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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지은 Mar 28. 2023

여정의 시작

우리 아이는 왜 안 볼까?

9개월에 걷기 시작했고, 그맘때쯤 맘마, 빠빠도 한 것 같고, 돌 전에 먼머, 안녕, 신발 이런 말들도 하고 그래서 빠른 아이라고 생각했다.

시기마다 하는 것들을 보통은 조금 빠르게 혹은 딱 맞춰해 내니 큰 걱정도 없었고, 다만 기지 않고 바로 앉고 걸었던 것이 좀 달랐다.

딱히 기록하며 발달을 추적할 필요도 없었고, 심지어 돌 무렵 영유아 검진에서는 영재검사는 언제쯤 하냐고 묻는 도치맘이었다.

아이의 어릴 때 사진을 보면 창가에서 집중해서 책 읽는 모습이 참 많다. 아이 혼자의 시간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개입 없이 지켜보곤 했는데, 지나 보니 그걸 시각추구라고 이쪽 세계에서 이야기한다. 같이 책을 읽어주려 하면 덮어버리고 가버렸고, 어느 순간부터 명명하거나 포인팅을 시키면 전혀 관심도 없는 걸 보고 고집이 세다 정도 생각했다.

돌이 지나고 15개월이 지날 무렵부터 언니가 왜 부르면 안 돌아보지? 왜 눈안맞추지?라는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조금씩 의아함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래도 이전에 했던 것들이 있고, 말을 아예 안 하는 것도 아니고, 대근육 소근육 발달도 워낙 좋아 고민을 조금씩 늦췄던 것 같다.

문화센터에 가면 제법 선생님 지도에 맞춰 활동하고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갖는 아이들에 비해 우리  아이는 확실히 관심이 없었다.  그래도 잘 걷고 명사, 동사를 제법 말하고, 교구도 좀 다루는 우리 아이를 다른 엄마들은 부러워했고 여전히 기우가 아닐까 생각했다.

그 무렵 우리의 가장 큰 걱정은 수면문제였는데, 100일의 기적도 없었고, 돌이 되어도 여전히 입면도 어렵고 통잠도 어림없는 소리였다. 심지어 어느 순간부터 낮잠도 자지 않으니, 가족 모두의 삶의 질이 떨어지고 있었다. 밤에 깨면 한두 시간 최선을 다해 우는 것은 기본이었고, 서너 시간 심하면 아침이 될 때까지 다시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날이 계속되었다. 그나마 뽀로로를 보여주면 울음을 그쳐서 영상매체 노출이 잦아졌고, 악순환은 거듭되었다.

모유, 분유, 단유까지 크게 어렵지 않았고, 이유식도 잘 먹고 새로운 것도 잘 먹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극도의 편식이 시작되었고, 아이가 잘 먹을만한 것을 찾는 것이 과제가 되었다.

코로나로 어린이집 입학이 늦춰지고, 그마저 등원을 하게 되었을 때도 낮잠도 안 자고 급식도 안 먹어서 두 시간 정도씩 있다가 하원하는 날이 이어졌다.

관심이 없으니, 모방도 발전도 멈추니 퇴행이라는 말로 설명되는 순간이 왔다.

이런 문제들이 겹쳐오니 더 이상 두고만 볼 수 없는 일이었다. 조금씩 검색해서 어렴풋이 생각했던 것들을 이제 본격적으로 찾아보고 우리 아이에게 대입하면서 아리송한 날들이 지나가고, 26개월에 소아정신과 문을 두드렸다.

의사의 첫 소견은 "전형적인 자폐로는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언어지연이 있으니 검사를 해보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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