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다른 수평선의 너머

by 은해

그림자는 빛으로부터 태어났다.

그러나 그는 창조주를 쳐다보지 못하고,

엎드려 따라다니기만 해야 하는 운명을 타고났다.

빛이 걷는 길 위에서만 존재할 수 있었고,

빛이 멈추면 그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의 생은 그저 밝음의 부스러기이었으며

그의 이름은 부재의 다른 이름이었다.

그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지만, 모든 소리의

윤곽을 따라 그 모양을 만들어냈다.


한낮이 깊어질수록 그는 더욱더 길어졌다.

잎의 떨림, 새의 비행, 찰랑이는 버섯의 가장자리까지

스며들며 그는 세상을 베껴냈다. 그러나 그 복제의

끝에서 그는 자신이 아무것도 아님을 깨달았다.


해가 기울었을 때, 그때 빛이 그를 버렸다.

그제야 그는 빛의 자식이 아니라 숲의

그림이 되었다. 이끼의 어둠 속에서, 나무와 땅 사이의

틈에서, 그는 천천히 자신의 몸을 얻었다.


밤이 오자, 그는 완전한 숲이 되었다.

어둠은 그를 이름 삼았고, 별빛은 그의 눈이

되어주었다. 아무도 그를 보지 않았지만

모든 생명이 그 위에서 잠들었다.


그리고 이튿날 새벽, 빛이 다시 숲에 들어왔을 때

그는 사라지지 않았다. 단지 조금 더 깊은 곳으로

내려갔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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