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이 내 가치를 결정짓도록 두지 마세요
간혹 일을 열심히 하는 친구들을 본다. 자발적으로 야근을 하고, 이미 완성된 일을 계속 들여다보며 디테일을 손 본다.
"김대리는 그렇게 열심히 일하는 이유가 뭐야?"
'실력', '성과', '기여', '달성', '가치', '증명', '인정', '만족' 등 여러 단어들로 포장된 답변 뒤에 숨겨진 참 뜻을 들어보니, 생각보다 많은 직장인들이 '인정받기 위해' 일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요컨대 존재 가치를 증명하고 사회에서 인정받는 자신의 모습에 만족감을 느끼고 싶다는 이야기다. 조직에 기여할 수 있고 필요한 사람이 되는 것. 이로써 스스로 가치 있는 사람이 되었다는 성취감을 맛보고 싶다는 말이다.
인정을 받으면 부차적인 이득도 따라온다. 남들보다 조금 많은 연봉 인상과 더불어 성과급을 받는다. 진급 심사에서도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달콤한 이득을 맛보고 짬밥이 차오를수록 이를 목표 자체로 삼거나 집착하는 이들을 흔히 보게 된다. 소위 '금융 치료'에 심신이 회복되기도 하고, 더러는 옆자리 동료에게 질 수 없다는 자존심에, 때로는 내가 최고라는 우월감을 느끼기 위해, 혹은 나는 쓸모가 있다는 인정의 척도로 삼아 인사 평가서에 쓰여있는 알파벳에 집착한다.
언뜻 보면 이 또한 '인정받고 있음'을 느끼기 위한 여러 갈래 길 중 하나로 보이지만 결이 완전히 다르다. 건강한 의도에서 인정을 받겠다는 말에는 행동의 주체와 이유가 '나'에서 비롯한다. 내가 가진 실력을 갈고닦아 남들이 해내지 못하는 성과를 만들어내고 그것으로 좋은 평가까지 받겠다는 말이다.
한편 주객이 전도돼, 인사 고과 S 등급 자체를 목표로 삼는 것에는 평가권자의 행동을 유발하겠다는 의미가 더해진다.
이 둘은 다르다. 나의 이익을 위해 남의 행동을 이끌어 내겠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하면 행동이 조잡해진다.
이들은 이제 일을 잘하려는 것을 넘어, 남이 열심히 한 일을 자신의 성과로 포장하기도 한다. 실무자 회의에서 나온 아이디어를 낚아채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친 상사에게 마치 자신의 생각인 양 떠든다. 어깨너머로 들은 성과와 향후 계획을 자신의 입으로 보고한다.
숟가락을 얹을 틈이 보이지 않는다면 업무 협조를 하지 않는 것으로 남의 일을 망치거나 골든 타임을 놓치도록 훼방을 놓는다. 이마저도 여의치 않다면 입으로라도 타인의 성과를 깎아내린다. S를 받으려면 나를 돋보이게 하거나, 경쟁자 발을 걸거나, 둘 다 하면 되기 때문이다.
반대로 자신이 주도한 프로젝트가 잘 되지 않으면 슬며시 발을 빼고 내 일이 아닌 양 소극적으로 참여한다. 눈치가 빠르지 않은 적당한 희생양을 찾아 은근슬쩍 총대를 매도록 교묘히 설계한다.
일을 할 때도 남의 눈에 들기 위해서만 일한다. 업무의 본질 따위는 고려치 않고 상사의 취향과 말을 최우선 순위로 삼는다. 일이 엉망이 되더라도 '지시사항'이라는 마패를 꺼내 들어 온조직을 휘젓고 다닌다. 윗사람이 툭 던진 한마디를 '옳은 말'로 만들기 위해 시장과 고객의 니즈를 끼워 맞추기도 한다. 상사의 인사이트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서다.
설령 상사가 잘못된 의사결정을 내려도 절대 토 달지 않는다. 일이야 어찌 되든 말든 나중 일이다. 바른말을 한답시고 괜한 미움을 사는 역할을 자처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자신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직원들을 이용해 다 함께 대환장파티에 참여토록 한다.
업무 외적으로도 모든 노력을 쏟아붓는다. 상사와의 술자리를 쫓아다니며 술잔이 빌 때마다 가장 먼저 채워주고, 미리 차량 기사 전화번호를 알아둬 술자리가 파할 때 맞춰 술집 앞에 센스 있게 차량을 대기시켜 놓는다. 직접 차문을 열어드리며 감동 서비스의 발원지가 자신임을 알린다.
이런 온갖 노력에도 불구하고 모든 타석에서 홈런을 치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무리 상사의 취향을 잘 알아도 어느 순간에는 코드를 맞추지 못하고 헛스윙을 하는 일이 생긴다. 그러다 보면 꾸지람을 듣기도 한다.
어긋난 인정 욕구를 바탕으로 일하는 사람들은 상사의 평가가 호의적일 때는 강력한 업무 추진 능력을 보여주지만, 반대로 성과를 인정해주지 않거나 질책을 받으면 순식간에 길을 잃어버린다. 가냘픈 목표에 강한 정신이 깃들 수 없다.
