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세대에게 카레 냄새는 여행의 냄새이다. 카레 냄새를 맡으면 그늘진 솔숲과 나무 사이로 반짝이던 여름햇빛과 은박돗자리와 양은 코펠과 석유버너의 그을음이 떠오른다. 그리고 누군가 베짱이처럼 치고 있던 기타소리도.
내 어린 시절만해도 여행이란 먹을 것과 취사도구를 잔뜩 짊어지고 버스나 기차를 타고 떠나는 여정이었다. 등산을 하다가 자갈밭이 넓은 계곡을 만나면, 뜨거운 도로를 걷다가 바다를 마주한 솔숲에 다다르면, 그제야 비로소 짐을 내리고 숨을 고른다. 다리가 셋 달린 석유버너를 자갈밭에 세워두고 불을 붙인다. 그런 때의 메뉴는 어김없이 카레였다. 다른 한식 반찬들처럼 국물이나 냄새가 새어나올 걱정이 없고, 평상시 잘먹지 않는 이국적인 냄새를 풍기는 카레는 만들기도 쉬웠다.
감자와 당근과 호박을 잘게 깍뚝 썰어 기름에 볶는다. 채소가 어느 정도 익으면 다진 돼지고기를 같이 볶다가 물을 붓고 카레 가루를 넣어 덩어리 지지 않게 잘 풀어준다. 그리고 불을 줄여서 한동안 끓여주기만하면 그만이다. 간을 따로 하지 않아도 되고 물이 많으면 졸이고, 뻑뻑하다 싶으면 물을 부으면 된다. 요리에 영 잼병이다 싶은 사람도 서툰 칼질 몇 번이면 그럴싸한 한그릇을 내놓을 수 있다.
카레가 올라가는 밥은 위는 약간 설고 아래는 살짝 탄 밥이어야 제격이다. 얇은 알미늄 코펠 뚜껑에 무거운 돌을 누르고 끓여낸 밥은 아무리 정성을 들여도 항상 위는 설고 아래는 눌었다. 탄내가 조금 풍기는 그 밥을 잘 섞어 은빛그릇에 담고 채소와 고기가 푹 익은 노란 카레를 부어준다. 워낙 향긋하고 자극적이라 김치나 단무지 하나면 댜른 반찬 없이 뚝딱 한끼를 해결할 수 있다.
어린 시절엔 그 간단한 칼질조차 면제였다. 나는 도착하자마자 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입술이 시퍼렇게 될 때까지 물장구를 치다 바위 물가로 나왔을 때 나를 기다리고 있는 뜨끈한 카레 한 접시는 혓바닥을 지나 뱃속까지 요동치게 만들만큼 강렬한 맛이었다. 장아찌와 나물에 익숙해있던 나의 미각은 그 복잡하고 이국적인 맛에 매료되었다.
나이가 들어서는 카레를 만들어 누군가를 먹이게 되었다. 대학교 3학년 때였다.
동아리 엠티의 마지막 아침. 기껏해야 스물두 살일 뿐이지만 갓 입학한 스무 살짜리들에겐 대선배인 내가 아침을 했다. 열몇 명을 위해서 들통 가득 준비한 요리는 물론 카레라이스였다. 전날 밤의 과음으로 다들 입맛이 별로 없었기에 잔뜩 끓인 카레는 반 가까이 남았다. 짐을 싸서 떠나야하는데 들통 가득 든 카레는 골칫덩어리였다. 버릴 수도 없고, 먹을 수도 없고.
한참을 떠들다가 내기를 하기로 했다. 가위바위보를 해서 이긴 사람이 카레를 먹는걸로. 당시 바보 3총사라 불리던 1학년 남자 애들 셋이 가위바위보를 하겠다고 달려들었다.
우승 상품은 남은 카레라이스에 불과했지만 셋은 기필코 이기겠다며 승부욕을 불태웠다.
가위
바위
보!
우와, 이겼다.
가위바위보에서 이긴 사람이 카레를 한 국자씩 퍼먹었다. 가위바위보는 10판이 넘도록 이어졌고 바보3총사는 배가 부르다면서도 꾸억꾸역 카레를 먹었다.
모두가 박장대소하며 그 바보 같은 게임을 지켜보는데 그들은 웃음소리를 응원소리라 여겼는지 이길 때마다 얼굴이 벌개지도록 함성을 질렀다.
그렇게해서 들통은 겨우 비워졌고 기차를 타고 가는 내내 그들은 카레 냄새나는 트림을 해댔다.
그날 이후 한동안 그들은 바보 3총사에서 카레3바보로 불렸다. 지금에서야 그들이 바보가 아니고 선배의 남은 음식처리를 도와준 마음 여린 후배들임을 안다. 무모한 치기와 열정으로 삼킨 카레는 그들에게도 젊은 시절의 추억으로 남았을 것이다.
여행이 반드시 물리적인 공간의 이동만을 말하지는 않을 때가 있다. 시공간이 그대로 있는데도 순식간에 어디론가 옮겨온 듯한 느낌이 들 때, 그 황홀한 기억을 투박한 카레 한접시에서 떠올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