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쓸모』 최태성
대문 앞 노란 국화가 깊어진 가을빛에 더욱 환합니다. 덩달아 내 마음도 환해야 하건만 저는 왜인지 마음이 무거워요. 어쩌면 얼마 남지 않은 가을 마무리로 분주한 일상이라 그런가 싶기도 해요.
이 책의 부제로 올려놓은 글귀가 저자의 마음 깊이를 헤아리게 하는군요.
"자유롭고 떳떳한 삶을 위한 22가지 성찰"
역사 공부를 제대로 하기로 마음먹은 그날부터 20년이 됩니다. 박정희의 유신헌법을 좋은 법이라 배우며 성장한 십 대가 겪은 역사 트라우마는 삶을 바꾸는 시선을 만들어 주었죠.
적어도 내 아이들에게 역사를 바라보며 삶을 찾아 나아가게 하고 싶었습니다. 우선은 스스로 알 수 없었던 역사의 진실을 찾아 나서야 했고요. 그래서 역사기행팀을 꾸려 전문강사의 도움으로 역사 현장을 다녔답니다.
초등학생 중심의 고대사와 중세이다 보니 현대에 머문 어른이 된 나는 더 깊이 더 다양한 책으로 접근하고는 했습니다. 이제 역사 덕질이라 할 수도 있겠구나.. 그럼에도 역사 관련 책들은 서가에 늘어만 갑니다.
한국 근현대사를 공부해야만 하는 젊은 세대들의 고역이 되어버린 교과서로써 한국사는 전체를 아우르지는 못합니다. 더 깊이 있게 들여다보아야 할 역사가 시험이 끝남과 동시에 뒤편으로 사라지는 현실은 슬픈 일입니다.
잠시라도 최태성 선생의 한국사 강의를 접했다면 역사 사실뿐만 아니라 내일을 향한 희망도 만날 수 있겠다 싶습니다. 지난해 발간된 이 책은 제목만큼이나 쓸모 있게 이성과 감성을 자극합니다.
다시 책 속으로 들어가 역사의 인물을 만나보고 역사의 쓸모를 되새겨 볼게요. 스물두 가지의 성찰 중 제게 가장 가깝게 다가오는 인물은 독립운동가 박상진이었어요. 한국사회 엘리트층에게서 발견하기 쉬워진 불편한 진실과 사실 그 틈을 들여다볼 수 있게 하거든요.
그 틈이 쩍 벌어지면서 파생하는 파열음이 언제나 삶을 아슬아슬하게 비껴 나기도 하고, 그래서 그 스침이 주는 슬픔에 빠지면 무거워집니다.
사회 지식인들이 한 선택은 당장은 보이지 않아도 역사의 한 줄기에 기둥 역할을 해왔습니다. 그 선택의 기준에서 공통점은 당연히 개인의 이익보다는 공동체의 이익을 우선으로 한 점이죠.
개인 선이 공공선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선택할 수 있는 엘리트가 많은 사회는 확실히 사회 전체에 좋은 영향을 주거든요. 개인적으로 사회 지식인은 지성인으로서 그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사회 전반에 뒷받침할 수 있는 성장 과정이 필요하고요.
결국엔 한 개인이 추구하는 삶의 가치에 있다고 봅니다. 유년 시절을 거쳐 청소년, 청년 시절을 지나면서 겪는 성장기에 이 사회는 과연 무엇을 해 왔는가? 교육 과정을 통찰하는 노력이 절실하죠.
도대체 인간이라는 종은 왜 이리도 부조리의 늪에서 빠져나오니 못하는가. 네, 어렵습니다.
교과서로 만난 역사는 얼마나 단편적인 사건만을 다루었는지도 알게 됩니다. 교과서 밖 이야기가 재미있는 것은 한 사람의 이야기가 작동하는 동기부여 인지도 모르겠어요.
역사를 이해하기 시작하면서 한 개인의 선택이 가져온 결과가 훗날 어떤 파장을 불러일으키면서 뒤틀려왔는지를 알아차리게 되는 겁니다.
이 책이 역사 속 인물을 적절하게 풀어놓아 지금 내게 필요한 무엇인가를 다시 일깨우기도 하는 이유는 이미 알고 있던 사실임에도 아는 것으로 끝내버렸기 때문이죠.
독립운동가 박상진은 멈추지 않고 움직였기에 꿈을 꾸고 있는 내게 더 크게 다가오는지도 모르겠어요. 저도 꿈은 늘 움직이는 과정에서 이루어지고 또다시 꿈을 꾸게 된다고 여겨왔거든요.
우적우적 홀로 걸어온 길 위에서 늘 초심을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애씁니다. 역사를 접하면서 늘 마주하는 진실과 사실,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내게는 너무도 불편한 진실이 다시 역사 안에 쌓이겠구나... 인류는 결코 그 틈을 메우지 못할 것을 확인하게 되거든요.
그 어떤 선택을 할 때 한 번은 다시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모두에게 좋은 일이 될 수 있는가? 적어도 나에게만 좋은 일이어서는 안 되니까요. 역시나 삶은 갈수록 쉬운 것이 아니라 어려워만 지네요.
이 책장을 닫으며 내 상상력이 발휘하는 희망을 떠올리는 내일이 될 수 있기를 열망하게 되네요. 누구든 이 책을 접해 '쓸모'에 대해 한번쯤 고민하는 순간을 만났으면 합니다.
2020.11.10. 무료책방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