌다. 이 양반은 업무의 본질은 생각지도 않고 오로지 윗사람한테 잘 보일 수 있는지만 관심이다. 자기 승진만이 지상과제다. 사장한테 잘 보일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면 허황된 이야기로 가득한 보고서를 작성하게 한다. 아무리 의견을 줘도 들어먹지를 않는다. 몇 달 후면 잘 못 짠 전략인 게 뻔히 드러날 텐데 큰일이다.
아무짝에도 의미 없는 수정의견은 왜 이렇게 많이 주는지, ver1.pptx 파일이 ver.15를 지나 final.pptx 파일명이 다시 최최종_진짜레알최종.pptx가 되어서야 끝난다. 기가 차는 건 초안과 최종본이 같은 내용이라는 거다. 이래서는 팀 본연의 업무를 할 수가 없다. 잇단 퇴사로 팀에 일할 사람도 없다. 사장이 충원을 하라는데도 최전무는 무슨 자신감인지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하겠다는 쉰소리를 하며 껄껄 웃으며 충성을 표한다. 안 그래도 매일 야근하는 팀원들한테 면목이 없는데 새벽까지 운운하다니 정말 대책이 없다.
꼰대는 어떻게 만들어지나
어딜 가도 자기 말만 하고 남의 이야기를 듣지 않는 꼰대들이 있다. 그들은 원래 꼰대였을까? 그럴 리가 없다. 그들 중 대부분도 우리처럼 사원, 대리시절 꼰대들을 보며 학을 떼던 이들이었을 거다.
나이가 들고 회사생활을 오래 하면 경험이 쌓인다. 꼰대들은 그 경험을 중요시한다. 의사결정을 할 때마다 수북이 쌓인 ‘과거 성공 경험’ 폴더를 열어 레퍼런스를 찾아 판단하고 결정한다. “그때도 이렇게 해서 성공했었지"라며 편향적 사고를 강화한다. 자신의 경험과 판단이 옳다고 믿기 때문에 자꾸 충고하고 잔소리를 하고 싶어 진다. 그래야 젊은 직원들보다 내가 우월하고 쓸모가 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왜 그렇게 자꾸 증명하고 싶을까?
우리의 뇌는 팀장이 되고 임원이 되면 테스토스테론과 세로토닌을 분출시킨다. 다시 말해, 권력을 가지면 내가 옳다는 자신감으로 가득 찬다. 무리한 행동을 일삼고 남의 이야기가 안 들리게 된다. 세로토닌 맛을 다시 보기 위해 지위와 권력을 계속해 갈구하게 된다. 마치 약을 끊지 못하듯 ‘꼰대짓’을 계속하게 된다.
그렇다. 최전무는 잘못이 없다. 뇌가 시키는 대로 반응하고 있었을 뿐이다.
이렇게 꼰대가 되면 공감 능력이 떨어진다. 꼰대들을 기능적 자기 공명영상 기기에 집어넣고 뇌 활동을 측정하면 재미있는 결과를 관찰할 수 있다. 남의 입장에서 생각할 수 있는 ‘거울 뉴런'이 일반인에 비해 덜 활성화된다. 간단히 말해 남의 감정을 잘 공감하지 못한다는 말이다. 이 때문에 우리가 꼰대들에게 힘들다는 호소를 하면, 근본적인 해결책으로 대화가 이어지기보다는 일이라는 게 원래 그런 거니 힘내라거나 '나 때는'으로 시작하는 30분짜리 이야기를 듣게 되는 거다. 이 처럼 벽 보고 이야기하는 체험을 반복하면 우리는 꼰대들을 피하거나 욕하게 된다.
꼰대가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꼰대는 우리가 기피하는 대상이지만, 슬프게도 우리 모두는 미래에 그렇게 될 가능성이 높다. 그만큼 뇌의 작용은 강력하다. 한 번 꼰대가 되어버리면 쉽사리 과거로 돌아가기 어렵다. 하지만 노력해 볼 수 있는 실천적 방법은 있다.
말을 독점하지 말자. 점유율을 30% 이상 가져가지 말아야 한다. 나머지 70%는 후배들이 떠들도록 하자. 우리는 흔히 직급이 올라갈수록 식사 자리에서든 회의실에서든 점차 발언 기회를 많이 얻게 된다. 경험이 쌓이니 할 말이 많아지기도 하지만, 내 말을 경청하는 것처럼 보이는 후배들이 있기에 굳이 더 입을 연다. 미안하다. 이들은 사실 당신의 이야기가 궁금하지 않다. 최선을 다해 사회생활을 하는 중이다.
잘 생각해보면 당신에게도 듣는 게 이득이다. 내 머릿속에 있는 말을 백 번째 떠들어봐야 어떤 지식도 쌓이지 않고 아이디어가 떠오르지도 않는다. 인사이트는 새로운 정보를 얻는데서 생겨난다. 듣다보면 생각보다 후배들한테서 배울게 많다.
말을 할 때는 최대한 짧게 해야 한다. 핵심을 먼저 이야기하는 습관을 기르자. 후배들은 당신이 하는 말에 집중력을 쏟는다. 우리의 말이 길어지면 후배들은 ‘기가 빨린다’고 한다. 했던 말을 반복하지 말고 과거 에피소드 방출도 참아내야 한다.
갑작스레 술 마시자는 말도 하지 않는게 좋다. 꼭 할 말이 있는 게 아니라면 후배가 마시자고 하기 전까지는 참아보자. 정 술이 마시고 싶으면 친구, 동기 혹은 선배들과 마시면 될 일이다. 후배는 당신이 술을 마시자고 하면 엄청난 고민에 쌓인다. 거절하기도 어렵고, 거절을 하는 과정에서 마음에 불편한 부채 의식이 쌓인다. 불필요한 불편함을 느끼지 않기 위해 자연스레 당신과 선을 긋고 싶어 진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