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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숲 Mar 04. 2022

도시속의 빈곤



19살에 미대입시를 준비하면서 친구들과 서울에 올라와 살았다. 그 때 처음으로 서울역의 노숙자들을 보았다. 그 중 몇명의 기억은 시간이 이렇게 흘렀는데도, 여전히 생생하다. 그때 어린 내 눈에 지방 소도시에 살면서 어려운 사람은 보았어도 소위 거지는 보지 못 했었다. 가끔 육교에서 구걸하시던 분이 있었는데 그 분도 일하는 시간이 끝나면 집으로 돌아가셨다. 그랬었는데 서울역에서 박스 몇 장 깔아놓고 여기서 먹고 자는 사람들이 있다니, 길 위에서 먹고 자고 살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낯설던지. 그 중에 한 분이 무척 기억에 남는다. 서울역 광장을 지나 지하철 역으로 들어섰더니, 30대로 보이는 남자가 허름한 회색 정장을 입고 가슴에는 두툼한 브리프 케이스를 품에 안고, 이제 막 박스를 끌어와 지하철 역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 눈에는 당혹스러움, 두려움, 체념 등이 서려 있었는데 나는 건장한 한 남자가 말 그대로 길에 나 앉는 장면을 실시간으로 목격한 것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눈물이 참 많이 났다. 인생이 어쩌다 길로 흘러 들어왔는지, 박스 한 장에 몸을 앉혀야 하는지, 저 사람이 아무렇지도 않은 넝마를 입고 박스위를 내 집처럼 널부러져 눕는데는 얼마의 시간이 걸릴까, 등의 생각을 했다. 주변을 두리번 거리던 그 분의 눈은 참, 지금도 이렇게 선며하게 기억이 난다. 그 분, 이제는 건강히 안정적인 궤도로 잘 들어섰는지, 그랬으면 좋겠다.



친구랑 대학을 다니면서 홍대 앞에서 자취를 한 적이 있었다. 그 날도 평소와 다름없이 커피 한 잔을 하자며 마음에 드는 카페를 찾고 있었다. 사람 많은 곳 쓰레기통을 뒤지는 아저씨를 발견하기 전까지는 평소와 다름없는 하루였다. 아저씨는 젊은 애들이 먹다 버린 커피를 허겁지겁 쓰레기통에서 꺼내 마시고 있었다. 그때도 너무 놀라 잠시 멍하니 서서 바라봤다. 버려진 테이크아웃 컵에 남은 음료를 이것저것 마시고 나서 쓰레기통을 뒤지기 시작했다. 친구에게 잠시만 기다려달라 말하고 가까운 편의점으로 달려가서 3만원치 정도 음식을 담았다. 컵라면, 햄, 참치, 라면 같은 것들을 담아서 그 분 곁에 가 서서 팔을 톡톡 쳤다. ‘그거 드시지 말고, 이거 드세요’ 혹여나 기분 나쁘시지 않도록 웃으면서 전해드렸더니 아저씨는 눈에 눈물이 가득 고였다. 그리고 가만히 나를 바라보시더니 ‘혹시 어디사시는 누구신지, 이름을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너무나 멋지고 공손한 목소리였다. “네, 서교동 사는 김민정입니다” 방긋방긋 웃으며 대답해 드렸더니 절대 잊지 않겠다고 하시며 몇 번이고 서교동 김민정, 서교동 김민정 선생님, 하셨다.


그 분을 뒤로 하고 친구와 홍대에서 크고 예쁘고 핫한 카페에 들어섰다. 빈자리 하나 없는 그곳에는 테이블마다 채 먹지도 못한 케이크, 빵, 그리고 음료수들이 가득가득 놓여 있었다. 그때의 생경함, 이질감. 누군가는 이 정도의 돈이 없어 쓰레기통을 뒤지고 있는데 누군가는 먹다 버릴 정도의 가치라니. 마음이 어지럽고 머리가 일렁거렸다. 자꾸만 눈물이 났다. 낭비하는 젊음과 절박한 노년이 도저히 매치가 되지 않았다.


사진 출처 : 핀터레스트

이제는 그런 분들을 봐도 예전처럼 눈물이 흐르거나 마음이 동하지는 않는다. 그저 도시 속 하나의 풍경으로만 보일 뿐이다. 그렇게 스쳐지나가게 된다. 오래도록 사소한 것에 마음쓰고 남을 돕고자 하는 마음을 잃지 않고 살 수 있기를 바래본다. 내 곁을 지나치던, 그때 남을 돕던 나를 오히려 더 신기하게 쳐다보던 수많은 어른중에 하나로 나이 먹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다시 해 보는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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