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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숲 Feb 07. 2022

남편이 상위 1%네요

남편의 육아휴직




우리 아들이 태어나고 돌이 지나고 얼마 안 있어 남편이 육아휴직을 결정해주었다.


남편은 대기업에 다니고 있는데 그 안에서도 육아휴직 쓰는 남자는 네번째인가 그랬다. 부서 상무님이 ‘정륭아, 니 자리 걱정은 하지마! 아무 걱정말고 잘 다녀와’ 해주셨고 팀장님은 ‘이 회사에서 너한테 스트레스 줄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야, 내가 너를 응원하고 있으니 1년 잘 보내고 돌아와’ 하셨다. 당시에는 두 분의 말씀을 남편을 통해 전해듣고 감명받아 팀장님께 따로 감사하다며, 문자 메세지까지 보냈었다.


아이는 엄마 혼자 낳고 키우는게 아닌 부부 두 사람이 만들고 낳아 기르는 일인데 아빠가 육아휴직을 쓴다고 해서 ‘니 자리는 내가 맡아줄게, 걱정마!’ 말씀들을 감격하며 들어야 한다니. 이게 참 지금 생각해도 좀 놀랍다. 언제쯤 아빠의 육아휴직이 당연한 일이 될 수 있을까? 10년 안에는 그렇게 될까?



하여간 그때는 두 분의 배려가 너무 감사했다. 대기업에서도 불과 5년전인데 아빠의 육아휴직은 많이 없었고 지금도 마음의 부담없이 아빠들이 유아휴직을 마음껏 쓸 수 있는 분위기는 아닌 걸로 알고 있다. 그렇게 남편이 육아휴직으로 온전히 1년의 시간을 우리에게 선물해 주었다. 나는 마음껏 일했고 아이는 아빠와 함께 정말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런 과정을 블로그에 기록하다보니, 자연스레 몇번이나 아빠의 육아휴직으로 인한 인터뷰 요청이 있었다. 논문을 준비중이라는 어떤 박사님이 우리집 근처까지 오셔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부부가 따로 꽤 오랜 시간 인터뷰를 진행했고 남편이 먼저, 다음이 내 차례였는데 인터뷰가 끝나고 나온 남편이 덤덤한 표정으로 평범한 질문인데? 말하길래, 통상적인 질문이겠구나 여기고 속편히 들어간 회의실에서 나를 맞이한 박사님의 얼굴에 놀라움, 신기함이 표정에 담겨 있었다. 늘 남편은 어딜가나 칭찬과 부러움을 받게 해주는 사람인지라 그런 반응이 크게 놀랍지는 않았는데 그 분이 대뜸 그런다.


부부의 육아와 남편의 육아휴직에 대한 꽤 많은 사례를 읽었고, 공부했고, 육아휴직 중인 분들중에 꽤 많은 사람을 인터뷰해 보았는데 이런 분은 처음 봅니다. 감히 말씀 드릴 수 있어요, 대한민국에서 적어도 상위 1% 남편과 살고 계시네요. 하고



얼떨떨했다. 니네 남편 너무 자상하다, 너는 좋겠다 라는 두루뭉술한 말보다 수치상 그리 대단한 사람이라는 말을 들으니 괜한 걱정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평균 그 언저리(혹은 더 아래)에 위치해 있을 아내로서의 나의 위상이 슬슬 불안하기 시작했다. 내 불안감은 보이지 않으시는지, 박사님은 말씀을 이어갔다. 우리나라에서 육아휴직을 오롯이 아내를 위해 쓸 수 있는 남편이 얼마나 될 것 같냐, 우리나라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인구 중 4%도 안된다. 그런 분들을 다수 인터뷰 해 보았는데 그 분들 중에서도 이런 분은 처음 봅니다. 감히 처음 보는 분이고, 상위 1% 남편과 살고 계시네요, 하고


