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나나맨의 껍질에 넘어진 나라

『지구 영웅 전설』박민규

by 이창우


박민규의 『지구 영웅 전설』의 바나나맨이 대한민국 황인종 지진아의 ‘슈퍼 특공대’ 일원으로 이야기를 이어가는 내내 현재 대한민국의 수많은 바나나맨 덕분에 일어난 ‘사태’들이 떠오릅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1주일 내내 온라인에서는 ‘박근혜 대통령 하야’를 촉구하는 시국선언과 ‘최순실 게이트’로 그동안의 지형이 완전히 다른 형상으로 되어 가는 중입니다.


겉은 한국인인데 속은 백인인 바나나맨. 해방 이후 미군정의 지배에서 시작된 뼈아픈 과거사가 가져온 사태는 박민규의 표현을 빌면 끊임없이 ‘마운틴’ 당하고 있는 이 나라의 일그러진 모습인가 싶더군요. 신자유주의를 글로벌화로 치장한 사회의 학습하기는 지금에서 보면 바나나맨 양성소로 그 책임을 출중하게 해낸 역대의 바나나맨 덕분이겠지요. 안타깝게도 영어 몰입 현상은 계속 진행 중이며 작은 바나나맨들이 줄을 이어 생성되고 있으니 아직 먼 시간까지 한국이 마운틴에서 벗어나려면 고생 깨나 할 것 같습니다.


아쉽게도 이 책은 절판되어 여러 곳을 찾아 겨우 내게로 온 중고책입니다. 최근 이어지고 있는 한국의 영상물들 대부분이 미국의 히어로 장르로 상영관을 차지하고 있는 가운데 그것을 보고 있는 관객들이 작가 박민규가 웃음께나 흘리며 만들었을 것 같은 바나나맨을 알고는 있는지 몹시 궁금합니다. 새삼스레 책을 읽지 않는 나라의 비극적인 모습이 영화관에서 DC코믹스 물을 열광하게끔 만들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습니다. 이 책이 아니더라도 사회에 조금만 관심을 기울인다면 내가 왜 경쟁에 치여 스펙 쌓기에 몰두하고 써먹지도 않을 영어에 그렇게 시간을 빼앗겨야 했는지 알아차리지 않았을까도 싶습니다.


너나 할 것 없이 환상통을 앓고 있는 사람들로 하루 24시간이 부족해서 달려가듯 살고 있는 사람들이 밟히듯 지나갑니다. 영어 하나 잘한 게 다행이라 생각하는 바나나맨의 비애. 이용 가치가 없을 때 버림당해도 다시 찾아온 슈퍼맨을 바라보며 "우린 아직 친구지?" 애처로운 바나나맨. 삶을 고양하는 사유가 존재할 수 없는 이 공간에서 여전히 슈퍼맨의 정의가 전부인 듯 매달린 바나나맨의 허상이 내 조국과 겹쳐져 다시 내 환상통이 찾아옵니다. 얼얼합니다. 내 뒤통수 한쪽이 없어진 것만 같다니까요.


이제 생각하면 바나나맨을 마운틴 한 건 적어도 한국에서는 대통령이 아니었다는. 허허. 이 모든 것이 지구 영웅 전설로 끝나지 않을 지구 영웅 현실이니 부디, 바나나맨 껍질에 넘어지지 않기를 바라야 하나. 세상 모든 바나나를 없애는 게 쉬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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