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보람 Feb 23. 2024

이대로 떠나보내긴 너무 아까운 책이라

기증도서, 오랜 추억과의 작별

   종이책은 빛을 받으면 쉽게 색이 바랜다. 그래서 햇볕이 잘 드는 우리 집엔 책등만 하얗게 빛나는 책들이 가득하다. 도서관은 1층이지만 외부에 지붕이 있어 도서관 내부로는 햇볕이 전혀 들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책에겐 좋지만 사람들도 바깥으로 나가지 않고는 빛을 만날 수 없다는 큰 단점이 있다. 1층과 0.5층의 중간 정도에 있는 도서관은 다행히 고온다습한 여름도 제습기 없이 잘 버텨냈다. 도서관에서 소장 중인 책들은 항상 낙서는 없는지, 구겨지진 않았는지 관리하기 때문에 상태가 비교적 양호한 편이지만, 간혹 상태가 좋지 않은 책들이 누군가의 손을 통해 오기도 한다.



   대부분의 공공도서관은 이용자의 기증도서를 받고 있다. 우리 도서관도 그렇지만 대개 출간된 지 5년 이내의 신간을 받으며 도서관에서 기증을 원하는 책과 같은 책을 이미 소장 중인 경우 받지 않기도 한다. 공공도서관의 기증 도서는 몇 가지 규정에 따라 기증이 가능하며, 규정에 부합하는 도서는 장서로 등록하는 과정을 거쳐 서가에서 이용자를 만나게 된다. 나의 경우는 출판사에서 서평 작성을 위해 받은 책들을 동네의 가장 큰 도서관에 기증한 적이 있는데, 책에 판매가 불가하다는 도장이 찍혀있었지만 그 도장이 찍혀있어도 기증할 수 있다고 했다. 물론 기증 가능 여부는 도서관마다 다를 테니 책을 기증하고 싶을 땐 해당 도서관에 먼저 전화로 물어보는 게 가장 좋을 것 같다.



   간혹 반납함에 도서관 장서가 아닌 주인 없는 책을 두고 가는 경우도 있다. 종교 경전이나 포교를 위한 서적, 도서가 아닌 책자들을 반납함에 두고 가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이 경우에는 지체 없이 폐기한다. 일반적으로 상상할 수 있는 종교가 아닌 흔히 사이비라고 부르는 종교의 경전이나 교주의 가르침이 주 내용인 책은 다수가 이용하는 공공도서관에 둘 수 없다.



   도서관에서는 종종 누군가의 추억으로 가득한 책을 만나게 되기도 한다. 우리 도서관은 특히 어르신들이 많이 방문하시니 세월의 흔적이 여실한 책들을 장바구니에 담아 "이거 깨끗한 책인데"하며 건넨다. 낙서 없는 깨끗한 책은 맞지만 이미 내지가 누렇게 바랬고, 발행일을 확인해 보면 지금으로부터 40년쯤 된, 나보다 더 오랜 세월을 지나온 책이다. 구입 당시엔 새 책이었더라도 이렇게 오래된 책들은 원칙상 비치할 수 없기에 말간 얼굴로 책을 내밀며 기증 의사를 밝혔을 때 어떻게 거절해야 할지, 다른 방법은 없을지 늘 고민했다. 누군가의 손에서 전해진 책들은 분명 의미가 있을 터였다. 그 의미를 다른 사람들도 함께 나눌 수 있었으면 했다. 그러다 도서관 한편에 이용자들이 자유롭게 서로의 책을 두고, 가져갈 수 있는 코너를 만들게 됐다. 여기에도 너무 오래 비치된 책은 폐기하되, 충분한 기간을 두고 지켜보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이 코너를 통해 많은 책들이 새로운 행선지를 찾았다.



   책의 수명은 도서의 상태뿐만 아니라 필요도와 만족감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낡고 해진 책이라도 그 내용이, 그 책의 존재 자체가 나에게 여전한 울림과 의미를 준다면 책은 아직 당신에게 소명을 다하지 않은 것이다. 더 이상 이 책으로부터 무엇도 얻을 수 없을 때, 그것이 긍정이든 부정이든, 그때 우리는 추억을 기억 속에 간직하고 책을 떠나보내야 한다. 그 책이 떠난 자리에 다가온 새로운 책이 이제 당신에게 또 다른 의미가 될 테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도서관의 무사한 하루를 위한 손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