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야
제가 좋아하는 친구가 있습니다.
말이 조용하고 태도는 단정합니다.
옷을 고르는 감각도 좋고, 소지품 하나하나에도 고른 안목이 느껴집니다.
말을 아끼는 사람이지만 할 말은 또렷하게 전합니다.
함께 있으면 마음이 정돈됩니다.
균형 잡힌 사람을 떠올리면 늘 이 친구가 생각납니다.
얼마 전, 친구 집에 초대를 받았습니다.
요즘 누군가의 집에 갈 일은 흔치 않습니다.
전셋집 보러 다닐 때 말고는 남의 집을 직접 마주할 일이 잘 없죠.
그래서인지 괜히 조금 설레었습니다.
고작 친구 집에 가는 일인데도요.
현관을 지나 집 안으로 들어섰습니다.
처음엔 딱히 이상할 것이 없었습니다.
가구도 잘 배치되어 있었고, 요즘 유행하는 물건들도 보였습니다.
그 친구 감각에 어울리는 소품들도 곳곳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어색했습니다.
가구의 형태나 배치는 나쁘지 않았고, 불편한 것도 없었지만 편하진 않았습니다.
친구에게서 느껴졌던 그 균형과 조화, 친구의 집에서는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자가가 아니라서 원하는 대로 꾸미지 못했을 수도 있고, 최근에 이사를 와 아직 공간을 정리할 시간이 부족했을 수도 있겠지요.
무엇 때문이었는지, 사실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한 시간쯤 머물다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현관을 열며 나도 내 집을 다시 한번 느껴봅니다.
‘내 공간은 나와 잘 어울리고 있을까?’
‘친구가 우리 집에 오면 나처럼 느끼지 않을까?’
거실 한편에 가만히 서서, 고개만 돌려가면 집을 바라봅니다.
노랫소리가 들립니다.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서 당신의 쉴 곳 없네.’
카페의 백색소음이 아닌 노이즈 캔슬링 이어폰으로 들려오는 듯한 또렷한 소리입니다.
‘내 집 또한 나를 닮지 않았구나.’
한 사람인데
두 공간 속에서 살아갑니다.
가만히 생각해 봅니다.
정리가 안 된 건 물건이 아니라, 마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삶의 태도는 공간에 배어납니다.
무엇을 어디에 두는지, 어떤 것을 곁에 두는지,
그 공간에 무엇이 있고 무엇이 없는지를 보면
자연스레 그 사람의 태도가 보입니다.
저는 ‘고요’와 ‘평화’, 이 두 단어를 좋아합니다.
그렇게 살아가려 노력하고, 제가 머무는 공간도 그렇게 닿아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저는, 그런 가구를 만들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