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말 건넴

나는 대한민국 아 Q

[역사의 현장] 2016년 11월 12일 행진

by 이창우



루쉰의 아 Q는 글자를 쓸 줄 모른다. 그래서 자신의 사형집행 서류에 젖 먹던 힘까지 다해 동그라미를 그렸다. 결국 그는 수레에 실려 조리돌림을 당한 뒤 총살형에 처해졌다. 비겁한 노예근성, 자기모멸, 정신 승리 법, 패배감 같은 당시, 중국인의 병폐를 고스란히 보여주며 쉽게 체념해 버렸던 중국인에게 날린 한 방의 소설이다. 아 Q는 세상을 살다 보면 때로는 목을 잘리는 일도 있는 법이라고 생각한다. “사람 살려…….”이 말을 입 밖에 내기도 전에 그의 영혼은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나는 ‘대한민국’에서 살아가고 있는 ‘아 Q'이다. 내가 루쉰에게서 배운 것은 ‘정신 승리 법’이다. 1980년대 이 나라에서 스물을 맞은 나는 세상모르고 살았다. 나의 시선은 온통 자신에게 향해 있었고 이 세계의 중심은 나였다. 그러니 누군가의 ‘이력서 쓰기’는 해당사항 없는 내가 느끼는 감정은 자기 위로였다. 루쉰은 정신승리 법의 아 Q를 내세워 현실 직시를 외쳤는지 몰라도 내게는 엉망으로 돌아가는 세상에서 나를 지키려는 노력의 하나로 아 Q의 정신승리 법을 사용했다.


지칭하는 이름은 같지만 그 이면은 무척 달랐다. 다행히 정신 승리 법으로 내 안의 힘을 축적하고 가능했던 것이라 생각한다. 세상 밖에서 의연하게 살았다. 한 장의 이력서도 써 보지 않은 채 이십 대를 지나왔다. 고정된 직장 생활을 생각해 본 적도 없고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했고 생존에 위협을 받지 않아도 되었던 맞벌이로 생활을 연명하던 가정환경도 나를 내가 살고 싶은 대로 살 수 있게 해 준 것임에는 틀림없다. 적어도 내 삶의 흔적이 밴 과정으로 얻은 결과물은 시대의 요구에 맞았다.


서해문집에서 출간한 <아Q정전>은 루쉰의 첫 창작집 『외침』 중 한 편이다. 루쉰은 이 책의 자서(自序)에서 “희망은 미래에 속하는 것이므로 내게 없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에게는 있을 수 있는 가능성을 꺾을 수 없고, 내가 겪기에 고통스러운 적막감을 내 젊은 시절과 같은 꿈에 부풀어 있는 젊은이들에게 다시 전염시키고 싶지 않아서”글을 쓴다고 밝혔다.


대한민국 아 Q인 나의 사회학적 상상력으로 이런 상황을 생각해 낸다. 지난 2012년 대선을 앞두고 두 대선 후보가 TV에서 마주했다. 여기에서 나는 상상력을 발휘한다. 그 겨울, 그 시간은 참으로 속이 시원했다. 그 속 시원함의 결과가 근거가 되어 통합 민주당 해체로 이어진 것은 아닌지 하고 상상했다. 여인이 독기를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고 했던가. 그래, 우리 사회의 현실에 기반한 상상력이었다.


이런 것을 보면서 ‘정신 승리 법’에 의지해야 견디어 낼 수 있는 나는 역시 아 Q이다. 아 Q의 이런 자기 위안은 남들이 무시하든 육체적 폭력을 가하든 정신적으로 자신이 우위에 있다고 믿으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비법이다. 아 Q의 정신 승리 법은 현실에서 당하는 패배를 마음의 위안으로 극복하는 아 Q만의 승리 방식이다. 그래, 나는 스스로를 위안하고 싶다. 이 나라의 거꾸로 가는 시간대에서 역사적 존재로서 버틸 기운이 9년 가까이 빠져나가고 있기에 아 Q이고 싶은 거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아 Q가 한 당시 현실에서 발휘한 상상력은 현실로 됐다. 역사 인식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던 인물이 대통령이 되었다는 일이 지금의 여기를 가리킨다. 나와 같은 상상력을 발휘했던 수많은 아 Q들이 이제는 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날 때가 된 것이기도 하다. 대한민국 아 Q의 정신 승리 법은 '나'를 지키는 힘에서 역사의 현장을 지켜낼 힘으로 이어진다. 공동체가 존재를 위협하는 일이 더 이상 가능하지 않도록 함께 할 이유는 넘친다.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인물들이 아름다운 가치를 지키고 이뤄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들에게 혁신의 가능성은 시민의 참여와 연대다.


사회에서 부여한 허위 욕망에 나를 내맡기지 않고 나의 욕망으로 민주 공화국의 정신 승리 법을 지켜내고 싶다. 인간답게 살고 싶다. 그래서 나는 이제 광장으로 나가 세상을 품는다. 지금까지의 '나'로 살 수 없을 내일을 상상할 수 없어서 소리칠 수밖에 없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이 나의 가치 실현에 필요한 도구이기를 원한다. 내 삶의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기에 필요에 따라 일을 하고 게으른 삶을 찬양하고 싶다. 그런 선택도 기꺼이 할 수 있는 온전한 자유를 누리고 싶다. 그래서 민주주의가 달콤할 수 있다는 낭만주의자이고 싶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민의를 거역할 역사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