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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창우 Jul 18. 2016

조건 없이 기본소득

2017년 최저임금 6,470원.

   

             2017년 최저임금 일방적 결정 규탄 전국 동시다발 기자회견  


              

 ‘노사정’을 검색하면 ‘근로자와 사용자 및 정부가 신뢰와 협조를 바탕으로 노동정책 및 이와 관련된 사항을 협의하고, 대통령의 자문에 응하게 하기 위한 비상 근장 관급을 위원장으로 하는 대통령자문기구’라 쓰여 있다. ‘노동자’를 ‘근로자’로 표현한 것부터가 이 땅에서 ‘노동자’로 불리기가 얼마나 고단한 일인지를 알 수 있다. 노동자는 노동의 주체일 수 있지만 ‘근로자’는 고용주가 주체이다. 근로자는 고용주가 시키는 대로 열나게 일하고 주는 돈이나 받으면 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노동조합은 있어도 근로자 조합은 없다.

     

매 년 이맘때면 조정이 불가능해 파행으로 치닫고 확정되곤 한다. 2017년 최저임금 6,470원이다. 이렇게 반복되는 일을 하는 노사정은 1999년 8월 6일 대통령령으로 공식적이고 제도적인 기구가 되었다. 사용자의 책임성 확보와 노동자의 생산성과 유연성 강화를 통한 신 노사문화를 정부가 일방적이지 않은 합리적이고 상생적인 틀을 제도화를 가져가는 것이 목적이었다. 현재의 노사정위원회는 2006년 4월 〈경제 사회발전 노사정위원회〉로 이름을 바꾸고 공익대표성을 감소시키고 시민단체 대표성을 강화, 그 지향점을 ‘지속 가능한 동반성장을 위한 노사관계’에 두고 있다.     


과연 그럴까? 노사정에 정부가 참여하여 사측과 노동자 측을 조정해야 하는데 그 역할을 안 한다. 아니 조정할 능력이 없어 보인다. 이제 노사정에서 결정할 일이 아니라 국회에서 공론화하여 매 년 국회에서 확정 지어 최저 임금법을 만드는 게 더 나은 선택이다. 노사정은 분배의 형평성을 유지하지 못한다. 한마디로 한쪽으로 쏠린 마음에 현실감각이 있을 리가 없다. 내년 대선 후보는 얼마를 내세워 표를 모을지 지켜봐야겠다. 경제민주화를 가져다 붙인 공약의 첫걸음이 최저임금의 현실화이다. 노동자에게 '최저임금'을 최고의 기준으로 삼는 나라에서는 더욱더 그렇다.   



     

"이번 달이 지나면 들어올 돈이 없다고 무작정 겁을 집어 먹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이는 줄어들 거야!"   

   

이 책을 읽고 난 후 가장 먼저 떠오르는 말이었다. 그 두려움을 정부가 매 월 지급하는 약간의 기본소득이 있어서 해소할 수 있다면 얼마나 다행스러운가. '조건 없이 기본 소득'이 제도로 현실화하는데 노력할 수 있는 정치인이 나타난다면 한국 역사의 한 획을 그을 것이다. 지금이야 소통이 가능한 정치가 사라진 마당에 무슨 공론이 있겠냐마는 이 운동을 하고 있는 이들에게 힘을 실어 주는 것으로 변화가 시작될 것이다.     


한국사회 노동의 현실은 참혹하다. 현재 같아선 꿈만 꿀 일 같지만 많은 이들이 미래를 위한 인류의 선한 진보를 믿는 측면에서 이제라도 ‘조건 없이 기본소득’에 관심을 보여야 다. 지금 한국사회의 극단으로 치닫는 부조화는 어느 정도 상쇄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2013년 11월 기본소득에 대한 정보를 접하고 이 운동에 대해 공부해 가는 중이다. 스위스에서 이 법안이 최근 국민투표에서 반대표가 많았지만 한국 사회와는 사회복지 환경이 다르다. 북유럽과 비교할 처지는 못되지만 그저 유토피아에 머물지만은 않을 것이다.      


2009년 1월, 최광은(사회당 대표)의 기본소득 지구 네트워크 자료 번역에 의하면 이 제도의 관심과 공론화는 분명 확대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미 2012년을 기본소득 도입 원년으로 <기본소득 청'소'년 네트워크>가 발족해 현재까지 활동 중이다. 그들은 꿈을 꾸는 일이 현실에서 얼마나 중요한 '시작'이 될 수 있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세상의 위대한 변화는 아주 소수의 위대한 바보들의 첫걸음에 있음을 믿고 있기에 이 책을 읽는 동안 그 가능성의 세계를 향한 기대심리로 들떴다.     


