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데, 실력은 갖춰 놓고 하시는 거죠?
많은 직장인들이 회사에서 인맥 관리를 한다. 얻을 수 있는 효과를 경험했거나 목격했기 때문이다.
인맥은 시간과 노력 측면에서 효율을 높여준다. 간단한 예로, 타 부서 사람에게 업무 협조 요청을 해야 할 일이 생겼을 때 전혀 모르는 사이라면 요청사항과 이유를 논리적으로 구구절절 설명해야 한다. 절차라는 것도 있어서 오랜 시간을 축낸다. 하지만 친분이 있는 사이라면 간단한 전화 한 통만으로 필요한 것을 빠르고 쉽게 얻기도 한다.
인맥이 깊어지면 이 처럼 실무적인 효용을 넘어 영향력을 손에 넣기도 한다. 예를 들어, 인사 담당자와 가까워지면 공석이 된 어느 자리에 누군가를 추천할 수도 있고, 반대로 물망에 오른 후보자를 깎아내릴 수도 있다. 재무 담당자와 친해지면 보다 쉽게 예산을 타낼 수도 있다. 경영기획 담당자와 막역한 사이가 되면 극비리에 추진 중인 회사의 중대한 사업을 알 수도 있다.
이런 정보력과 영향력은 즉각적인 '힘'이 된다. 친한 임원에게 사내 정치에 활용할 수 있는 정보를 알려줄 수 있게 되고, 주변 동료들에게 거취에 참고할 수 있는 정보를 말해줄 수 있다. 부서 이동으로 고민하는 후배에게 거드름을 피우며 힘을 써보겠다고 말할 수도 있다. 빠듯한 예산으로 걱정하는 팀장에게 내가 해결해 보겠다고 큰소리칠 수 있다. 이런 효용은 단지 일을 잘 하는 것으로만 얻어지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인맥을 다지기 위해 많은 노력을 들이는 사람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술자리를 쫓아다니고 여기저기 모임에 얼굴을 들이민다. 역설적이게도 상당한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한다.
인맥을 다져 실권자와 호형호제 관계를 구축하는 데 성공해, 마침내 손에 넣은 것처럼 느껴지는 힘은 안타깝게도 당신의 힘이 아니다. 당신은 여전히 결정을 내리는 사람이 아니다. 손에 쥐었다고 착각하는 그 힘은 담당자가 바뀌면 블루스크린이 뜨며 갑자기 사라질 저장하지 못한 파일 같은 신기루같은 영향력이다.
나의 영향력은 스스로 가치를 만들어 내거나 상황을 변화시킬 수 있는 내재적인 힘에 국한된다. 이력서에 쓸 수 있는 이야기만이 내가 가진 힘이라는 말이다. 이런 힘이 있을 때만 인맥을 통한 시너지를 기대해야 한다. 회사 내에서 좋은 자리를 오퍼 받았을 때 실력이 없다면 선뜻 수락할 수 없다. 욕심이 과해 덥석 물어버리면 독약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비루한 능력을 스스로 까발려 떼어낼 수 없는 꼬리표를 달아놓는 꼴이 된다.
여우는 결코 호랑이 역할을 할 수 없다. 물론 하고 있는것 처럼 보이는 사람을 주변에서 마주할 수도 있겠지만, 이것은 본질적인 이야기다. 실력이 없으면 "지가 뭔데 누굴 추천하고 다녀"와 같은 소리와 함께 질시를 받게 된다. 자신의 능력을 넘어 과분하게 어깨에 힘을 주고 호가호위 하고 다녔으니, 패거리 잔당으로 싸잡혀 어느 좋지 못한 날 함께 순장당할 가능성만 높아지게 된다.
그러니 모임에 껴보려고 기웃거리는 사람이 되기보다는 모임을 만들 수 있는 삶을 지향해보기를 추천한다. 남의 모임에 끼고 싶은 인생에는 아무런 주도권이 없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누군가의 눈에 들기 위해 애를 쓰는 것 뿐이다. 간택당하기 위해 자신을 계속해서 포장하는 삶보다는 누구를 선택할 것인지 결정하는 위치에 갈 수 있어야 한다. 누군가를 추천하는 사람에서 추천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렇게 된다면 만들 수 있는 인맥의 질이 달라질 뿐 아니라, 해당 그룹 내에서 머리를 조아리거나 배시시 웃고 다니지 않아도 된다.
실력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는 없다. 하지만, 실력이 없다면 어떤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다. 설령 잠시 과분한 것을 손에 넣더라도 그 순간을 정점으로 하락세가 펼쳐질 가능성이 높다.
사실 정말 자신있는 실력과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회사 내에서 필요한 수준 이상으로 시간과 노력을 낭비하지도 않는다. 더 폭넓은 실력을 쌓기 위해 노력하거나 외부에서 활동하고 인맥을 다진다. 회사 내의 인맥은 회사 사이즈를, 즉 일개 월급쟁이가 얻을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설 수 없다는걸 알기 때문이다. 이들에게는 회사 안에서나 행사할 수 있는 작은 영향력이 필요하지 않다. 우물 밖은 훨씬 다채롭고 커다란 기회를 만날 수 있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나와 전혀 다른 시각을 가진 사람들, 전혀 다른 업계를 경험한 이들과 만들 수 있는 시너지 폭은 매우 크다. 회사를 벗어난 인맥에는 고용과 피고용의 관계, 평가자와 피평가자의 관계가 없다. 나이의 많고 적음으로 서열이 정해지지 않는다. 허튼소리를 걷어내고 진실되고 건설적인 대화를 할 수 있는 사이다. 어떤 역학관계에 사로잡히지 않고 서로의 가치를 온전하게 평가하고 평가받는다. 내가 만약 매력적이고 필요한 사람이라면, 인생을 바꿀 수 있는 제안은 이런 곳에서 들어온다.
즉각적인 보상과 인정욕구에 목이 말라 자신을 작은 세계에 가두면 사고의 폭도 작아진다. 자신에게 진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바라보지 못 한다. 생각을 좁게 하고 자신과 같은 부류와만 어울리려는 사람은 작은 사람으로 남게 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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