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를 삭제하며 가슴이 울렁거렸다

이창우 / 『스물, 가만하다』

by 이창우

첫 장편 소설을 출간하면서 내 의지대로 할 수 없었던 것들 중 하나.


작품에서 대상을 지칭하는 '그'와 '그녀'의 구분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게 당연했다. 독자가 이해하지 못한다는 게 그 이유였다. 그녀를 '그'라고 지칭하면 못 알아먹는다고.


과연, 그럴까?


두 번째 장편 소설을 출간하면서 나는 '그녀'를 다 삭제했다. 언어 독식이랄까. 남성 중심으로 펼쳐지는 서사에서 자연스럽게 각인된 언어는 사용하지 않으려고 한다. 새로운 언어가 간절하다.


읽는 사람에게 혼란을 준다면 그러라지. 페미니즘 문학 티를 내냐고 묻는다. 그저 웃는다. 사람들은 굳이 말하지 않으면 알아차리지 못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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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을 쓰고 있는 당시 스물이던 친구가 책의 리뷰를 보내왔다.


무엇인가에 숫자를 붙인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나는 주로 무엇인가를 유유히 흘려보내고 싶을 때 그렇게 한다. “그 사람이 떠나간 지도 벌써 몇 년째네…”와 같은 방식으로.

타래를 한 바퀴씩 돌리며, 내가 거기로부터 얼마나 멀어져 있는지 가늠해보기도 한다. 그만 놓아주고 싶지만, 너무 빠르게 가버리진 않았으면 하는 마음.

스물이란 숫자 자체가 정취를 자아내는 게 아니라, 어떤 감정에다가 스물이란 숫자를 붙인 게 아닐까? 서서히 놓아주고 싶어서. 내가 그 감정에서 얼마나 벗어나 있는지 대중도 해보고.

“내가 좋아하는 공간에서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맛있게 음식을 만들어 먹고사는 일. 당연히 주어진 자유를 누리며 사는 것을 게으름이라 이름 붙인다 해도 상관없다.” (P.164)

내게 게으름이란 순간순간을 묵직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흘러가는 시간을 관성으로 붙잡는 것이다. 스물에 점점 멀어지고 있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스물을 다 놓아주진 않았다. 아직 거기 있길 바라며.

-by김서윤


첫 번째 리뷰를 보내온 그만큼 나도 스물을 아직 놓아주지 않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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