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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당신을 지키는 사랑

보이지 않게 나를 지켜주는 마음들

by 오보람

지금 일하고 있는 곳에서 도보 3분 거리의 김밥집이 있다. 요즘 거의 일주일에 세 번은 가는 것 같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서 주방에 계신 사장님께 말한다.


"김치볶음밥 하나 먹고 갈게요."



나에게 김치라고는 삼겹살이나 고기를 먹을 때만 느끼함을 잠시 해소하기 위해 곁들이는 반찬이었다. 이 식당의 김치볶음밥은 냉동식품이 아닌, 사장님이 냉장고에서 김치 포기를 꺼내 숭덩숭덩 썰어 밥과 함께 강력한 화력으로 볶아낸다. 많이 짜지 않아 적당한 맛을 자랑한다. 내 12월의 카드 이용내역 중 가장 많은 결제 횟수를 자랑하는 이 김밥집의 매력은 집밥 같은 심심함이다.



음식이 나오면 사장님은 집에서 먹을 반찬을 만들었다며 반찬 몇 가지를 내어 주신다. 오늘의 반찬은 따뜻한 무나물과 새콤한 미역무침이다. 무나물은 냄새부터 고소하다. 내가 삶았을 땐 이런 맛이 안 났는데. 감사한 마음으로 나는 항상 내게 주어진 음식들을 밥 한 톨 남기지 않고 싹싹 비운다. 식사를 마치고 벗어두었던 코트를 다시 입었다. 밖으로 나오니 여전히 눈이 내리고 있다. 우산을 들고 눈 쌓인 길에 조심조심 걸으며 발자국을 새긴다. 저기 멀리 가까워지는 회사를 보면서 생각한다.



항상 혼자 있지만 도처에 가득한, 내가 알아채지 못한 사랑들이 나를 지켜주고 있다.

오늘처럼 눈이 펑펑 오는 날 항상 내 손에 들려있는, 대학 동기 언니가 선물해 준 우산,

돈 한 푼 잘 쓰지 않는 나를 위해 자신의 겨울 코트를 내어준 내 동생의 사랑,

불향 입힌 김치볶음밥과 따뜻한 반찬 그리고 밖이 미끄러우니 조심하라는 말을 덧붙이는 김밥집 사장님의 마음, 끼니를 챙기지 못하는 나에게 견과류며 과일이며 바리바리 싸들고 와 먹으라며 건네주는 동료 선생님의 마음, 나를 지켜주는 그 모든 사랑 속에서 하루를 버티고 2023년을 살아냈다.



2024년에는 나도 조금이나마 마음을 내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작은 모닥불처럼 언젠간 꺼지겠지만 잠시라도 누군가와 함께 내 손 위의 따뜻함을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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