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음을 그리워하며
하늘의 뜻을 알게 된다는 지천명(知天命)을 지나, 듣는 데로 의미를 알 수 있다는 이순(耳順)에 이르니 난감하다. 신체에 변화와 감정이 낯설고, 기억력이 희미해지니 자신감이 사라지고 있다. 신체의 변화는 근육이 빠지면서 여기저기 쑤시고 뼈마디가 삐그덕거리는 것이다. 영원할 것 같은 젊음은 잠시뿐이고, 자만했던 전설 같은 육체는 무간지옥(無間地獄)이 되었다. 젊었을 때 이 몸뚱이를 좀 더 관리 잘할걸..... 하는 후회뿐이다.
시내의 길을 걷다가 빗방울을 만났다. 집에서 출발할 때는 하늘이 흐렸지만, 설마 비가 올 것 같지 않았다. 집 근처에 볼일이 있어서 우산을 쓰지 않고 왔는데 비를 만난 것이다. 중학교 근처라서 비를 피할 곳이 마땅하지 않았다. 120미터쯤, 농협이 보였다. 고등학교 때 100미터를 15초 이내에 달렸던 기억이 떠올랐다. 난 주머니에서 손을 빼고 인도를 질주했다. 근데 발목이 찌릿하더니, 허벅지가 불편해졌다. 그러더니 50미터쯤 도착하니 숨이 가쁘고 힘이 빠졌다. 그렇게 70미터를 달리고는 얼굴이 땅기는 증세가 나타나서 포기했다. '어? 이게 뭐지'. '어게 나야?' '아휴 힘들어'를 연속으로 되뇌면서 난 버스승강장에 주저앉았다.
내가 뜀박질을 시작할 때, 내 옆에서 재잘거리면서 걸어가던 중학생들이 내 옆을 지나쳤다. 나를 힐끔 바라보더니 걱정이 된다는 표정이다. 난 최대한 호흡을 조절하면서 침착하게 앉아있었다. 내 지금의 상태를 아이들에게 들키기 싫었다. 그러더니 한 녀석이 나에게 오더니, '아저씨, 저기 아저씨 휴대폰 떨어졌어요.' 하며 손가락질을 했다. 30미터쯤 되는 곳에 현수막이 있고 그 밑에 검은색 물체가 보였다. 그런데 너무나 멀게 느껴졌다. 난 '그래? 고맙다' 하며 억지로 일어나 휴대폰 쪽으로 향했다. 비는 주적주적 내리고, 내 마음은 터질듯한 심장소리에 심란했다.
늙었구나. 늙었어. 패잔병처럼 투덜거리면서 휴대폰을 집고 집으로 향했다. 늙으면 임금처럼 위엄 있고 폼나게 살아야 하는데, 나는 지금 무엇을 한 것일까? 우산을 갖고 왔으면 폼나게 걸었을 이 길을..... 왜 귀찮다고 그냥 와서 비 맞기 싫다고 뛰었는지 후회가 되었다. 떨어진 휴대폰과 뛰어가는 나를 본 중학생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리고 버스승강장에서 사색이 되어서 '헥헥' 거리던 날 본 그 중학생의 표정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자기의 분수를 알고 살아야 하는데.... 물에 빠진 생쥐처럼 빗물에 젖어가는 외모처럼, 늙어가는 나 자신이 무척이나 처량해지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