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출 수 없는 걸음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 』/ 파커 J. 파머

by 이창우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의 서문에서 저자 파커 J. 파머는 민주주의를 걱정하는 사람들에게 두 가지를 기억해줄 것을 간청한다.


첫째, 이른바 “정치 뉴스”를 숨 가쁜 속도로 광범위하게 보여줌으로써 결국 우리의 무력감을 자아내는 대중매체에 우리가 저항해야 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국민들이 많은 쟁점에서 언제나 이견을 드러내야 할 것을 말한다. 민주주의는 완성을 지향하는 결과물이 아니라 과정에서 합의를 해 나아가며 지키고 다듬고 노력을 해야만 하는 가치이다. 저자는 어떤 민주주의든 그것이 살아남는 데 근간이 되는 “마음의 습관”을 키워야 함을 말한다.


그 힘은 가족, 동네, 교실, 일터, 종교 공동체 또는 다른 자발적 결사체 등에서 마음의 습관을 가르치고 배울 수 있어서 민주주의의 보이지 않는 인프라를 구성하여 그것이 건강하게 유지, 보수되어야 민주주의가 잘 작동될 수 있다고 한다. 그의 견해를 근거로 주변을 둘러본다. 한국사회는 제대로 작동되는 곳이 거의 없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가족은 사회에서 요구하는 삶의 방식에서 벗어나기에 역부족이다.


권위주의에 길들여진 기성세대는 내면적으로 크게 분발하거나 현실의 위험성을 뛰어넘을 용기가 없다면 어렵다. 동네는 정보의 편향성과 단절로 사회문제를 건강하게 이야기할 수 없다. 공간 자체가 텅 비어 있다. 학교의 교실은 붕괴되어 있으며 일터는 숨 가쁘게 지나고 있다. 종교 공동체는 편협하게 변질되어 막다른 골목에 서서 부르짖는다.


개인과 사회가 같은 공간에서 전혀 다른 차원으로 달려가고 있는 한국사회는 사회적 책임감의 결여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국정감사가 진행되는 국회를 바라보면 정부의 부실함에 총체적 난국의 원인들을 발견하게 된다. 국가의 존망이 걸릴 수도 있는 문제에 무력한 정부. 한반도 사드 배치가 마치 미국의 어느 한 주에 해당하는 듯 이리 저리 횡설수설 보여지는 결정들. 국가 안보와 민주주의를 외치며 스스 방어할 수 있는 전작권을 타국에 일임하는 것에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는 자들이 국정을 운영한다는 이 현실이 위기이다. 그저 비통한 마음으로 지켜볼 수 없지 않은가.


이 책의 저자는 ‘공적인 삶의 의미’를 정치적으로 해석할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 관련된’이라 말한다. 공적인 삶은 어린이에서 어른으로 이행하여 자신을 돌보고, 타인을 돌볼 준비가 된 사람들의 활동무대로 이해되어왔음을 자각하라는 것이다.


낯선 사람을 적으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타자를 두려워하거나 악마화 하지 않고 차이가 빚어내는 긴장을 끌어안아야 하는 민주주의를 말한다. 한국사회에 ‘자유로운 공간’의 공적인 삶은 있는가.


교실과 공동체에서 민주주의를 위한 작은 실천이 가능해질 수 있도록 교사 한 명, 공동체의 한 명이 그 선택을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두 영역이 개인을 내적으로 형성하는 힘을 지니고 있어서 민주주의 사회에서 창조적인 역할을 하는 능력을 훼손할 수도 있고 신장시킬 수도 있음을 말한다. 내면의 쟁점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민주주의가 자라날 수도 있고, 파괴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한국사회의 교실에는 사람이 없다. 등급이라는 숫자만 있다.


삶의 의미를 되돌아보며 살아갈 수 있는 시간들 앞에서 무관심하지 않았으면 한다. 내 삶을 과정으로 이해하고 있다면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과 더불어 여유롭고 편안하다.


진보와 보수의 이분법, 선과 악, 성공과 실패라는 이분법의 구속에서 자유롭게 되지 않을까. 사람이 중심이 되는 사회는 그리 어려운 것도 아니었다. 자신만의 고유한 가치를 찾아내어 그것을 지켜나갈 수 있으려면 사회에 적절한 제도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렇기에 나는 행위를 해야만 한다. 박제된 인간이고 싶지 않다.


한국사회의 길을 묻고 그 물음들에 하나씩 답을 찾아가는 노력은 여기저기에서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으며 계속 멈추지 않을 것이다. 과거 회상에 머물러 헛된 망상에 젖은 우매한 정부에 우매한 국민으로 있을 수는 없다.


역사인식의 부재는 과거에서 교훈을 찾을 수 없도록 급하게 빨리빨리 지나온 한국사회의 경제성장만큼이나 한국사회를 허술하게 만들어 버렸다. 국가가 할 수 없다면 나에게서 시작할 수 있어야 한다. 나의 자유와 나의 민주주의를 위해 날갯짓을 해야 한다.


지치지 않을 힘은 마음의 울림에서 시작된 공감에서 머물음이다. 그리고 우린 함께 어울려야 한다. 무장되어 당당한 개인들과 시민사회운동의 연대로 움직이는 날갯짓으로 날아오를 수 있어야 한다.


정치가 무엇인가. 대한민국은 세월호를 또다시 침몰시켰다. 정당성을 잃은 정부의 수장과 그 무리들이 정치를 하고 있는 한은 이 사회에서 진실을 찾아간다는 일은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생각이 든다. 국민을 대변해야만 할 대의 정치는 심각하게 무너져 내렸고 거대 야당의 그나마의 신뢰도 끝나버린 채 세월호 참사는 900일이 되어 간다.


이렇게 제 풀에 지쳐가야 하는 것일까. 나의 가을 하늘이 더는 파랗게 열리지 못한다. 다수결의 최대 오류 1219, 그 날의 처절함들이 약자가 겪는 비통함으로 파고든다. 진보는 현실과 유리된 허황한 공론이나 지식인 유희가 아니었다. 온전하게 살아내고자 했던 나와 너, 우리의 삶이었다.


현재의 사회문제를 인식하고 해결할 수 있도록 하는 과정에 마음을 기울이는 것, 그것이다. 검은 바다에 가라앉은 자들과 함께 오늘은 살아있는 자들이 표류 중이지만 역사의 반복에 어지럼증이 일어나는 여기에는 진보가 지칠 수 없는 이유들로 넘친다. 진보는 밟아도 기어이 일어나는 들풀이며 그 어떤 벽도 꿋꿋하게 타고 넘어가는 담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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