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요리사 2의 결승전 주제는 나를 위한 요리였다. 도전자 최강록의 요리는 간소했다. 사람들은 결승에서 그가 장기인 조림을 할거라 예상했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이런저런 자투리 재료들이 섞인 요리는 메인재료도, 장르도 알 수 없는 낯선 것이었다. 요리대회에 내놓는 화려한 요리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가 자신을 위해 만든 요리는 장사하고 남은 자투리들로 만든 것이었다. 그리고 빨간 뚜껑의 소주. 그가 정말 내놓고 싶은 요리는 어쩌면 그소주 한 잔이었을 것이다. 하루치의 고단함과 남루함을 넘치게 담은 차갑고 쓰디쓴 소주 한 잔.
대부분의 요리는 누군가를 위해 만들어진다. 자신을 위해 생선을 토막내고 채소를 씻고, 튀는 기름을 맞아가며 요리를 하는 사람은 드물다.
그래서 심야식당같은 영화가 인기가 있을 것이다.
밤늦은 시간, 지친 나를 위해 불을 켜고 또각또각 칼질을 하는 누군가의 손길은 삶을 위로한다. 따뜻한 한 모금의 국물은 영혼을 쓰다듬고, 부드러운 한 입은 하루를 긍정한다. 곁들이는 한 잔은 실패의 기억을 보듬고 오늘의 잠자리를 내일의 작은 희망으로 바꾼다.
그러나,
밤늦은 시간 나를 위해 요리를 해주는 사람은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두운 현관을 열고 들어가 여전히 혼자인 나와 마주한다. 따뜻한 국물 냄새도, 사람의 웃음 소리도 없는 곳에서 나를 위로하기 위해 술잔을 꺼낸다. 몹시도 열심히 살았지만 여전히 아무 것도 이루지 못했고 아무 것도 아닌 나를 바라볼 때의 적막함은 소박하게 차려진 간단한 안주에서 적잖이 누그러진다.
그것들은 손이 많이 가지 않아야하고 맛이 복잡하지 않아야하고 무엇보다 조용해야한다. 조용히 시들어가는 인생을 마주보기 위해서 시끌벅적한 요리는 어울리지 않는다.
최강록의 요리는 요리를 업으로 삼은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기에 충분했다. 흑백요리사2는 우승자 최강록이 기뻐하는 얼굴이 아니라 요리하는 사람들을 위로하는 화면으로 마무리되었다.
최강록의 요리를 보며 옛 기억이 떠올랐다.
대학생 때 학생식당에서 일을 한 적이 있다. 매일 천여 명이 먹을 음식을 조리하는 조리장님과과의 술자리에서 우리는 그에게 주말에 어떤 요리를 해먹는지 물었다. 그는 라면을 끓여 먹는다고 했다. 주말이면 가스렌지를 켜는 것 조차 지겹다고 했다.
요리사가 고작 라면을 끓여 먹는다구요?
뭔가 실력을 발휘해 학생식당의 요리보다 근사한 것을 만들거라 기대했던 우리는 맥이 탁 빠졌다.
그때의 나는 요리가 타인을 위한 행위라는 것을 몰랐다. 타인을 살리기 위해서 가장 기본적으로 해야하는 일은 먹이는 일이다.
그래서 결혼을 하고 가장 많이 한 일은 요리이다. 직장을 다니면서도 매일 아침 저녁으로 부엌에서 종종걸음쳤다. 밖에서 분명히 일하고 돌아왔지만 나는 항상 씽크대로, 가스렌지로 돌아다니며 분주했다. 배달을 시킨 적도 있고, 만들어진 반찬을 사다먹기도 했지만, 그래도 집에서 내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곳을 부엌이다. 쌀을 씻고, 고기를 굽고, 국을 끓이고, 나물을 무치고, 이유식을 졸이며 두 아이를 키워냈다.
그러나 나 혼자만 아이들을 먹여살린 것은 아니다.
우리 애들이 초등학교 5학년, 3학년이 되었을 때, 내 생일이었고, 우리 가족은 여름 휴가 중이었다. 남편은 회사 일정 때문에 먼저 올라가고 아이들과 나만 남았다.
아이들은 나를 방에서 못나오게 하고 옹색한 리조트 주방에서 아침부터 바빴다. 한참 시간이 흐린 뒤 작은 식탁에서 흰밥과 미역국과 계란말이와 김치가 놓인 그럴듯한 밥상이 차려져있었다.
즉석밥에, 인스턴트 미역국에, 봉지맛김치. 즉석 식품사이에 얇디얇은 계란말이가 놓여있었다.
초등학생이던 두 딸이 이 얇은 계란말이를 위해 얼마나 고군분투했는지 부엌은 기름투성이 후라이팬과 뒤집개, 즉석식품 껍데기들로 난장판이었다.
인스턴트 미역국은 의외로 감칠맛 있었고 파 한점 올라가지 않은 노오란 계란말이는 보드라웠다.
워킹맘으로 십년넘게 두아이를 키워낸 세월은 결코 보드랍지 않았지만 그날의 계란말이는 참으로 보드라웠다. 아이들 역시 엄마에 대한 사랑과 믿음으로 나를 살리고 있다는 것을 그 노오란 계란말이를 먹으며 느꼈다.
나를 위한 요리의 맛은 화려함에 깃들지 않는다. 얇디얇은 계란말이에는 전혀 얇지 않은 이야기가 들어있었다. 모든 이가 그리워하는 어머니의 된장찌개의 모습은 그저 투박한 뚝배기에 가장자리에 국물이 흐른 자국이 묻어있는 그런 모습이다.
부엌에서 찌개가 보글보글 끓고, 밥솥에는 치익치익 김이 오르고, 또각또각 칼질 소리가 들린다. 밖은 어둡고 찬바람이 불어도 부엌에는 불이 켜진다.
그 불빛 하나로 우리는 오늘을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