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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임스 리 Jul 25. 2021

1. 소명

라이트 형제

세계 최초로 비행기를 만든 라이트 형제. 새삼 어렸을 때의 기억을 소환한 이유는 마음속에 있었던 오래된 의문을 꺼내기 위해서이다.

 ‘어떻게 자전거 수리공이 최초가 될 수 있었지? 그 시대엔 비행기에 관심 있었던 과학자들이 없었나….’

그런데 최근에 이 의문에 대해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하였다. 라이트 형제에게 라이벌이 있었다는 사실을. 그는 스미소니언 과학협회 간부이자 명망 있는 학자였던 새뮤얼 랭글리(Samuel Langley) 박사였다. 그는 정부로부터 연구비까지 지원받고 있었던 반면, 라이트 형제는 스스로 비용을 충당해 가며, 독학으로 공기역학, 기관 설계 등 관련 분야를 마스터하고 있었다.

하지만, 신은 라이트 형제의 손을 들어주었다. 1903년 12월 17일 '악마를 죽인다'라는 이름의 킬데블 힐스 언덕에서 라이트 형제는 새로운 역사를 쓰게 된다.  그날은 동생 오빌 라이트가 비행기에 오르는 순번이었으며, 처음 비행에서 12초 36m를 날았고, 재시도에서 59초 243m를 비행하였다. 인류 최초의 동력 비행이라고 기록된 이 날은 겨우 마을 주민 5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일어났다. 화려한 기자 회견 속에 열린 것이 아니라…. 이 모습은 스타트업 기업들의 창업 스토리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만, 라이트 형제는 차고를 개조한 허름한 사무실이 아닌, 허허벌판에 차린 오두막 캠프에서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어쩌면, 스타트업 1호는 라이트 형제 일지 모른다.

킬데블 힐스의 캠프 모습


Kakao talk 서비스

2010년 3월 한국의 아이위랩이라는 스타트업 회사는 카카오톡이라는 모바일 메신저 서비스를 출시하였다. 이 서비스는 문자 수발신 모두 무료였다. 그 당시 이동통신 회사에서는 휴대폰 문자 한 건당 20~30원의 통신료로 받고 있었던 터라 그야말로 파격적인 서비스였다. 단순히 무료 서비스라는 것 외에도 애플리케이션의 UI 디자인도 너무 편리하고 귀여워서 고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으며, 대국민 서비스로 급부상하였. 그런데, 이 작은 스타트업 기업의 성공 가도 달리는 모습을 골리앗과 같은 대기업들이 가만 보고만 있었을까? 문자 매출에 타격을 입은 이동통신사들은 부랴부랴 자체 프로젝트팀을 만들고, 자원을 대거 투입시켜 대응 서비스를 만들었다.

심지어 그것도 모자라 2012년 12월 이동통신 3사가 연합하여 '조인'이라는 서비스를 출시하였는데, 이 서비스를 기억하고 있는 국민들이 얼마나 있을까? 아마도 이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관계자가 아니면, 기억하지 못할 것 같다. 사용률이 0.1%에 불과했으니까. 결국 이동통신사들이 연합하여 내놓은 ‘조인’이라는 서비스는 2016년 운영 종료(fade-out) 되었다. 이동통신 연합군들은 카카오톡의 고공비행을 지켜봐야만 했다. 마치 랭글리 박사 팀처럼...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

 라이트 형제 vs 랭글리 박사, 카카오 vs 이동통신사 같은 경쟁을 우리는 다윗과 골리앗 싸움에 비유하곤 한다. 오늘날 DX시대 비지니스 세계에 나타나는 특징 중 하나는 이런 유형의 싸움은 아이러니하게도 다윗의 승리로 끝나는 일들이 더 많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기존의 대기업은 막 태동된 스타트업과 비교하면, 자본, 조직 등 모든 면에서 월등히 우세하지만, 고객의 마음을 파고드는 것은 스타트업의 상품/서비스들이다. 마치 만화에서 제리 특유의 영특함을 톰이 쫓아가지 못하는 것처럼….


Why?

전통적인 기업들이 스타트업 기업에 밀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흔히 복잡한 의사결정 구조, 수직적인 조직 문화 등을 이야기한다. 그래서 Agile이 화두가 되고 있으며, 아마존의 일하는 방식을 벤치마킹하여 1page 서술형 보고 문화 등등을 따라 하고 있다. 하지만, 늘 그렇듯이 남의 것을 카피하여 우리 것으로 만든다라는 것은 쉽지 않다. 늘 마음 한 편엔 이런 불안한 생각이 자리 잡고 있다. ‘이것이 핵심일까? 본질을 놓치고 겉만 만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본질을 향한 고민과 깊이가 부족하면 앞으로 나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제자리걸음만 하게 된다. 그럼, 우리가 살펴야 될 본질은 무엇일까? 라이트 형제와 카카오의 탁월한 업적 뒤에는 무엇이 있었던 것일까?


이 부분에 대해 나는 라이트 형제의 자서전*을 읽던 중, 두 가지 단서를 발견하였다.

