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파울로 코엘료
마타 하리가 처형되고 나흘 후인 10월 19일, 주요 고발자인 라두 대위는 독일 간첩 혐의로 기소되어 수감되었다. 전쟁이 끝나고 일 년 후인 1919년에 라두는 결국 석방되었지만, 그가 이중간첩이었다는 소문은 죽을 때까지 그를 따라다녔다.
"독일인들에게 우리 군인들의 머리를 갖다 바치는 것이 유일한 목표였던 이 시대의 살로메"라고 지목한 여인의 사형에 주요 책임자였던 앙드레 모드 검사는 1947년에 기자이자 작가인 폴 기마르에게, 모든 재판은 추론과 일반화와 억측에 기반했을 뿐이라고 고백하면서 다음과 같이 결론지었다.
"우리끼리 하는 얘기지만, 우리가 확보한 증거는 고양이 한 마리 벌줄 만큼도 되지 못한다."
[에필로그] 중에서 발췌.
파울로 코엘료는 프롤로그에서 '사실에 근거함'이라 명시를 하고 이야기를 풀어간다. 작가 노트에서도 그는 이 책에 쓴 내용들은 모두 실제로 일어난 사실이기는 하지만 대화의 일부와 일부 장면을 삽입, 사건의 순서를 약간 바꾸었고 서사와 관련 없다고 판단한 것들을 생략하였다고 언급한다. 마타하리에게 씌운 러시아 스파이라는 죄명은 누명이었다.
이 책은 마타 하리가 감옥에서 변호사 클뤼네에게 보내는 편지와 마타 하리의 마지막 사면 청원이 받아들여지지 않아 변호사가 그녀에게 보내는 편지로 구성되었다. 한 여인의 삶이 그 시대에서 어떤 식으로 평가되고 왜곡될 수 있는지는 마타 하리에게만 적용되는 일은 아니었다. 그 시대가 원하지 않는 모습으로 살아간다는 일이 목숨을 내놓을 만큼 사회에 해악을 주는 일인지 생각해 본다.
구체적인 범죄의 사실이 드러나는 일은 당연히 그 죗값을 치루어야 한다. 사회 구성원이라면 의문을 제기할 것도 없다. 하지만 그 시대에 흔하게 볼 수 있는 타입이 아니라고 위험하다는 논리는 어처구니없다. 검사의 사적인 심중이 판결에 영향을 미친다는 결과가 현대에도 일어나는 걸 보면 법이 사회의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도덕이라는 점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내가 죽는 이유는 말도 안 되는 간첩 혐의 때문이 아니라 항상 꿈꿔온 인생을 살기로 결심했기 때문이고, 꿈에는 언제나 비싼 대가가 따르기 때문이란 것을 우리 모두 알고 있습니다.
왜 그들은 마타 하리를 사형시켰을까? 그녀가 원했던 것이 행복 찾기가 아니라 진정한 삶을 원한 것이라는 이유였을까? 역사에 그저 숫자 하나 보태지는 전쟁에 의해 죽어간 무고한 사람들이 스쳐 지난다. 지금 내 삶도 소수의 권력자들에 의해 무모하게 스러져 가야 한다는 것을 의식하면서 선(Good)은 왜 그리도 희생을 필요로 하는가 싶다.
누군가의 희생을 딛고 세워진 이 나라, 민주 공화국도 과거의 부귀를 안고 증식한 좀들에 의해 갉아먹힌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국가가 개인의 삶을 언론과 미디어로 조정하려들 때 거기에 휩쓸리지 않는 개인이 추구하는 삶은 전락한다. 대한민국의 오늘이 과거의 망령과 싸우는 일에 얼마나 버티어 낼 수 있을까... 이 책을 덮으며 되뇐다.
자유롭고 독립적이다!
이것이 죄라면,
기꺼이 마타 하리와 엮인 죄를 치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