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를 위한 '사드'란다...

『김종대 정욱식의 진짜 안보』/ 김종대, 정욱식

by 이창우


정신적으로 “종속”된다는 것은 눈에 보이는 식민지 상황보다 더 치명적이다. 대한민국은 공식적으로 1945년 8월 15일 광복을 맞았다. 진짜 “광복”이었던가. 『김종대 정욱식의 진짜 안보』는 이 믿기지 않는 사실들을 파헤쳐 현재 한국사회에 퍼지고 있는 안보의식을 권력 유지의 도구로 내거는 이들의 실상을 만나게 해준다.


이 책은 가짜 안보가 판치는 대한민국의 현실, 국민을 상대로 한 국군의 심리전에 대해 정신상태를 점검한다. 2013년 10월, 국방부 소속 사이버사령부도 2012년 총선과 대선 기간에 불법적으로 선거에 개입했다는 충격적인 뉴스를 기억하고 있다. 저자 김종대는 국가기관들이나 그 협력자들이 대선에 개입하는 댓글의 양태에 대해 세 가지 패턴을 말한다. 첫 번째 단계는 북한에 대한 혐오 내지는 공포 조장, 두 번째는 북한과 야당을 동일시하는 작업, 세 번째로는 싸잡아서 욕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현 정부는 안보 프레임으로 국민의 의식화를 통해 권력의 사유화를 지속시키며 자기검열을 가속한다. 사상과 표현의 자유는 보이지 않는 개인의 심리를 자발적으로 종속시켜 민주주의의 가치를 훼손하고 있다. 2014년 3월 국가정보원이 서울시 공무원 간첩 증거를 조작했다는 증거가 드러났다. 이런 사건으로 미칠 효과는 민간인이 희생될 수도 있다는 점을 말하고 있는데 최근 헌재의 통진당 해산 결정으로 본격적으로 펼칠 공안정국을 예고하는 것과 맥을 같이 할 수 있다. 이런 국가정보원의 행태는 과거 독재 정권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해체된 공산주의에 갇혀 떠도는 망령을 불러내어 한국사회를 불안과 분란을 조장하는데 거리낌이 없다. 2014년 봄, 출현한 ‘무인기’에 주류 언론들이 북을 치며 앞장서면 군 당국은 대북 공포심을 자극한다. 이에 국방부도 거들고 박근혜 정부는 북한의 소행이라 발표한다. 이런 일들이 한국사회에 내재한 “레드 콤플렉스”를 자극하여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의심의 시선을 만든다. 왜, 그들이 국가안보를 이용하여 불안 심리를 자극하는지를 꿰뚫어 보고 그들이 내세우는 가짜 안보에 휘말리지 않아야 한다.


지난해 10월 23일 워싱턴에서 열린 제46차 한미 연례 안보협의회(SCM)에서 한미 양국은 올해로 예정되어있던 전시작전권 환수를 사실상 무기한 재연기하기로 합의했다. 어떻게 이런 결과가 나올 수 있는지는 이미 예견되어 이 책에서 언급되고 있다. 대한민국의 외교 무능은 국익은 제쳐놓고라도 주권국가로서 부끄러운 결정임을 기억해야 하며 역사는 되물을 거다.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대통령의 안보 공약이기도 했다. 전작권 무기한 연기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가, 과연 한국의 군사주권만이 미국에 종속된 것인가.


2011년 3월.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세계는 탈핵으로 가고 있다. 하지만 가장 근접한 대한민국은 핵발전소를 더 짓겠다는 박근혜 정부 덕분에 미래 가장 위험한 사회가 될 전망이다. 2035년에 이르면 전력 수요량이 2011년 대비 80% 증가할 것으로 보고, 핵발전소 5~7기를 추가한다는 것이다. 국가의 미래를 생각할 수 있는 정부라면 수요량을 조절하는데 집중하여 미래 세대의 위험변수를 줄이는 것이 맞다. 기득권을 휘두르며 현재의 욕망을 좇는 기성세대들에게 미래 세대들은 무덤에 침을 뱉고야 말 거다.


『진짜 안보』의 저자들은 말한다. 전문가들의 여러 지적에도 불구하고, 일반 국민들은 북한에게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할 말은 하는, 즉 우리의 자존심을 확실히 세우고 안보를 중시하는 모습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이에 관련해서 우리가 안보 억지력을 행사하고 이를 과시하는 행위에 대해 냉철하게 고민해봐야 한다는 점을 말한다. 무기를 확보하는 목적이 마치 보여주기 식 전력증강으로 국내 정치용 성격이 짙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는 점이다. 힘센 자들이 전작권 환수를 거부한다는 것, 생각해 보면 답은 보인다.


미국의 오바마 행정부가 2013년 9월 주목할만한 신군사전략을 내놓았는데 ‘재래식 신속 지구 공격’ 개발, CPGS이다. 미국의 21세기 핵심 군사전략으로 재래식 무기를 이용해 1시간 이내에 지구촌 어디든 신속하게 공격할 수 있는 능력을 확보한다는 거다. 복잡한 일들 다 제쳐두고라도 ‘전쟁’을 왜 해야 하는가? 전쟁의 역사를 찾아보면 전쟁을 지휘하고 명령한 자들을 포함해 군인들의 희생은 민간인들의 죽음에 견줄 수가 없다. 특히 한국전쟁은 세계사에서 으뜸으로 민간인의 희생이 가장 컸다고 한다. 진정한 세계화는 상생을 위한 평화를 갈망한다.


전제국가를 지나 본격적으로 시민사회로 열린 21세기에 국가권력에 저항하고 시민들이 연대해야 하는 이유는 5년짜리 정부가 국가의 이름으로 저지르는 만행들을 간과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현재를 살아가는 시간들이 디스토피아적이라면 더욱 그렇다. 미래 세대를 향한 사랑과 관용은 가능하지 않은 냉혹한 현실이기에 유토피아를 꿈꾸는 것이 아니다. 유토피아가 되어갈 작은 노력을 해나가는 과정이 민주주의가 추구하는 가치이다. 한 사람의 한 걸음을 포기하지 않고 내디뎌 가는 작은 용기가 바로 유토피아를 향한 아름다운 가치 추구가 아니겠는가.





[그리고...]


이 글은 2015년 1월에 쓴 글입니다. 이 책에서 우려했던 여러 징후 중 하나가 '한반도 사드 배치'였습니다. 한반도에는 무익한 아니 오히려 긴장감을 부축이는 박근혜 정부의 가장 큰 외교 정책의 안일함을 드러내는 경우라 하고 싶습니다. 대체로 거대한 민주주의를 내세우는 미국의 외교 정책 중 최고의 흥행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한반도 사드 배치는 한반도를 통째로 팔아먹는 행위와 별로 다를 것이 없어 보입니다. 사드 배치와 관련된 잘못된 정보에 여론이 움직여서는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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