첫 번째는 일에 대한 '남다른 생각'이었다. 아래는 자서전에 실린 인터뷰 내용이다. (*우리는 어떻게 비행기를 만들었나 - 오빌 라이트 지음)

"비행기에 대해서도 ‘불’만큼이나 많은 생각이 교차했어요. 때론 불 때문에 일어나는 끔찍한 사고는 안타깝지만 누군가가 불 피우는 방법을 발견해 수천 가지 다른 중요한 용도에 불을 이용할 수 있게 된 점은 '인류에게 소중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라이트 형제의 이웃들은 호기심 많은 형제로 기억한다. 위 인터뷰에서 놀라운 것은 그들 호기심의 최종 지향점은 ‘인류’였다라는 것이다. 물론, 자신의 성취감도 중요하고 컸을 것이다. 하지만, 그 성취감 너머의 지향점은 내가 아닌 이웃이었고 사회였고 인류였다. 그들은 자전거를 수리하면서 ‘이동 수단’이 사람들에게 끼치는 가치에 대해서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사람들의 시간을 절약해주고, 무거운 짐도 편리하게 나를 수 있고…. 그들이 비행기 발명에 도전한 것은 돈이나 명성을 얻기 위함이 아닌, 우리 사회에 가져다 줄 변화와 가치, 즉 공의(righteousness)에 방점을 두고 있었다. 우리는 일에 대한 숭고한 생각을 ‘소명 의식’이라고 부른다. 개인의 부귀영화를 누리기 위해 일해 일하는 것을 소명의식이라고 부르진 않는다. 라이트 형제는 남다른 소명의식을 갖고 있었으며 이를 진실하게 실천하였다.

 

두 번째 발견한 단서는 '순수한 집념'이었다. 라이트 형제의 전기를 쓴 프레드 켈리는 오빌에게 임팩트 있는 질문을 던졌다. 비행기 발명 과정에서 가장 잊지 못할 순간은 언제였습니까?

"비행 전날 침대에 드러누워 다음 날 비행이 얼마나 짜릿할지를 생각해 볼 때가 가장 흥분되었어요.”

인류에 큰 기여를 한 성공한 과학자의 답변 치곤 너무 순수하고 겸손하지 않은가! 우리의 삶은 루틴 하다. 그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어제와 다른 오늘을 만들기 위해 스스로 마음을 다지고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려고 노력하는 모습은 아름답다. 우리 인류는 말만 번지르한 위선적인 일꾼보다는 이런 겸손하고 순수한 열정을 지닌 일꾼들에 의해 유지되고 발전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결국, 라이트 형제의 탁월한 업적 뒤의 성공 비결은 인류를 향한 소명의식 + 순수한 열정이었다고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카카오 서비스를 개발한 아이위랩 회사는 2014년 다음 커뮤니케이션과 합병하여 다음카카오로 새롭게 출범하였다. 카카오 크루들이 추구하는 문화, 일하는 방식 중, 내 눈을 사로잡은 것이 있었다. '세상을 선하게 바꾸려고 노력합니다.(Tech for Good)' 아마도 카카오톡 서비스의 성공의 핵심, 고객들의 사랑을 한 몸에 듬뿍 받게 된 이유를 비즈니스의 선함에 있었다고 판단한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을 잊지 않고 실천하기 위해 사명에 녹이지 않았을까?


우리는 왜 일을 하는가?

앞서 던졌던 질문, 전통적인 기업들이 스타트업에 밀리는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그것은 ‘초기 순수한 정신’을 잃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대부분 조직은 건전한 이상을 갖고 시작한다. 이기적인 목적이 아닌, 사회에 올바른 기여를 하겠다는 약속, 이타심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그 초기 정신은 오염되고 길을 잃어 구성원의 마음을 하나로 모을 수 없는 상황에 이르고 만다. 따라서 Agile, 벤치마킹 이전에 초기 정신이 살아있는지 그 순도를 체크하고 회복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둘째, 우리는 왜 일을 하는지 목적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라이트 형제와 카카오. 이들의 목적은 공의(righteousness)로웠다. 올바른 비즈니스는 이기심이나 욕망에 사로잡히지 않고, 이웃과 세상을 먼저 생각하는 이타심(altruism)이 발현될 때 정의로울 수 있다.


일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남을 위해 존재한다. 예를 들어 의사는 아픈 환자를 고치기 위해 존재한다. 의사도 인간이기에 병이 들겠지만, 내 병을 고치기 위해 의술을 배운 것은 아닐 것이다. 버스 운전기사도 버스를 이용하는 승객들을 위해 존재한다. 이처럼 일은 우리의 이웃을 위해, 공동체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의 숭고한 목적을 잊고서 먹고살기 위한 생존 수단으로써, 또는 나를 위한 성공의 수단으로 먼저 생각하는 치명적인 우를 범하고 만다.

일의 본질은 이타적임을 잊어선 안된다. 라이트 형제와 카카오 서비스는 이 사실을 누구보다 깊이 깨달은 사람들이다. 그래서 공동의 선(Common good)*의 관점에서 접근하였고, 그 결과 탁월한 열매들을 맺게 되었다. 이것은 비단, 기업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정부나 정당, 종교 단체, 학교 등 모든 사회 조직에 해당되는 이야기이다. 이제 우리는 ‘나 또는 내 조직’이라는 편협한 틀에서 벗어나 우리가 함께 살고 있는 공동체를 향해 시선을 돌려야 한다. 우리 각자에겐 세상을 향한 역할, 소명이 있다.

 

난 아래 속담에서 부족한 부분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이렇게 재정의하였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하늘은 스스로 [올바른 일을 올바르게 하려는 자]를 돕는다’


*공동의 선(common good)

하버드대 정치철학과 마이클 샌델 교수가 그의 저서 ‘정의란 무엇인가(Justice)’에서 제안한 정의 개념.



(우리 사회가 잃고 있는 중요한 가치인, 공의에 대해서 계속 연재하고자 합니다. 많은 의견 나눔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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