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시일반(十匙一飯)은 ‘열 사람이 한 숟가락씩 밥을 보태면 한 사람이 먹을 만한 양식이 된다’는 뜻으로, 여럿이 힘을 합하면 한 사람쯤은 도와주기 쉽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죠. 이 책은 10인의 만화가가 꿈꾸는 차별 없는 세상을 위해 한국사회, 우리 주위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차별의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한 사람의 밥그릇에서 열 사람이 밥 한 술씩 덜면 그 사람의 밥그릇에 밥이 남을까요.
2003년 출간된 이 작품은 국가인권위원회가 기획한 시사만화입니다. 십 년이 훌쩍 넘은 현재에도 여전히 변하지 않은 모습으로 인권은 작동되지 않습니다. 서울시 인권위원회가 최근 논란이 된 '서울시민 인권헌장'과 관련해 시민위원회의 표결 결과를 합의로 인정하고 선포해야 한다고 서울시에 권고했다고는 하더군요. 실상 한국사회에서 인권은 자명한 것이라는 공유조차 되지 않은 거죠. 인권이 위협받는 사회, 사람은 없는데 국가 존립이 가능한 건지요.
이 작품은 9가지의 주제로 인권의 감수성을 일깨워 줍니다. 검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소수자들의 다름을 차별로 몰아가는 한국사회 다수자, 강자들의 모습을 나의 시선으로 확인하게 해 줍니다. 신호등의 체계로 보여주는 장애인과 노약자 등은 배려하지 않고 있는 거리의 멀고 먼 건널목이 보입니다. 이미 빨간불로 바뀐 도로, 목발을 짚고 횡단보도라는 장애물과 싸우는 장애인의 경주가 바로 오늘도 일어납니다. 힐끔힐끔 쳐다보는 이들의 눈빛, 남의 불행은 참 쉽게 잊히지요.
평범한 사람들은 군입대를 정상적인 것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사회적 지위가 높다거나 경제적으로 부유한 특별한 사람들은 군 입대 자체가 비정상이라 생각해 부모의 지위로 '군 입대 면제'가 일어나는 한국사회의 현실을 보여 주죠. 병역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입대한 군대에서 일어나고 있는 죽음은 끊이지 않습니다. 현실과 단절되어 폐쇄된 공간이 되어 버린 군대에 제 자식은 보내고 싶지 않았던 이들이 정상인 것일까요. 아니면 국민의 의무를 당연하게 이행하는 이들이 비정상이라는 걸까요.
10인의 시사만화는 한국사회에 만연하고 있는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차별로 인한 고용 불안정성이 십여 년 전 보다 더욱 악화한 현실을 직시하도록 해주고 있지요. 외국인노동자를 대하는 인종에 대한 차별은 폭력으로 확대되어 가고 개성을 인정하지 않는 왕따 심리도 결국에는 차별로 이어집니다. 지금도 광장에서 고공에서 노동자들이 외치고 있습니다. 기업의 노조탄압에 정부의 몰염치한 무대응은 국가의 직무유기입니다. 정부의 부재함은 무정부 상태라 하는 것이 더 적절하지 않은지요.
성형중독으로까지 이어지는 한국사회에 만연된 외모지상주의와 학벌 지상주의로 빚어지는 취업자의 평가, 외국인 노동자의 착취, 장애인 사회보장제도의 최저생활비조차 보장되지 않는 현실은 이 겨울의 한기를 더 실감 나게 합니다. 동성애에 대한 사회적 편견으로 빚어지는 분노는 꽁꽁 얼어붙은 한국사회의 냉소와 혐오의 확산, 무엇을 위한 반대인지도 모르는 채 외쳐대는 편협함으로 넘칩니다. '차별'과 '차이'를 구별하지 못하는 사회에서 다양성은 사라지고 박제된 사람만 들끓겠군요.
다른 종자로 분류되는 빈부격차에 따른 차별은 또 어떤가요. 인간답게 사는 데 필요로 하는 권리가 인권이라면 그 어떤 차별도 있어서는 안 됩니다. 개인이 선택하는 삶의 방식은 자유롭고 개인이 주체적으로 선택한 그 자유로 차별받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을 헌장으로 남기는 것에 무슨 이유가 필요할까요. 신뢰를 저버리지 않는 서울시의 서울시민 인권헌장의 공포를 바랍니다. 오늘은 세계 인권선언이 날이기도 합니다.
선언만으로 남은 시대, 하도 답답해서 전공자에게 ‘사람’을 생물학적으로 설명해 달라고 부탁을 했더니 이렇게 툭 알려줍니다. “진핵생물역 동물계 진정후생동물아 계 후구동물 상문 척삭 동물문 척추동물 아문 유악하문 사지 상강 포유강 수아강 진수하강 영장 상목 영장목 직비원 아목 원숭이 하목 협비원 소목 사람 상과 사람과 사람아 과 사람 족 사람아족 사람 속에 속하는 종인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
이 설명이 맞는지 어쩐지 모릅니다만 사람입니다. 그 사실 외에 무엇이 더 필요한 것일까요. 생명을 가진 사람 속에 속하는 종이 누리는 권리, '인권'인 거죠. 인간의 타고난 자연성, 인간은 자연적이기에 인간이 인권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사실이 충분히 인지되어 있어야 했습니다. 70억의 인간이 다름으로 차별할 수 있는 것은 과연 무엇이어야 하는 걸까요. 인권은 생명을 담보합니다.
가부장적 질서에 순응하며 핍박받는 여성들이 ‘현모양처’로 ‘모성애’로 치장하며 지나온 한국사회, 여성이 사람으로 인식되고 내 아이가 한 사람으로 존중되고 한 개인이 국가에 의해 배제되지 않도록 해야겠지요. 태어나는 순간부터 부여받은 ‘천부인권’이 자연스러운 사실로 인지될 수 있도록 개인의 인권 의식이 단단하게 무장되는 것으로 시작되어야 합니다.
인권의식은 가정에서 시작되어 교육의 장으로 이어져야 하며 꾸준하게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사회는 개인이 만들어가는 거지요. 사회에 의해 규정된 나로서 살아가는 것은 비 주체로서 기꺼이 그들의 도구로 전락함을 의미하는 겁니다. 사람이기에 부단히 요구할 수 있고 잃어버리지 않아야 할 것, 인권입니다. 자명하기에 더는 말하지 않아도 될 그때까지 투쟁해야 얻어지는 '사람'이라면 그렇게 하는 것이 옳은 일이겠죠.
2014.12.10. 박재동 외 9인 『십시일반(十匙一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