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한 책방 22.

지속 가능성 열매 하나 : 마을학교

by 이창우

책방 앞은 길냥이들의 쉼터가 되고 있다. 자주 눈을 맞추던 세 마리는 서로 먹는 동안 주변을 둘러보며 기다린다. 어디선가 슬렁슬렁 다가오는 냥이는 밥그릇 가까이로 오지도 못한다. 저들끼리 영역을 두고 경계를 하는 모습과 다른 무리와 같이 하지 못하는 한 마리 냥이는 어쩐지 나와 같은 처지구나 싶다.


금지가 제주에서 보내준 황금향을 입에 물면 그 달콤함과 상큼함에 얼굴 가득 햇살이 번진다. 긴 통화로 당장이라도 부르면 달려올 것 같은 금지는 퀴어 문화 축제 준비로 즐겁다고 한다. 작년에는 시월에 열렸지만 일정이 어찌 될지 몰라 이미 기획에 들어갔다고 한다.


제주살이에 행복하다는 금지.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책방에서 살고 있는 나도 행복하다. 대책 없는 낙천주의자처럼 보이는 내가 처음으로 못 견디게 살고 싶어 하는 순간에 있다고 하면 금지는 큰 소리를 내며 웃는다.


넌 언제나 그랬어. 현실 너머에 살고 있는 사람이잖아.

두 발이 땅에 닿아 있는데 너머는 무슨.

뭐해먹고 사니? 술 먹은 다음 날이면 어김없이 네가 끓여 주던 북엇국 생각이 나거든.

술 좀 그만 먹으라고 말도 못 하게 만드네.

사람들이 모이면 뭐 하겠어? 술 먹고 정치 타령하고 속 끓어 올라 또 마시고 그러다 노래 부르고.

사는 것처럼 살아가네.

아마도 쓸쓸함인가 보다. 혼자 밥 먹는 일이 자연스러운 내가 사람을 그리워한다. 요리하는 것을 좋아하던 내가 게을러지기 시작하면 하루 두 끼로도 넘치는 포만감에 빠져 허우적댄다. 나쁘지 않다. 이런 감정에 푹 절어 들기 전에 동네 한 바퀴 돌고 오면 다시 가뿐하다.


마을 그림지도를 들고 책방을 나서려는데 찾아가는 마을학교 평생학습 매니저라는 분이 왔다. 마을학교를 감당할 장소와 수업내용 관련 일이다. 철학 전공자가 이렇게도 통할 수 있다니. 학부시절 자원봉사로 했던 어린이 철학교실이 도움을 주다니. 그림책을 읽고 묻고 답을 찾아가는 프로그램을 요구한다.


마을학교는 자원봉사자 평생학습 매니저가 담당하며 마을 주민들이 원하는 것을 공부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일을 한다. 마을 돌봄 공동체로 자리매김하고 있어 평생학습 목표를 성취해 나가는 과정에 초점을 맞춘 교육 프로그램이다.


전공만 맞는다면 가능한 일이라니. 경력자를 우선하는 제도가 아닌 것이 초심자 행운처럼 다가온다. 저학년이니 그림책으로 하는 게 좋다는 말을 남기고 격려까지 해준다. 젊은 사람이 책방을 열고 산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니까 잘 되길 바란다고. 아이들과 같이 놀아본 적도 없는 내게 아이들과 잘 놀 것 같다고 칭찬까지.


주 1회 10차시. 마을학교 강사료는 최저시급에 3배가 넘는다. 편의점 아르바이트로 선희에게 노동 착취라는 말을 들었는데 나는 노동 대가를 그나마 제대로 받는 것인가 보다. 마을학교 개강까지 좋은 그림책과 활동에 관한 이것저것을 공부하기로 한다. 책 읽고 이야기 나누는 대상이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이라는 점이 걱정스럽기는 하다.


무언가 책방을 꾸려 나가는 일이 지속 가능해질 것 같아 갑자기 책방이 환하게 빛으로 들어찬다. 한 해 잘 모아둔다면 1년 후 가족 도움을 염려할 필요도 없으니. 어쩐지 일이 잘 풀린다는 생각은 나무 심기처럼 조심스럽기는 하다. 잘 가꾸어야 열매를 맺을 테니 마음을 다잡으며 궁리를 한다. 구체적으로 관련된 기사를 검색하면서 기운이 마구 솟는다.


마을 공동체 관련 기사를 읽으면 세상에는 의미 있는 삶을 위해 애쓰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언제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한다. 결국에는 적은 사람들이 힘을 모아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을 한다. 이곳에서 나로부터 시작될 한 걸음이 된다면 하는 기대감에 설렌다. 얼마나 오랜만에 만나는 감정인가.


이재인, 좋은 그림책부터 찾아내 읽기. 오늘 저녁은 나를 위한 요리로 오므라이스 만들기다.



[발행] 브런치북 : 수상한 책방 01~2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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