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내 신발에게 / 김대현 감독
“이번에 제주도로 수학여행 가지?”
“네, 정말 신나요."
“이거, 엄마가 현이 신고 가라고 샀어. 마음에 들지 모르겠다.”
“아... 엄마. 고맙습니다.”
“마음에 안 들면 매장에 가서 바꿔도 돼.”
“아니, 아니 마음에 들어요. 꼭 갖고 싶었던 신발인대요.”
“그래? 정말 다행이다. 우리 현이 마음에 든다니.”
“네, 잘 신을게요. 엄마.
그 날 이른 아침 너는 맑은 얼굴로 내가 사준 신발은 아까워서 여행 다녀와 신겠다고 하며 책상위에 가지런히 놓아두고 떠났다.
평소에 마음을 드러내지 않았던 너는 유난히 하얀 웃음을 건네며 딛는 발걸음이 가벼워 보였다. 아직 돌아오지 않은 주인의 신발은 4년이 된 오늘까지 너의 책상위에서 뽀얗게 빛을 낸다. 곧 문을 열고 하얀 웃음이 보이는 것 같다.
“엄마, 다녀왔습니다!”
그래, 아들아... 배고프겠다. 내 목소리가 다시 내 안으로 느릿느릿 들어오자 차갑게 온몸이 얼어붙는다.
이제 열일곱 해, 이 땅에 머문 너를 보낼 수 없는 마음이 더 굳건하게 내 두 발을 잡는다.
깊은 바다.
네 몸이 이리저리 흔들린다.
숨도 차지 않은지 오히려 너는 자유로워 보인다.
네 눈에 안과 밖은 경계가 없구나.
나도 하늘빛이 비껴가는 투명해 보이지 않는 벽 안에서 오히려 자유롭다.
사냥꾼들이 묶어둔 진실은 반드시 풀려 날거야.
진실은 결코 침묵하지 않아.
광장에서 팽목항에서 세월호 숲에서 세상 곳곳에서 불어오는 바람소리에 귀 기울여 봐.
무심하게 그 바다는 은꽃으로 치장한 채 흐르고 있다.
이제 가라앉은 진실은 땅위로 솟아올라 소리를 내고 있다.
세월호 참사로 수장당한 304명의 숨이 진실의 힘으로 하늘에 닿기를.
이 땅에 남은 나는 남겨진 흔적들 하나하나를 부여잡고 이리 섧게 우는 밤이 삼백 육십 오일 네 번째로 이어진 시간을 만난다. 1년 365일 매일을 차마 떠나보낼 수 없는 너를 가슴에 안았다.
다짐밖에 할 수 없는 못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열일곱 너를 기억하며 마음을 매일 기록하는 일이다.
안과 밖 어둠에서 울부짖는 넋, 기억합니다.
4주기를 맞은 세월호 참사. 다시는 이런 참사가 이 땅에서 반복되지 않도록 기억하고, 진실을 찾고자 하는 일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가 되었다. 아무리 쏟아 놓아도 다 풀어낼 수 없는 분노와 절망으로 지샌 밤을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게.
지금에 너는 어떤 모습으로 나를 웃게 할까... 어엿한 대학생이 되어 여자 친구를 소개도 해줄 테지. 학교 이야기로 십 대의 너처럼 종알종알 수다를 떨 수도 있을 텐데. 이런 일들은 내 상상에서만 가능하다니 믿을 수 없는 세월이 또 무겁게 지나가고 있다.
친구들과 다니던 동네를 휘돌아 집으로 오는 길. 샛노란 개나리꽃이 세월호 리본으로 바뀐다. 길 가에 노란색을 띤 모든 사물들이 내 가슴에 깊게 패여 묻힌 네 얼굴을 비춘다.
세월호 참사 4주기. 아직도 깊은 바다에서 흔들리는 넋은 노랑나비가 되어 이승을 자유롭게 팔랑거리며 날아다닐 수 있게 될 거야.
진실을 밝히는 일은 기억하는 사람들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니까. 너무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다, 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