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할 수 없는 이야기 (2)

영화 <우리 집> 같이 읽기

by 이창우

영화 <우리 집>을 같이 감상하고 '아동인권'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시간은 유익했다. 가족의 화목을 위해 무언가를 도모하려는 아이들의 모습은 안타깝기만 하다.


아이들은 자발적으로 어른이 되어 간다. 가족이기에 가능한 존재 이외에는 생각할 수 없는 현실에서 아이들의 눈에 보이는 어른, 부모, 외부의 시선에서 보니 부끄럽다.


영화가 끝나고 같이 한 우리는 서로 눈을 맞추기가 힘들다. 과연 가족 안에서 개인의 인권은 존재할 수 있는지 고민해 보면서 각자의 가족 이야기로 시간은 빠르게 지나간다.


나의 유년기 기억은 가족 안에서 어느 정도는 기쁜 일보다 슬펐던 일이 더 뚜렷하다. 유년기가 나에게는 다행스럽게 첫째로서 갖는 무게감 없이 자유롭게 지냈던 기억으로 있다.


누군가에게는 가족의 가장 같은 역할을 해야만 했던 유년의 고통이 현재의 삶을 압박하기도 한다. 깔끔하게 이론적으로 가족 안에서 아동 인권을 논하기가 쉽지 않았다.


이 영화를 보면서 아동인권이 침해당한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가족공동체의 역할이 과연 제대로 작동될 수 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자본주의 경제 체제에서 돌봄이 개인의 영역으로만 생각할 수 없는 이유는 너무 많다. 특히 유년기 가족에서 만나는 결핍은 성장하면서 안과 밖으로 들러붙어 떼어내기가 어렵다.


건강한 개인으로 성장하는데 돌봄은 필요충분조건이었다. 어른이 되어서 마주하게 되는 불안과 미래를 낙관하기 어려운 두려움의 원인이 되어 버리니까.


영화 <우리 집>은 과거보다 조금 더 나은 삶을 위한 돌봄 공동체의 역할을 진지하게 고민하게 해 주었다. 삶을 이어가면서 많은 것을 성찰하게 해 준다.


마을 공동체의 역할과 추구하는 가치에 대해 다양한 세대의 이야기가 푸근하기도 하고 조금 아프기도 한 밤이다. 유년의 기억이 오롯이 행복한 순간일 수는 없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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