‘조건 없는 기본소득에 관한 아이디어는 세 가지의 역사적 기원을 갖고 있다. 최소 소득에 관한 아이디어는 16세기 초에 최초로 등장했다. 조건 없는 일회적 급부에 대한 아이디어는 18세기 말에 최초로 등장했다. 그리고 이 둘은 19세기 중엽 무렵 조건 없는 기본소득에 관한 아이디어가 형성되면서 최초로 결합되었다.’ -바티스트 밀롱도-     


조건 없이 기본 소득은 어느 날 갑자기 튀어나온 급진적이고 즉발적인 모색이 아니라 지난 세계사에에서 작은 변화의 이면에 충분히 실현 가능성이 있는 제도로 거론되어 왔다. 다만 계급주의 사회에서 자본주의 체제로 진행되면서 늘 그래 왔듯이 ‘형평성’의 문제를 거론하는 반대의 근거가 현재의 치우친 형평성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형평성과 공정성'을 내거는 반대자들은 그들만을 위한 논리였다. 한국사회는 다수가 노동자이면서 노동을 말할 수 없고 노동자의 최저임금제가 최고임금제인 현실에 있다.     


기본 소득의 경제철학을 제시한 판 빠레이스는 "사회정의란 스스로 좋은 삶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실현할 수 있는 실질적인 자유의 평등한 분배"라 정식화했다. 사회를 구성하는 모두에게 조건 없이 지불하는 기본 소득이 국민 세금의 일부로 지급되는 것이 왜 분배 정의가 될 수 없는가. 늘 정부의 정책에서 자본가들인 소수에게만 주어지는 형평성 없음은 거론되지 않아 왔다. 대의제라는 사회체제는 그 믿음을 저버린 지 오래이다. 그 믿음을 일깨울 수 있는 시작이 '조건 없이 기본 소득'이기도 하다.    

 

민주주의가 민주주의를 헤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지지한 국회의원들은 더 이상 나를 대의하지 않는다. 다수의 국민들이 지속적인 관심으로 요구한다면 사회적 합의로 나아갈 공론화는 가능하지 않을까. 이 제도에는 개인이 어떤 활동을 하든 그 활동이 사회 전체의 부 창출에 기여한다는 인식이 바탕에 깔려 있다. 기본 소득은 잡음 없이 모두에게 혜택이 돌아갈 보편적 복지로 실현 가능한, 언젠가는 모두에게 가능한 권리가 될 수 있다. 그 권리는 개인의 삶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킬 수도 있다.    

 

2013년 대선 후보 중 좌파의 기치를 내건 무소속의 김순자 후보는 "모두가 누리는 기본 소득을 포함한 보편 복지"로 경제 민주화를 실현할 핵심 복지 원칙으로 제시했다. 거대 정당의 두 대선 후보의 공약에만 시선을 모았기에 아주 미미한 지지율과 무관심은 현재 사회인식의 부재를 보여 준다. 아주 먼 길이다. 하지만 경제 성장이 분배의 불평등으로 치우쳐 사회적 약자들은 늘 배제된다. 잘못된 사회구조는 없는 자를 더욱 가난하게 만든다. 기본 소득은 출생으로부터 만들어지는 불평등을 조금은 덜 느낄 수도 있다.     

 

현 대통령의 공약인 '경제 민주화'는 선거 당시에만 유효했던 '선전'에 불과했음을 현실에서 체감하는 데도 이력이 붙긴 했다. 과연 누가 덜 공약을 지키지 않을까를 고민하는 선거가 되곤 하니 말이다. '경제 민주화'는 기회의 평등으로서의 분배 정의가 선행되어야 하지만 한국사회에서 정부의 비호 아래 경제는 자본가들의 독점으로 전락된 지 반 세기가 지났다. 사회학적 상상력이 절실한 시대이다.   

   

한국인들에게 면면히 흐르는 먹을거리를 나누는 문화의 정서가 보편적 복지의 또 다른 이름으로 자리매김하여 돌봄이 가능한 공동체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이 책을 읽어 보면 ‘기본 소득’에 대한 가장 큰 어려움은 현실적으로 세수 확보에 있는 듯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관심이 필요한 곳이야 넘치지만 함께 공부하고 알아가고 싶다면 내가 책을 읽으려는 노력이라도 힘을 보태는 일이 될 수 있다.  

   

유토피아라고? 바로 그것이다. 의지만 있다면 충분히 실현 가능한 유토피아! 우리는 이 유토피아를 실현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고, 기본 소득이 실현되리라는 염원을 안고서 그 목표를 향해 묵묵히 끊임없이 내디뎌야 할 것이다.     

저자의 말이 가슴에 와 박힌다. 기본소득이라는 것이 결코 생존에 필요한 모든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수입이 한 푼도 없을 것이라는 그 공포는 한 사람의 생명을 원한다. 조건 없이 기본 소득은 그 한 사람을 살리는 일이 가능해지는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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