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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창우 Oct 05. 2016

왜?

[영화] 요시노 이발관 /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

  

          

 영화는 이 작은 마을의 생활이 어떻게 이어오고 있는 지를 서서히 보여줍니다. 길을 걸어가고 있는 아이들의 머리는 하나같이 바가지 머리입니다. 바가지 머리의 소년들이 '산의 날'에 산신령을 위해 '할렐루야'를 합창하는 장면으로 이어지며 시작합니다.


  처음부터 떠오르는 궁금증이었죠. 왜 일본의 작은 마을에서 ‘할렐루야’가 울려 퍼지는 거지? 아하. 산속에 자리 잡은 교회의 십자가가 감을 잡게 합니다만 그래서 살짝 웃음을 흘리게 됩니다. 이거... 였군. ‘산의 날’이라는 전통은 누군가로부터 이식된 것에 불과하다는.   


    

 한국 사회와도 별로 다를 것 없는 풍경이기도 합니다. 한국의 전통이 언제부턴가 별로 중요성을 갖지 못합니다. 기껏해야 명절이면 한복을 입고 전통 놀이하는 이미지 정도일까요. 일상에 스며든 습관들도 있지만 대개는 별 의식 없이 지납니다.


 일제 강점기의 식민사관에 덧칠해 놓은 밤이면 빨간 십자가가 넘치는 나라. 기독교와 함께 유입된 거부할 수 없는 사랑. 기독교를 믿지 않으면 지옥불에 떨어진다는 말을 서슴없이 내뱉을 수 있는 나라. 종교를 내세워 혐오를 아무렇지 않게 쏟아 놓을 수도 있는 나라. 어째 돌아가는 게 뭔가 가슴을 콕콕 찌르더군요. 겹치는 한국의 학생 다움, 어른들이 비슷하게 쏟아놓는 착한 어린이 만들기에 쓰는 말들까지요.


마을 전체에 울려 퍼지는 스피커에서 5시를 알리는 종소리와 함께 목소리가 울려 퍼집니다.


"어린이 여러분 오후 5시입니다. 이제 집으로 돌아갈 시간입니다. 조심하자! 어두운 밤길과 구렁이. 소중히 하자! 자연과 전통. 전통, 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입니까? 카미노에 마을은 여러분의 자랑입니다."


 마을 공동체가 어떻게 운영되는지를 이 방송을 들으며 가늠하게 합니다. 마을 주민의 퇴원을 알려주고 보험혜택을 받지 못하니 위로금을 걷어 돕기로 합니다. 이런 작은 공동체의 전통은 잘 지켜지고 있나 봅니다. 이 동네 아이들은 모두 바가지 머리를 하고 있는데 도시에서 전학 온 소년에 의해 그 전통이 흔들리게 됩니다.




"이건 마을의 전통이야. 무조건 따라야 해!"


선생님은 도시에서 전학 온 사카가미에게 이 동네로 이사 왔으니 동네 애들처럼 바가지 머리를 하고 친구들과 친해지라고 합니다만 소년은 싫다고 말합니다. 다른 동네로 이사 가겠다며 거부하죠.


 아이들은 머리 자르기가 싫어서 학교를 결석하는 사카가미를 찾아가 함께 게임을 하며 놉니다. 사카가미가 묻죠.


"왜 머리를 똑같이 해야 하지?"


누군가 추호의 의심도 없이 대답합니다.


"그게 전통이니까."


 사카가미는 헌법에 명시된 조항을 말하며 인권침해라고 합니다. 머리 스타일은 인간의 개성 중 하나로 표현의 자유를 전통에게 빼앗긴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런 나쁜 전통은 지킬 필요가 없다고요. 자기 생각을 똑부러지게 말합니다. 아이들은 사카가미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친하게 지냅니다. 축구도 같이 하고 자신들의 공간으로 초대해서 놉니다. 문제는 어른입니다.


 그렇게 해 왔으니 무조건 따른다는 의미로 접근하면 전통은 지켜나가면 좋은 문거나 정신쯤 되겠죠. 하지만 그 전통이 형식으로 그쳐버린다면 그건 누군가에게는 강제되는 억압이죠. 우리나라에도 좋은 전통이 많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효 사상은 우리에게 내재된 아름다운 정죠. 그 효가 사회 구성원에게 강제되어 형식으로 치우치면 힘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전통은 마음으로 이어지는 가운데 여러 문화로 보존되어 맥을 잇게 되는 거겠죠. 전통에 자부심이 있어야 한다는 의미고요. 이 마을처럼 모두 같은 바가지 머리에 무슨 자부심이 생기겠어요. 어쩌면 이 마을로 들어와 목각인형을 만든 사람이 표현해 놓은 바가지 머리가 전통이 된지도 모르죠. 산의 날을 기념하는 이 마을 사람들에게 이식된 누군가의 이해관계일지도 모르고요.


  



“네 놈의 갈색 머리 때문에 다른 애들까지 물들어. 학교 끝나면 바로 이발소로 와!”     
“절대로 안 자를 거예요.”     


 저는 이런 학생들을 특별하다고 말해 주곤 합니다. 그 특별함을 잘 지켜나가게 바라봐 주고 함께 어울리는 일. 기성 세대의 관용이고 친애이겠죠. 너무 멋집니다.



“산의 날 축제는 전통인데 왜 할렐루야를 부르는 거지?”     
“그게 왜?”     
“산신령은 토속신이고 할렐루야는 기독교에서 부르는 거라고.”  


그동안 아무도 되묻지 않았던 물음이 아이들에게 떠오르는 겁니다. 반항하다 다시 주저앉기도 하지만 아이들의 머리는 바가지 머리에서 약간의 변화가 보입니다. 누구나 왜? 라고 묻지 않았다면 바뀌지 않았을 일들이 많습니다. 지금도 한국사회는 무턱대고 따른 일에 왜?라고 물으며 변화를 모색합니다.


왜?


 요시노 이발관의 정서는 그대로이지만 분명 작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지요. 더 이상 사카가미의 머리를 자르라고 하지 않습니다. 요시노 이발관에서 아이들은 언제나처럼 재미있게 놉니다. 항상 처음이 어려웠던 건 아니었나 생각해 봅니다. 용기가 필요한 일이니까요.


 이제 그들은 요시노 이발관에서 머리를 자르는 유년의 시대가 지나면 어떤 어른이 되어 있을까요? 사회에서 좋은 변화는 아주 느리지만 가능하다고 믿습니다. 그렇게 인류는 진보해왔으니까요.     

 

             


“어른이 된다는 건 어떤 거예요?”          


 아이들의 질문에 어른이 되어 대답할 말이 늘 바뀌는 것은 어찌해야 할까요?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의 영화는 일상에서 발견하게 되는 아주 작은 웃음을 포착합니다. 일상에서 늘 마주하는 시간을 놓치지 않는 영화이기에 아마도 잔잔하게 마음을 움직이는 것일지요.   

   

 전통과 외래문화의 수용, 우리는 혼재된 문화에서 선택의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다만 사회의 분위기에 따라 전통은 때로 시대의 흐름을 거부하는 강제의 시간으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한국 사회만큼 이런 혼재된 문화에서 전 세대가 제 멋대로 휘청이는 사회도 드물다고 생각됩니다만 역동적인 역사에게 물어야 할 지도요. 한국의 전통은 도대체 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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