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 페러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랜섬 릭스
또 다른 세계가 존재할 수 있다는 상상은 다양한 장르의 예술 세계에서 가능했다. 작가의 탁월한 재능으로 현실이 연결되는 느낌을 만나는 작품은 그리 쉽지는 않았다. 내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작품에 빠지는 이유와 조앤 롤링의 해리 포터 시리즈에 빠지는 의미는 다르다. 그 다름을 애써 설명하려들려고 하니 머리 속이 엉키는 증상이 와서 그만두었다. 거의 모든 상상에는 '시간'의 개념이 사라진다는 게 공통일 수 있으려나. 선과 악이 공존하는 세계에서 선이란 혼자서는 도저히 지키기 어렵다는 정도. 절대악이라도 그에 맞선 선한 사람들의 협력이 승리할 수 있다는 희망.
흑백 사진으로 호기심을 자극하는 랜섬 릭스의 『미스 페러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은 이미지만을 생각하면 무슨 호러물 같다. 호러라면 별로 관심 가지 않는 장르기에 이 책을 가까이 하기에 주저했던 선입견이 책을 읽는 동안 사라졌다. 차라리 흑백 사진들이 없었다면 활자를 통해 내 머리에서 어떤 이미지로 떠올랐을까. 사진들이 현실감을 주기 위한 장치였다면 작가는 성공한 것인지도 모른다. 이미지의 힘이 활자의 힘을 앞질렀다.
이상하지 않은 사람들 속에서 자란 제이콥이 또 다른 자기를 찾아내는 과정은 청소년기에 늘 듣곤 하던 자아정체성 찾기이다. 성장소설의 유형이기도 한 이 책이 주는 의미를 굳이 생각해 보고 싶지 않았다. 나를 찾아내는 일은 평생이란 생각을 하게 되었기에.
제이콥이 할아버지가 들려주던 이야기를 더 이상 재밌거나 믿을 수 없어지면서 그에게 일어나는 일은 이상한 일 투성이다. 만약 제이콥이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진실이라 생각했다면 제이콥은 어땠을까? 작품 속에서는 제이콥이 할아버지를 그리워하는 사랑과 또 다른 사랑이 작동한다. 할아버지는 제이콥을 설득하거나 강제로 주입하려 하지도 않았다. 결국에는 제이콥이 스스로 찾아내지 않는다면 굳이 알릴 생각이 없었던 것 같다. 할로우라는 이상한 사람들의 변종에게 당하지 않았다면.
제이콥의 선택, 이상한 아이들의 집에 남기로 하면서 그가 순간마다 풀어가는 과정에 주목하게 된다. 제이콥은 이상하지 않은 사람들과 살면서 부모의 기대에 못 미치는 보통의 아이였다. 그런 보통의 아이가 자존감을 찾아가는 과정이 이상한 사람들 속에서만 가능한 것이 좀 무리가 있다. 하지만 왜 이렇게 되었는지는 이어지는 두 권의 다음 이야기에서 발견하게 된다. 어쨌거나 이상하건 이상하지 않건 사람들의 무리에서는 언제나 가능한 자신만이 해야 할 선택은 있게 마련이지만.
할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제이콥은 21세기와 20세기를 오가며 자신 안에 숨어있는 능력을 알게 된다. 할아버지가 갖고 있던 괴물을 볼 수 있는 능력, 남들은 볼 수 없는 할로우를 볼 수 있는 이상한 아이였다. 할아버지의 이상한 행동들을 이해하게 되면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알아차린다. 결국, 위기에 놓인 70년 전 사진 속의 이상한 아이들과 생존이 달린 페러그린을 구하기 위해 긴 여정의 출발로 끝난다.
이 책의 매력은 1권만으로 푹 느끼기에는 부족하다. 영화가 개봉되었지만 상상의 세계가 열리는 시간은 아직 시작도 안 했다고 말할 수 있다. 이상하건 이상하지 않건 인간에게는 그때 꼭 일어나야만 했던 일들이 성장하면서 피할 수 없는 통과제의라는 너무 뻔한 이야기로 확인하게 된다. 재미있냐고 묻는다면 사진으로 제한되는 이상한 이야기였다고. 1권은 만화책을 먼저 실수로 구입해
보고 다시 책으로 읽기 시작해서인지 내가 굳이 상상할 것이 없었다. 영화는 또 어떨지.
2권에서 이어지는 『할로우 시티』를 읽으면서야 이 책이 다르게 읽히기 시작했다. 이 세계 어딘가 존재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괴물을 만나 이상한 아이가 이상한 친구들과 함께 자신들을 지키기 위해 용기를 낸다. 잠재해 있는 자기 안의 능력을 발휘하는 기회를 만나게 된다. 내가 어른이 되면서 포기한 것들을 떠올리게 하기도 한다.
제이콥의 용기는 자신의 미래를 포기하지 않아서 낼 수 있는 거였다. 내가 살고 있는 시간에서 찾을 수 없는 것을 두려워하기에 주춤했던 일들. 우리가 그동안의 일상을 버리고 시작하는 모험은 생존하기 위한 또 다른 세계를 향한 시작인지도 모른다.
[이상한 용어 사전]
임브린 : 변신이 가능한 이상한 세계의 여성 우두머리. 남성은 임브린이 될 수 없다. 그들은 언제든 새로 변할 수 있고, 시간을 관리하며, 이상한 아이들을 보호하는 임무를 맡고 있다. 고대 이상한 언어에서 임브린은 '혁명' 혹은 '순환'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고대 언어로 '신드리개스트'라 불리었다. '페러그린(송골매를 뜻함)'은 제이콥의 할아버지를 구해준 생명의 은인으로 제이콥을 이상한 아이들의 집으로 오도록 유인한다.
루프 : 똑같은 하루가 끊임없이 반복되는 제한된 구역. 이상한 아이들을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임브린들이 만들고 관리했으며, 그곳에 사는 아이들은 영원히 나이를 먹지 않는다. 그러나 루프 거주자들은 불멸의 존재가 아니다. 그들이 '건너뛰는' 하루하루는 그들을 좀먹는 빛과도 같아서, 루프 밖에서 너무 오래 머물면 엄청난 속도로 늙는 것으로 되갚아야 한다.
-3권 『영혼의 도서관』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