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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창우 May 18. 2023

키톱 올라미(Kitob Olami)

[책방, 눈 맞추다] 특파원 소식 03.

 안녕하세요, 책방 특파원 비더슈탄트입니다.


 두 달여의 긴 인도 여행을 마치고, 저는 중앙아시아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카자흐스탄과 키르기즈스탄을 거쳐 지금은 우즈베키스탄에 도착했습니다.


 중앙아시아는 우리와 참 먼 지역입니다. 다른 것도 참 많지요. 바다를 끼고 있는 우리와 달리, 중앙아시아는 유라시아 대륙 한가운데에 있습니다.


 카자흐스탄은 바다가 없는 내륙국 중에는 세계에서 가장 큽니다. 우즈베키스탄은 도시국가를 제외하면 세계 유일의 이중내륙국입니다. 주변 국가가 모두 바다를 접하고 있지 않아, 바다로 나가려면 최소한 두 개의 나라를 거쳐야 한다는 의미죠. 나라를 둘이나 거쳐야 한다니. 걸어서 10여 분이면 바다를 볼 수 있는 장항의 책방과는 분명 멀리 있군요.


 역사적으로도 그렇죠. 한국과 중앙아시아는 긴 실크로드를 통해 분명 오랜 기간 교류해 왔습니다. 하지만 그게 동아시아 세계의 중국이나 일본만큼 가까웠냐고 묻는다면 음, 글쎄요. 거리는 더 멀지만, 오히려 한국은 유럽이나 미국과 더 가까운 나라이니까요.


 중앙아시아가 한때 공산권에 속해 있었다는 사실도 거리감의 이유가 될 것 같습니다. 이곳에서는 여전히 영어를 잘 하는 사람보다는 러시아어를 잘 하는 사람을 찾기가 훨씬 쉽습니다. 대부분의 중앙아시아 국가는 러시아어를 공용어로 함께 사용하고 있기도 하죠.


 덕분에 중앙아시아 곳곳에는 여전히 러시아어의 알파벳인 키릴 문자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러시아어를 병기하는 경우도 많고, 키르기즈어나 카자흐어는 키릴 문자로 표기하거든요. 키릴 문자를 읽을 줄 아는 것과, 러시아어 단어 몇 개를 안다는 것만으로도 여행에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그렇게 물리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먼 땅,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에도 책방은 있습니다. 제가 오늘 방문한 책방은 "키톱 올라미(Kitob Olami)"입니다. 우즈베크어로 "키톱"은 책, "올라미"는 세상을 뜻합니다. 그러니 한국어로 풀자면 "책세상" 정도가 되겠네요.


 서점은 넓은 카페를 겸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커피 한 잔을 두고 일을 하고 있거나, 친구들과 조용히 체스를 두고 있습니다. (의외로 우즈베키스탄은 체스 문화가 활발하더군요! 지난해 체스 올림피아드의 우승팀이 바로 우즈베키스탄 팀이었습니다.)


 카페 옆으로 마련된 서가에 가 보았습니다. 우즈베크어로 된 책도 있고, 러시아어로 된 책도 있습니다. 역사책 몇 권이 있어 집어들어 보았지만, 익숙한 도시나 사람의 이름 말고는 역시 알아들을 수 있을 리가 없지요.



 그렇게 책방을 잠시 구경하는데, 익숙한 책들도 보입니다. 러시아어로 된 <해리 포터> 시리즈는 굳이 키릴 문자를 못 읽어도 표지의 그림을 보면 바로 알아볼 수 있겠더군요. 옆에는 우즈베크어로 된 <해리 포터>도 있습니다.


 그렇게 보니 눈에 익은 책들도 꽤 있습니다. <어린 왕자>는 종류별로 몇 개 씩이나 전시되어 있네요. <나루토>에 <도쿄 구울>, <강철의 연금술사>까지, 일본 만화의 힘은 여기서도 강력하군요. 익숙한 제목을 키릴 문자로 읽자니 참 생경합니다. 한국어 배우기 책이나 한국 문화에 대한 책들도 몇 권 눈에 띕니다.



 장항의 책방에서 타슈켄트의 서점까지 거리는 직선으로 5,000km 가까이 됩니다. 그 긴 거리를 서쪽으로 달려 언어도 문화도 다른 곳에 왔습니다. 하지만 좋은 이야기를 찾는 사람들의 마음은 여기서도 그리 다르지 않은 모양입니다.


 저는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입니다. 제가 있던 학교에는 특이하게도 중앙유라시아사를 공부하는 선배들이 많았습니다. 저도 학부에서 초원세계의 역사를 꽤 즐겁게 공부한 기억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중앙아시아에 별다른 친근감은 느끼지 못했습니다.


 여행을 준비하면서도 그랬습니다. 영어 한 마디 통하지 않는 황량한 초원에 버려지진 않을까 장난과 농담이 섞인 상상도 해 봤습니다.


 하지만 지금 저는 깔끔한 길을 건너 있는 도심의 공원 벤치에서 시원한 바람을 맞고 있습니다.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려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듣고 있습니다.


 말이 통하지 않아도, 문화가 익숙치 않아도 좋습니다. 서로의 마음이 그리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았으니까요. 선선한 바람이 불면 할머니는 손자와 함께 공원에 나오고, 그 아이는 <어린 왕자>나 <해리 포터>와 같은 책을 읽고 자랄 테지요.



 언젠가 그 아이가 “키톱 올라미”에서 한국어 배우기 책을 집어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때가 되어도 좋은 이야기를 찾는 서로의 마음만큼은 결코 달라지지 않겠지요. 좋은 이야기를 전해주려는 두 책방의 마음도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같은 마음으로, 오늘도 5,000km 거리에서 함께 문을 여는 두 책방을 생각합니다. 그렇게 보면, 한국과 우즈베키스탄의 거리도 썩 멀지 않을지도요.




 * 혹 제 여행기나 역사 이야기에 관심이 생기셨다면, 블로그 <기록되지 못한 이들을 위한 기억, 채널 비더슈탄트>(CHwiderstand.com)에 방문해 주세요. 블로그 외에도, 브런치와 오마이뉴스에서도 같은 글을 만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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