나는 그동안 남편이 너만 편하면 되, 민정아 너만 안 힘들면 된다, 나는 그게 제일 중요하다 라는 말을 솔직히 100% 믿질 못했다. 누군들 믿겠는가, 입버릇처럼 하는 그 말들이 전부 진심일거라고는 전혀 상상도 못 했다. 그저 애정 표현을 이렇게 하는구나, 정도로만 늘 생각했는데 그 분이 남편의 인터뷰 중 몇 가지를 전해주시는데 아 그게 다 진심이었구나, 하고 놀라워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일례로 남편은 주말에 우리 모자만 두고 나가는 경우가 거의 없다. 그 이유라는 것이 다른 사람들이 너를 ‘남편은 뭐하고 주말까지 혼자 나와서 애를 보냐? 단 한명이라도 그렇게 생각하게 하는 것이 싫다’고 말했다. 너를 그런 사람으로 보이게 하고 싶지 않다며 가끔 명절에 친구들이 모이는 날, 혹은 친구들과 2-3년에 한 번 여행갈 때를 제외하곤 하루도 빠짐없이 우리 곁에서 시간을 보내 주었다. 그 좋아하는 친구 형님들이 지척에 살아도 우리만 두고 나가는게 싫다며 / 자세히 말하면 나 혼자 고생하는게 싫다고 술모임도 아이가 태어나곤 거의 나가지를 않는다. 그런 사람인지라, 육아휴직을 하곤 아침 잠 많은 내가 눈을 뜨면 이미 아이가 등원하고 없는 날들이 주르륵 이어졌다. 그동안 내가 많이 했으니 이제는 남편이 하는게 당연하지만 고맙다고 생각했었는데 너를 편히 재우고 내가 좀 더 움직이면 된다는 생각을 남편이 늘 하고 사는지는 몰랐었다.



육아휴직 내내게임도 안 하고, 친구들도 안 만나고 우리 곁에만 붙어 있길래 여보 친구들도 좀 만나고, 취미 생활도 좀 하고 그래, 라고 말했더니 ‘너희가 내 취미야’ 말하던 양반

늘 나와 알콩 달콩 지내고 싶어하고, 말 한마디 모질게 하면 그걸로 내내 삐쳐있고 너 진짜 남들처럼 살고 싶냐며 협박하는 사람


같이 붙어지낸지 15년차, 부부로도 연인으로도 이제 좀 지겨울 법도 한데, 여전히 나를 주무르고 안고 싶어하는 남편한테 짜증 한 번 부렸다가 3일은 삐져있던 사람이었다. 허나 마냥 사랑만 하냐면 또 그런 것도 아니고 우리도 여전히 가끔은 부부싸움을 하는데 요근래 집 나가겠다고 협박을 두 번 정도 했는데 그 때마다 온 몸에 피가 다 빠져나가는것 같다고, 자신이 잠들었을 때 몰래 집나가면 안되니까 자는 내내 손을 찾아서 잡고 있는 남자와 살고 있다. 문득 우리 부부가 이렇게 여전히 알콩달콩 할 수 있는 이유, 가족과의 시간이 늘 이렇게 재미있고 화목할 수 있는 이유도 아마 평범한 쪽에 가까운 나보다는 수치상으로도 특별한 남편의 배려와 사랑, 덕분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아마 앞으로도 우리는 큰 변화 없이 지금과 비슷한 모습으로 살아가겠지. 기든 아니든 가족의 모습에는 남편의 역할이 지대하니까. 가끔 싸우고 화내고 토라지겠지만, 늘 그때뿐이겠지.


나중에 시간이 꽤 많이 지나면 아 그래, 우리 이렇게 배려하면서 열심히 아이 하나 잘 키워보겠다고 노력한 적도 있었지, 어쩌다 운 좋게 칭찬도 받았고, 기억하고 싶어서 남들 앞에서는 (남편 자랑은 넣어둬야 할 경우가 많아서) 감히 한 번도 말하지 못했던 것들을 3년이 다 지나서야 적어본다. 나는 대한민국 상위 1%의 남편과 살고 있다. 그 큰 배려와 사랑을 절대 당연히 여기지 않아야지, 다짐하며 적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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