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도 관리가 필요해요?

[영화] 디 벨레(Die Welle) / 데니스 간젤 감독

by 이창우



이번 여름 역시 내 주변에선 이런저런 이야기로 심심치 않게 지냈나 봅니다. 뭐, 좋게 표현해서 그런 것이지 나라가 뒤집힐 일이 일어났어도 멀쩡하게 돌아는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드 배치로 그 정점을 찍고 있나 봅니다. 누구를 위한 결정인지 사회적 합의라는 절차를 무시하는데 경험치가 꽤 높은 정부이기에 그다지 놀랄 일도 아니긴 합니다만. 국가의 위기관리는 그야말로 연기 대상감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연륜 덕분이라고 해 둘까요. 하하하.


두 해 전 겨울 방학이 생각나더군요. 2개월의 겨울 방학 기간에 개인적으로 작은 도서관을 운영하며 매일 오후 1시부터 4시까지 책을 읽는 공간을 열었습니다. 주 2회는 독서지도와 NIE로 수다도 떨며 유쾌한 시간을 보냈지요. 방학이 마무리되어 가기에 부모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지요. 하지만 의외의 상황에 스스로 한 방 얻어맞아 띵해지고 말았죠. 충격이었습니다. 나의 관리 부실을 말하더군요. 아쉬웠다고요.


그런데 도대체 무엇을 관리하지?


이 공간은 와이파이가 그야말로 빵빵하게 터지는 곳이지요. 그동안 그들은 책을 읽기보다는 스낵 컬처와 스마트폰 게임을 했습니다. 관리자가 없었기에 가능한 것이지요. 함께 있을 때는 책에 빠져있는 모습이었는데 말이지요. 마지막 날에 그들에게 관리당하는 게 어떤 것인지를 느끼게 할 내 나름의 행동을 취했습니다. 일단 작은 상자를 입구에 두고 처음부터 휴대전화기를 걷었습니다. 관리당하는 시간이 얼마나 부당한지를 알려주고 싶었는데 그 사실조차 인지 못 하더군요. 학교와 같은 공간이 되어 버린 것뿐이었어요. 슬펐습니다.


대한민국의 자화상이라 빗대면 과한 것일까요. 학생들을 관리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이 사회, 시대의 흐름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이 앞장서서 구성원들을 관리하고 그것이 마치 국가 안보를 국가 성장을 위한 것이라 여기도록 하고 있지요. 관리당한 기성세대들이 신세대들을 그렇게 관리하려 합니다. 청소년을 관리의 대상으로 삼는다면 장래 대한민국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겁니다. 여전히 진실은 정부의 관리 품목이 되는 거지요.

일부 십 대들의 모습을 너무 과대 해석하는 것이라고 부디 비판해주십시오. 달게 받겠습니다. 아이들을 보호하는 것과 관리하는 것은 다릅니다. 아이들을 보호한다는 의미에서 행하는 어른들의 관리 역할은 그들을 한 인간으로서 대하는 것이 아니지요. 그래서 우리의 교육은 사육으로 변질하여 버렸고 그 사육한 아이들은 어른이 되어 다시 사회를 향해 화살을 당깁니다.


2008년 데니스 간젤 감독의 ‘디 벨레(Die Welle)’



이 영화는 독일 영화로 1967년 미국 캘리포니아 팔로알토 커 벌리 고등학교에서 교사, 론 존스에 의해 행해진 실제 실험을 바탕으로 한 작품입니다. 무정부주의 대신 독재에 관한 토론 수업을 진행하게 된 한 고교 교사가 독일 나치즘의 독재 정치가 현대 독일에서는 작동할 수 없다는 학생의 의견에 그 작동 원리를 설명하기 위한 교실 실험을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같은 유니폼을 입는 것으로 시작했으나, 실험에 점점 동화된 학생들은 협동 단결을 위한 단체 ‘디 벨레(Die Welle)’를 결성해 그 목적에 맞지 않는 친구들을 지목하고 감시하며 배척하는 등 점점 광기에 휩싸이기 시작합니다. 그들은 개인주의적인 삶에 익숙해져 있지만 ‘공동체’가 발휘할 수 있는 연대의 힘이 얼마나 강한지를 느끼는 겁니다. 독재는 어디에서건 가능합니다.


휴대 전화기를 걷지 않으면 자제할 수 없는 청소년들의 의식은 어떻게 형성되었을까요. 한국의 교육이 저지른 주입과 획일화를 마치 연대의식으로 몰아가는 전체주의의 영향력은 심각합니다. 그들과 대화를 나누다가 일상을 습관적으로 움직이는 청소년들은 ‘규율’과 ‘획일화’로 시작되는 ‘독재’의 가능성에 쉽게 휘둘릴 수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 영화는 그들을 어떻게 집단적 광기로 몰아갈 수 있는가를 보여줍니다. 그것은 애국심을 내세워 국민을 선동하려는 현 정부의 모습만큼 위험합니다.

이 영화에서 프로젝트 수업을 한 주간 진행한 후 벵어 선생이 말합니다.


“첫 수업 시간에 질문했던 것을 기억하는가. 우리에게 독재가 가능할 것인지 물었다. 독재정치란 바로 이런 거다. 방금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알아챘나, 너희?”





프로젝트 수업에 자발적으로 참여했던 많은 청소년은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 ‘디 벨레’의 일원으로 평소에 경험할 수 없었던 연대의식과 그 힘의 파장을 마주하면서 전혀 다른 폭력을 만나게 됩니다. 결국, 이 실험 수업은 커다란 불행을 가져왔고 한 교사의 실험 정신조차 얼마나 다른 방향으로 진행될 수 있는가를 조심스레 되묻고 있습니다. 벵어 선생은 프로젝트 수업에 참여했던 학생들과 긴밀한 대화를 나누지 못한 채 수업관리만 했기 때문에 불행한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수업 진행 중 교사는 학습관리에만 집중했던 것입니다.


리영희 선생의 『전환의 논리』에서 읽었던 활자들이 너무 생생하게 펼쳐집니다. 광복 71돌을 맞았습니다. 그때부터 관리당하는 신세인 대한민국의 진정한 광복은 아직이지만요. 1970년대의 풍경들이 하나둘 재현되고 있는 태극기가 휘날리는 거리를 보면서 느끼는 것은 독재시대의 재현입니다. 표준화된 시대에 주입된 대중매체를 통한 우민화를 위한 국가의 노력은 빛을 발휘한다는 리영희 선생의 말을 되뇝니다.

“브라운관과 10인치의 유리창을 통해서 원거리로 조작되는 지배층의 의도는 자기 자신의 감각과 지각으로 이 사회의 실태를 꿰뚫고 살피려는 노력을 포기한 치매증 대중을 대량 생산하는 데 성공한 듯하다.”


감각 미디어에 혼이 빠져버린 신세대에 화가 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되도록 사회적으로 조건 지어 관리당하고 있는 것을 외면하거나 의식조차 하지 못한다는 것에 답답한 겁니다. 이 상황을 벗어나려는 노력을 게을리 한 기성세대로서 만나는 통렬함입니다. 문자 미디어가 전해줄 이성과 사고와 멀어지게 의도한 이 사회의 필요조건들을 버리지 않는다면 세대 간의 벽은 더욱 견고해지겠지요. 태극기를 바라보는 것으로 애국심이 절로 생겨나는 것은 아닌 것처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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