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말 건넴

매몰비용

by 이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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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를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갈등을 만드는 것이 '상대적 박탈감'이라면 끝없이 회한에 젖도록 하는 것이 '상대적 공감'인 것 같다. 물론 개인적인 차이가 있으니 내 중심의 말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은 인정하고 들어가려 한다.


상대적 박탈감은 어디에서 시작될까. 개인의 문제에서 시작해 사회적 문제, 이 세계의 문제로까지 확장될 수는 있겠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의 근원을 찾다 보니 적어도 나에게만은 '가족'이었다. 내 의지로 태어나지 않았기에 분명 내 부모에 의해 나는 이 세상을 만난 것이니까. 그렇다면 내 부모는 어떤 환경에서 나를 태어나게 했고 나를 성장하도록 만들었는가는 무척 중요해진다. 그런 가운데 부모의 삶에서 만나는 가치들로 우선순위를 배우게 된다고 볼 수 있다.


부모의 가치관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를 생각해 보면 그것만큼은 나로선 제대로 알 수 없는 부분이다. 나의 부모가 보여주고 훈육의 형태로 학습하도록 했던 것들, 생활인으로 눈에 드러난 시간, 뜻밖에 다양한 측면에서 부모를 관찰할 기회는 많았다. 하지만 아쉽게도 내게 자극적으로 다가왔던 것을 중심으로 내 기억 속에 남아있음을 발견한다. 어린이 시절 내가 느낀 상대적 박탈감은 무엇이었던가를 생각해 보니 뚜렷하게 남은 것이 '도시락'이었다. 지금은 초등학교라 불리지만 국민학교를 나온 나의 경우에는 '급식'이란 말도 없었다.


그러니 잘살게 되어서 할 수 있는 국가의 역할인 것으로 생각하느냐고 묻는다면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다. 국가의 성장이 나의 성장을 도운 것은 분명하다. 그것은 국가의 성장에서 만나는 상대적 박탈감을 주변에서 너무도 잔혹하게 만나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의 성장은 한 개인의 삶을 파편 화했는데 적극적으로 가담했을 뿐이다. 어떤 의미에서 국가는 '미필적 고의'를 당연시하며 위세를 부려온 것이기도 하다. 그런 범죄행위를 단죄할 수 있는 역할을 가진 '법의 정의'는 대한민국이 수립된 이후부터만 따져 보아도 수평을 이루지 못하는 저울로 있다.


다시 나의 어린 시절로 돌아가 보자. 맞벌이로 생계를 유지해야 했던 이유는 아버지의 직업이 박봉이었기 때문이라 했다. 지금은 그리 선호한다는 공무원이었는데 말이지. 하긴 그 시절 공무원은 가욋돈이 월급보다 많아서 살기가 좋았다는 이야기를 듣기는 했지만, 그 상황이 내 아버지에게는 해당하지 않았던 것은 분명하다. 뭐, 그런 아버지의 모습에 존경심을 갖고 어머니의 고군분투기가 시작되었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어머니의 선택을 정당화시킨 일면도 있기에 그렇군요, 라 생각하고 있다. 어머니의 그런 행동으로 나의 유년기는 평범하게 별 탈 없이 살아진 것일 테니.


어머니의 분투하는 삶에 힘입어 나의 도시락을 책임지는 사람은 집안일의 거의 모든 것을 담당하는 식모 언니였다. 문제는 그 언니의 선택에 어머니조차 거부할 수 없는 무엇이 있는데 그게 '돌봄'이 불가능한 네 명의 자식을 위한 것이라는 점이다. 부재중인 어머니를 대신할 집 안의 대모가 되어버린 환경에서 어린 시절 내 주변의 친구들이 싸오는 도시락과의 격차가 너무 컸기에 생긴 심한 상대적 박탈감이었다. 그래, 그것은 보이는 것의 전부였다. 그것만이 그리도 중요했던 초등학교 시절의 내가 그 이후의 성장기 기억 속에는 다행인지는 몰라도 상대적 박탈감이 남아있지 않았다.


혹시 당신은 한참을 걸어왔던 길이 아무래도 아닌 것 같은 느낌을 받은 적이 있었던 걸 기억하시는가. 나는 그런 경우가 너무 많아서 익숙한 편인데 그것은 그저 길어야 몇 시간의 길 찾기로 인한 것이기에 그렇다고 하겠다. 이런 경우가 아니라면 문제는 좀 심각하게 흐를 수 있다. 청소년기를 거쳐 성장하는 과정에서 선택한 그 길이 거의 막바지에 이르렀다고 생각하는 지점에서야 느끼는 것, 뭔가 이게 아닌데. 하는 마음 말이다. 자동차를 타고 잘못 선택해서 들어선 길이었다면 원점으로 돌아가 다시 찾아보는 것도 좋은 방법일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은 다르다. 잘못된 것을 알아서 다시 돌아가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다. 이론적으로나 물리적으로 내가 유년기로 다시 돌아가 그 선택을 다시 할 수는 없지 않던가. 물론 상상력으로는 가능하다. 그 가능성에 매달리게 되면 딱지가 하나 붙여지면서 졸지에 '사회 부적응'으로 전락을 감당하면 되지 않을까도 싶지만 별로 권하고 싶은 것은 분명 아니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존재로서 좀 그럴싸하게 생각을 해보면 경제적으로 늘 거론되는 '매몰 비용'이 될 것이다. 그렇기에 잘못된 선택이라 해도 가던 길을 끝까지 갈 수밖에 없다는 거다.


지금까지 해 온 그 많은 시간의 수고와 고통, 스스로 위로하기 위해 저질렀던 강제, 자발적 자유의 속박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많은 것들이 나의 잘못된 선택을 외면하도록 한다. 요즘 유행하는 말, 아니 그냥 일상적으로 된 말로 "쿨하게 버려라."고 말한다면 어떨지 상상력을 발휘해 보니 무서워진다. 아마도 나는 이후로는 그렇게 가기 싫은 병원에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옮겨져 있게 될 것 같다. 하지만 그래도 그놈의 '매몰비용'을 앞으로 남은 시간을 위해 아낌없이 버리는 게 정신 건강을 위해 좋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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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시작할 수 있는 아주 특별한 기회는 언제나 가능했다. 내가 포기했던 것이 더 적절한 말 같은데. 여기에서 '상대적 공감'이 생기겠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그동안의 매몰 비용에 경제적 가치를 들이댈 수 없다. 수많은 목숨의 희생은 다시 시작할 수밖에 없다는 당위성을 던져준다. 그렇기에 민주주의 자명성을 얻기 위한 매몰 비용만큼은 반드시 기억해야 하겠지. 1인의 독주, 일방통행로의 끝에는 민중의 고난만 있다. 기성세대가 지키지 못한 민주주의에 마땅히 치러야 할 비용, 그것은 나와 당신의 삶을 위한 저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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