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주 평전』/ 강대석
똥파리에게는 더 많은 똥을
인간에게는 더 많은 돈을
이것이 나의 슬로건이다
(중략)
똥파리는 똥이 많이 쌓인 곳에 가서
떼 지어 붕붕거리며 산다 그곳이 어디건
시궁창이건 오물을 뒤집어쓴 두엄더미건 상관 않고
인간은 돈이 많이 쌓인 곳에 가서
무리지어 웅성거리며 산다 그곳이 어디건
범죄의 소굴이건 아비규환의 생지옥이건 상관 않고
(중략)
산 좋고 물 좋아 살기 좋은 내 고장이란 옛말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똥파리에게나 인간에게나
똥파리에게라면 그런 곳은 잠시 쉬었다가
물찌똥이나 한번 찌익 깔기고 돌아서는 곳이고
인간에게라면 그런 곳은 주말이나 행락철에
먹다 남은 찌꺼기나 여기저기 버리고 돌아서는 곳이다
따지고 보면 인간이란 게 별 것 아닌 것이다
똥파리와 별로 다를 게 없는 것이다
- 똥파리와 인간 / 김남주 -
일제시대를 살아간 시인의 아버지는 원통하고 설움에 복받칠 적마다 주먹을 부르르 쥐었고 커가는 아들에게 당부를 했다고 한다. 너는 커서 '사람'이 되어라. 면서기 군서기가 되어 아버지의 원통함을 갚아 주고 당신의 땅을 온전히 지켜줄 것을 소원했다고 한다. 그때, 시골에 남아 있는 농부들의 유일한 희망이 자식 중의 하나가 억누르는 자의 계급으로 상승하는 것이니 일 안 하고도 돈더미를 무릎 위에 수북이 쌓아놓고 살게 될 그런 아들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단다.
지나온 시대에서 한국사회의 아버지들이 바라던 사람은 어떤 사람이어야 했나. 지금도 시인 김남주의 삶은 그리 낯설지 않다. '사람답게 산다는 일이 착취의 대상에서 착취 계급으로 올라서서 다른 사람들을 착취하는 사회적 위치를 의미하고 있다. 시인의 아버지 시대, 일제시대의 면서기, 산감, 순사들, 그 위로 층층이 늘어서 있는 역사의식이 없는 지배계층들은 착취 제도를 바꾸기보다는 자신의 탐욕에 빠졌다'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 지배계층의 되물림을 용인한 여기, 그래도 도시는 불야성을 이룬다.
그 시대의 모습들을 바쁘게 비껴간 우리들은 비틀거리는 한국사회에 위기를 불러왔다. 보통의 아버지들이 바라는 이런 사람이 되기를 거부하면 고통스러운 현실에서 대물림 되는 가난과 사람으로 살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니까. 시인 김남주는 아버지가 바라던 그런 사람이 못되었고 시인에게 끼친 커다란 역사의 교훈은 우리에게도 여전히 교묘하게 반복되고 있다. 역사는 진보하는 것을 멈추었다. 21세기 IT강국이라는 한국에서 내 목소리를 낼 수 있고 진심 어린 너의 이야기를 듣는 것도 이제 끝내야 할지 모른다.
1960년 이승만의 독재정권이 학생들 중심의 4.19 혁명으로 무너졌다. 사람들이 민주화의 봄이라는 희망에 부풀어 있을 때, 박정희는 군사 쿠데타로 희망을 짓밟아 버렸다. 이 두 사건으로 시인이 얻은 교훈은 아무리 지독한 독재정권도 단합된 민중의 힘에 의해서 무너질 수 있으며, 그러나 철저하지 못한 민주혁명은 또다시 총칼을 가진 지배계급에 의해서 파괴된다고 말한다. 그때는 그랬다. 그것만큼만 가능했다. 철저하지 못했던 민중의 힘은 87 항쟁을 지나 21세기 시위문화의 새로운 변화로 '집단지성'의 모델이 된 촛불로 광장을 메우긴 한다.
다른 것은 다 차치하고라도 일제시대를 겪은 민중들이 우리 독립군을 잡으러 다닌 일본군 장교인 박정희를 대통령에 18년간이나 둘 수 있었다는 사실이 가리키는 것은 무엇인가. 이 커다란 역사의 교훈을 기억하지 못한 우리는 현재 군홧발로 짓밟아 민주주의를 압살 시킨 자의 뒤를 잇는 정부를 탄생시켰다. 역사의식이 없는 삶이 내는 잡음들, 시인의 말처럼 치욕적이다. 민주주의의 가치를 지켜내려 그와 같은 시간을 지나온 한국사회는 더 이상 모두의 가능성을 향해 움직이지 않는다.
'저항'의 의미는 개인주의로 약화되었고 잠시 들끓는 행위들은 제풀에 지쳐간다. 진실을 밝히려는 세월호 참사의 유가족들의 삶처럼 이 땅의 정의감은 표류 중이다. 시간의 흐름에 자연스레 망각의 강을 따라 흘러가는 일이 삶인 듯이 있다.
시인 김남주는 1994년 48세의 나이로 긴 투옥생활과 지병으로 눈을 감았다. 시인의 삶 속에서 치열할 수 있는 것은 휴머니즘이지만 나의 휴머니즘은 내 시대를 비껴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도 이루어질 수 없는 한낮 관념일 뿐일지도 모르겠다는 저자의 독백이 울려오는 날들이다.
시인이 죽은 사회는 이제 유신 시대를 같이한 인물들이 집단적으로 주도면밀하게 역사의 반복을 다른 이름으로 재현, 퇴행하는 것을 보고 있다. 나의 9월 하늘이 더는 파랗게 열리지 못하고 나의 처절함들이 올 곳이 살다 시를 남기고 떠난 시인을 찾는다. 나는 시인의 시에서 이 시대의 자화상을 만난다.
진보는 현실과 유리된 허황한 공론이나 지식인 유희가 아니었다. 온전하게 살아내고자 했던 나와 당신의 삶이다. 역사는 인간의 활동에 의해서 이루어진다는 저자의 말이 가슴에 가득 찬다. 사회문제를 인식하고 해결할 수 있도록 하는 과정에 마음을 기울이는 것, 그것이 삶이 내는 소리에 뛰는 심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