이런 일을 몇 차례 겪고 나면 이들은 마침내 '혼나지 않기 위해' 일하기 시작한다. 인정을 받는 게 득점이라면 혼나는 것은 감점이다. 감점이 없어야 총점이 높아진다는 간단한 논리다. 문제는 혼나는 것을 겁내면 극단적인 비효율의 길로 들어선다는 점이다.
이들은 회의가 끝나면 상사의 말 한마디 속에 숨겨진 의미를 찾느라 단어 하나하나를 인수분해 한다. 그리고 고고학자처럼 온종일 의미를 추측한다. 심지어 집단지성을 활용하겠다며 회의를 소집해 온 조직원들을 모아놓고 있지도 않은 행간의 의미를 되짚는다.
"아까 회의 중에 '열심히들 해봐'라고 하신 말씀이 전력을 쏟으라는 말처럼 들렸어? 뭐 이런 것까지 하냐는 말 같지 않았어? 김대리 네가 듣기엔 어땠어?"
"다음 보고 때 시장 추이 물어보실 수 있으니 자료 좀 찾아놓자. 최근 3년? 5년? 아니다. 하는 김에 10년 치 자료 좀 구해봐. 혹시 모르니 경쟁사 데이터도 1위부터 10위까지 찾아볼 수 있나? 가급적이면 매출별 자료랑 판매 수량별 자료 나눠서 찾아주고, 국가별 대륙별 연령대별 성별 자료도 만들어 놓자"
"아 그리고 보고 마치고 회식 장소로 잡은 식당 말이야, 거기 입구가 엘리베이터에서 멀지 않아? 계단 싫어하신 적 없는지 비서한테 좀 확인해 봐. 갑자기 다른 거 드시고 싶을지 모르니 박과장은 소고기, 스시, 한정식 식당 룸으로 부킹 좀 해놔"
모든 상황을 고려하니 정작 중요한 업무 진척은 못하고 쓸데없는 일에 시간을 축낸다. 모든 경우의 수를 시뮬레이션했지만 정작 이에 대한 질문은 나오지도 않는다. 대신 나온 아주 본질적인 질문에 답변하지 못한다. 질책이 시작되면 얼어붙어 생각을 말하지 못하고 연신 고개만 숙인다.
이처럼 방어에 실패하는 경험을 몇 차례하고 나면 요리조리 숨고 눈에 띄지 않으려 피하기 시작한다. 타율이 낮아질까 봐 아예 출전을 안 할 수 있는 구실을 찾는 격이다. 어쩌다 '인정'을 되찾을 대타 찬스가 찾아오면 큰 거 한 방 날려야 한다는 강박에 힘만 잔뜩 들어가 공이 지나가고 난 뒤에야 스윙을 한다. 그렇게 출전명단에서 배제되면 남 탓을 하기 시작한다.
이들은 그간 보여왔던 충성스럼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술자리에서 상사 험담을 하고 살 길을 찾아 모색한다. 상사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을 웅크리고 좋은 날이 오기를 하염없이 기다리거나, 부서 이동을 시도한다. 여의치 않으면 이직과 퇴사까지 염두에 둔다.
남의 눈에 들기 위해서 일하면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는 힘이 생기지 않는다. 자신의 실력을 객관적으로 바라보지 못한다. 스스로를 평가할 안목과 기준이 없으니 남의 평가에 의존한다.
특급 요리사는 탄탄한 기본기를 바탕으로 의도를 가지고 요리를 개발할 수 있다. 어쩌다 마주치는 입맛이 까다로운 손님의 혹평에 흔들리지 않는다. 자기 확신이 있어서다.
반대로 기본기가 없고 자신이 없는 요리사는 늘 불안하다. 불안하니 당장 쓸 수 있는 잡기술에 의존한다. 손님의 입에 음식이 들어갈 때마다 표정을 살피며 다음 요리에 넣을 조미료 봉지를 집었다 놨다 한다. 남이 부여하는 블루리본 하나를 따내기위해 신박한 토핑과 양념으로 눈과 입을 현혹시키려 한다. 잠깐 유행을 탈 수는 있어도 일류 셰프가 될 수 없다.
이제 상사의 마음을 추측하고 맘에 들기 위해 펄럭이던 구애의 날개 짓은 그만 두자. 올해 바뀔지 내년에 바뀔지 모르는 상사의 들쭉날쭉한 '개취'를 따르지 말고 시장과 업계의 취향을 저격해 객관적으로 평가받자.
일의 본질을 고민하고 논리가 섰다면 겁내지 말고 의견을 말하자. 상사가 미처 생각지 못했던, 하지만 꼭 알아야 할 부분에 대해 당신의 인사이트를 들려줘야 한다. 그것이 스스로를 위해 일하는 방법이다. 혹 윗사람이 당신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거나 의문을 가져도 괜찮다. 만약 당신이 놓친 부분이 있다면 겸허히 받아들이고 더 나은 실력을 갖추는 계기로 삼으면 될 일이다. 한 두번 혼나더라도 논리가 탄탄하고 주관이 있는 사람은 결국에는 훨씬 나은 결과를 만들어 낸다.
남의 인정을 구하기보다 스스로 인정할 수 있는 기준을 세워야 한다.
남에게 인정받으려 하지 말고 누구나 인정할만한 스스로를 만들어야 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