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의 마지막 편지, 나를 닮고 싶은 너에게 』/ 설흔
늙은 호랑이처럼 보이는 정부의 여러 모습을 떠올리고, 몇 해 전 읽은 책에서 해답을 찾아낸다. 늙은 고양이가 마치 늙은 호랑이로 보일 때는 이유가 있다. 나도 그들처럼 늙어서 시력이 나쁘거나 겉으로 보이는 사물과 현상들에 현혹되었을 때 가능하다.
「추사의 마지막 편지, 나를 닮고 싶은 너에게」에 등장하는 늙은 고양이가 내가 꺼내고자 하는 이야기와 같은 대상은 아니다. 다만 책에서 얻어낸 단어가 아주 그럴싸한 쾌감을 주기에 빗대어 써보려는 거다. 참다못한 선조가 다시 현대로 돌아와서 민초들에게 말 전하는 느낌이랄까. 오랜 시간 동안 사물의 올바른 위치를 기억하지 못한 이 땅의 사람들에게 새삼 위치 탓을 해 보려고 한다.
작가 설흔은 이 책에서 추사 김정희를 불러내어 이런 이야기를 건넨다.
"나는 나이되, 내가 아니었다. 내가 곧 가문이었고, 가문이 곧 나였다. 그것이 바로 '나' 라는 사물이 있어야 할 제대로 된 위치였다."
정부의 관료들이라 일컫는 이들이 제대로 위치를 잡고 있던가. 제 위치를 망각한 고양이들이 호랑이 인양 있어야 할 위치를 잘못 찾아 호랑이 울음을 내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니 소리가 이도 저도 아니게 혼탁하다.
고양이와 호랑이가 있어야 할 곳은 어디인가. 제 자리를 찾아야 그 둘의 생존이 가능할 것이고 또한 올바른 위치에 있을 때 저들만의 능력과 재주와 존재감이 드러날 것이기에 하는 말이다. 제 위치를 못 찾고 엉뚱한 자리에 머문 늙은 고양이가 어느새 늙은 호랑이인 척 군림하게 되어 호통을 친다. 이것이 요즈음 이 나라의 돌아가는 모양새이다. 그렇다면 진짜 호랑이는 어디에 있는가.
사물의 올바른 위치를 기억하라.
추사 김정희가 아들에게 보낸 이 하나의 문장은 이 땅의 역사가 길을 잃고 휘청거리면서 던져준 현재에도 유효한 글이다. 민주주의를 훼손하며 만들어낸 호랑이처럼 보이는 늙은 고양이들이 코미디극을 한다. 말이 갖고 있는 긍정적인 틀을 이용한 미사여구로 사물의 올바른 위치를 망가뜨려왔다. 친일파, 독재에 붙어 일신의 부를 누리기에 급급한 가짜 호랑이다.
법과 제도에 의해 민주주의의 가치를 실현해 나가야 하는 대한민국의 주인은 과연 누구인가? 내가 또 그대가 진짜 호랑이가 아닌가. 올바른 위치를 찾아 늙은 고양이들이 더는 호랑이 행세를 못하도록, 사물의 올바른 위치를 기억해 내도록, 함께 소리 내어야 하잖은가. 내 삶을 들락거리며 내 기억들을 파편화시키고 농락한 늙은 고양이들이 있어야 할 제자리 찾아주기에 위치 추적장치 작동이다. 그대도 함께 하시려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