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된 인간

시간을 거슬러 13.

by 이창우


민주주의는 자명한가. 우리는 지금 민주주의 시대에 살고 있는가. 아니다. 그렇지만 민주주의 시대에 살고 있다. 민주주의를 말하는 것 자체가 이미 민주주의가 아니라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기에 이 책이 보여주는 비통한 민주주의에 존재할 수 없는 정치학은 우리의 이야기가 되고 만다. 자유, 평등, 평화 그리고 모두를 위한 정의가 꿈일 수는 없다.


자율과 공감이 추상적인 이념으로 그저 교과서의 한 자락에 쓰여 있다고 해서 이것이 자명하게 되는 것은 아니었다. 사회 문화 안에서 살아 숨 쉬고 실천되어야만 내면화되는 것이었다. 마치 부모가 하는 잔소리로 한 번 들으면 잊어버리고 또 들어야만 잠깐의 행위로 이어지는 일상에서 민주주의는 비통할 수밖에 더 있을까.


신을 대신하여 우상이 되어버린 자본이 차지한 시대, 현대는 몇 세기 전, 칸트가 설파한 계몽의 정신을 필요로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 시대 칸트가 외쳤던 것처럼 ‘민주주의’가 자명하게 되기까지의 과정은 한국사회에 있었던가. 너무 성급하게 지나오느라 기울이지 못했던 사려 깊음의 결여에 다시 주목하게 된다. 87 항쟁 결과물의 민주주의는 온전하지 못했고 그것을 다시 조율할 사회적인 노력이나 공론은 사라졌다.


책의 서문에서 저자 파커 J. 파머는 민주주의를 걱정하는 사람들에게 두 가지를 기억해 줄 것을 간청한다. 첫째, 이른바 “정치 뉴스”를 숨 가쁜 속도로 광범위하게 보여줌으로써 결국 우리의 무력감을 자아내는 대중매체에 우리가 저항해야 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국민들이 많은 쟁점에서 언제나 이견을 드러내야 할 것을 말한다. 민주주의는 완성을 지향하는 결과물이 아니라 과정에서 합의를 해 나아가며 지키고 다듬고 노력을 해야만 하는 가치이다.


저자는 어떤 민주주의든 그것이 살아남는 데 근간이 되는 “마음의 습관”을 키워야 함을 말한다. 그 힘은 가족, 동네, 교실, 일터, 종교 공동체 또는 다른 자발적 결사체 등에서 마음의 습관을 가르치고 배울 수 있어서 민주주의의 보이지 않는 인프라를 구성하여 그것이 건강하게 유지, 보수되어야 민주주의가 잘 작동될 수 있다고 한다. 그의 견해를 근거로 주변을 둘러본다. 한국사회는 제대로 작동되는 곳이 거의 없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가족은 사회에서 요구하는 삶의 방식에서 벗어나기에 역부족이다. 권위주의에 길들여진 기성세대는 내면적으로 크게 분발하거나 현실의 위험성을 뛰어넘을 용기가 없다면 어렵다. 동네는 정보의 편향성과 단절로 사회문제를 건강하게 이야기할 수 없다. 공간 자체가 텅 비어 있다. 학교의 교실은 붕괴되어 있으며 일터는 숨 가쁘게 지나고 있다. 종교 공동체는 편협적으로 변질되어 막다른 골목에 서서 부르짖는다.


개인과 사회가 같은 공간에서 전혀 다른 차원으로 달려가고 있는 한국사회는 사회적 책임감의 결여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국정감사가 진행되는 국회를 바라보면 정부의 부실함에 총체적 난국의 원인들을 발견하게 된다. 국가 안보와 민주주의를 외치며 스스로를 방어할 수 있는 전작권을 타국에 일임하는 것에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는 자들이 국정을 운영한다는 이 현실이 위기이다. 그저 비통한 마음으로 지켜볼 수 없지 않은가.


저자는 ‘공적인 삶의 의미’를 정치적으로 해석할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 관련된’이라 말한다. 공적인 삶은 어린이에서 어른으로 이행하여 자신을 돌보고, 타인을 돌볼 준비가 된 사람들의 활동무대로 이해되어 왔음을 자각하라는 것이다. 낯선 사람을 적으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타자를 두려워하거나 악마화하지 않고 차이가 빚어내는 긴장을 끌어안아야 하는 민주주의를 말한다. 한국사회에 ‘자유로운 공간’의 공적인 삶은 있는가.


교실과 공동체에서 민주주의를 위한 작은 실천이 가능해질 수 있도록 교사 한 명, 공동체의 한 명이 그 선택을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두 영역이 개인을 내적으로 형성하는 힘을 지니고 있어서 민주주의 사회에서 창조적인 역할을 하는 능력을 훼손할 수도 있고 신장시킬 수도 있음을 말한다. 내면의 쟁점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민주주의가 자라날 수도 있고, 파괴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한국사회의 교실에는 사람이 없다. 등급이라는 숫자만 있다.


삶의 의미를 되돌아보며 살아갈 수 있는 시간들 앞에서 무관심하지 않았으면 한다. 내 삶을 과정으로 이해하고 있다면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과 더불어 여유롭고 편안하다. 그 과정을 들여다보면 진보와 보수의 이분법, 선과 악, 성공과 실패라는 구속에서 자유롭게 되지 않을까. 사람이 중심이 되는 사회는 그리 어려운 것도 아니었다. 자신만의 고유한 가치를 찾아내어 그것을 지켜나갈 수 있으려면 사회에 적절한 제도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렇기에 나는 행위를 해야만 한다. 박제된 인간이고 싶지 않다.


2014.11.06. 파커 J. 파머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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