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영원한 멀어짐은 아님을,
우선 멀어졌다는 표현은 손절이 아님을 밝힌다. 함께 보내는 시간이 적어졌다는 의미의 멀어짐이지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이 달라졌다는 것이 아님을 미리 굳이 오해없길 바라는 마음에 적어본다.
어린 시절부터 내 꿈은 두가지였다.
하나는 평생을 이젤 앞에서 파레트와 붓을 들고 사는 미술작가로 사는 것, 다른 하나는 정장을 입고 힐을 신고 뛰어다니며 컴퓨터 앞에서 작업을 하고 프레젠테이션을 하며 사는 삶. 막연히 어떤 PT를 하게 되는지도 몰랐고, 어떤 일을 의미하는지 모르겠지만 그랬다. 일단 대학을 디자인과를 선택한 이후 내 삶은 후자에 가까워졌고 지금도 누군가를 설득하고 누군가를 위해 나의 재능을 파는 일을 하며 산다. 남편과 연애를 하고 있을 때도 내 꿈은 골드미스에 가까웠다. 남편과 결혼을 할 거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고 초,중,고 친구들 역시 제일 늦게 결혼 할 것 같은 친구로는 늘 나를 꼽곤 했는데 참 세상사 내 뜻대로 되는게 이렇게 없다니
남자도 많이 만나보고 서른 훌쩍 넘어 결혼하고 싶었던 내 꿈은 23살에 남편을 만나 29살에 결혼하면서 흩어졌고, 딩크를 꿈꾸던 내 바램 역시 다섯살 아들을 키우며 힘들어 죽겠다, 예뻐 죽겠네 그 사이에서 정신없이 살아간다.
내가 평범한 삶을 꾸려나가는 사이에 누구보다 빨리 결혼하고 싶어했던 친구들은 여전히 골드미스로 살고 있기도 하다. 혹은 결혼을 했지만, 아이가 없던지. 사실 이제는 내 나이 또래의 미혼, 독신, 그리고 가장 중요한 무자식의 여성은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일상을 보내는지 나는 전혀 알 길이 없다. 어떤 삶을 사는지, 얼마나 편안하고 쾌적한지 감도 안 온다. 사실 이제서야 딩크로 살고 싶다고 생각했던 일이 이제는 아찔하게 느껴질 정도로 이 아이가 소중하지만, 내가 가보지 못한 길이 여전히 궁금하기도 하다. 무엇이 낫다, 아니다의 개념이 아니라 달라진 상황에 놓인 / 친구였던 우리들이 변하는 모습에 대해 적어 보고 싶었다.
함께 친구로 보내 온 오랜 시간보다 각자가 처한 지금 당장의 다른 상황은 생각보다 큰 산이 되어 대화를 가로 막기도 한다. 임신, 출산, 특히 신생아를 키우는 동안에 내 인생에 모든 큰 관심과 신경이 육아에 쏟아질 때 친구의 회사나 직장, 연애 이야기는 아득히 먼나라 이야기처럼 들리기도 한다. 상대방 역시 그렇겠지. 지금 당장 전혀 공감이 안되는 아이 크는 이야기나 시댁 흉, 남편 이야기를 듣는게 얼마나 고욕일까. 대부분의 처녀 총각들은 아기들을 예쁘다 귀엽다 여길 일이 별로 없으니, 수유를 얼마나 했고 어떤 똥을 쌌고 얼마나 잤는지가 궁금할리 없다. 반대로 별 생각 없는 나의 가족 이야기가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되기도 하고 이 모든 다른 상황에서의 관심사가 현저히 다르다보니 비슷한 상황에 있는 새로운 친구들이 서로의 인생에 더 농밀히 다가오기도 한다.
서로가 이해의 범주가 줄어 들었다고 해서, 당장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다르다고 해서 우리라는 사람이 달라진 것이 아님을 잊지 않고, 조용히 시간이 흘려 보내고 이 격렬한 소용돌이에서 각자 빠져 나오고 나면, 그때는 우리가 훨씬 더 성숙한 대화를 나누는 또 다른 모습의 친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때는 니가 홀로 치열하게 버텨 온 이야기도, 내가 치열하게 아이를 키우고 일을 하며 울고 웃었던 일들도 더 즐겁게 나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그때까지 너는 니 자리에서, 나는 내 자리에서 열심히 시간을 보내고 서로가 더 어른스러워졌을 때 다시 서로의 인생에 깊숙히 스며들어보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