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 어... 어떤 책 좋아하세요?
도서관에서 나만 보면 책을 추천해 달라고 하는 분이 있다. 우리 엄마와 비슷한 연배의 이용자님은 내가 책 몇 권을 추천해 드리면 바로 대출 후 도서관을 나간다. 그래서 항상 나는 그분의 얼굴을 보자마자 뭘 추천해야 할지 두 눈과 머릿속으로 서가를 훑는다. 그러면서 우리 도서관에서 가장 많이 대출된 책들을 떠올린다. 문학이 아닌 다른 장르는 추천하기가 조심스러워 보통 문학 작품을 소개해드리곤 한다. 우리 도서관에도 북 큐레이션 코너가 있지만 이용자들의 손이 자주 닿는 곳은 아니다.
도서관에서 일하면 책을 많이 보냐는 질문도 가끔 받곤 하는데, 책은 좋아하지만 책을 볼 시간이 없다. 우리 도서관은 운영시간에 비해 인력이 부족해 한 명이 여러 가지 역할을 다 해야 한다. 우아하게 컴퓨터를 하는 것 같지만 지자체 담당자가 요구하는 서류를 작성하거나, 어떤 책을 구매할지 결정하기도 하고, 홍보를 위해 사진을 찍기도 하고, 새로운 책이 들어오면 등록을 하는 작업도 하고 매일매일 여러 가지 업무가 기다리고 있다. 물론 민원응대가 가장 1순위기에 무슨 일을 하다가도 문의가 들어오면 CTRL+S를 누르고 자리에서 일어선다.
첫 문단에서 얘기한 책 추천을 요청한 분께 소개해드린 책은 <불편한 편의점>, <미드나잇 라이브러리>, <달러구트 꿈 백화점> 등 인터넷 서점에서도 한때 인기가 많았고, 도서관 대출 순위에서도 상위권에 있는 책만 추천해 드렸다. 그게 가장 무난하고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사실 위에서 언급한 책들이 개인적인 취향은 아니지만 내 취향의 책들은 이용자가 좋아할 가능성이 낮으니 최대한 배제한다. 도서관에 비치할 책을 구매할 때도 내 취향의 책은 목록에 넣지 않는다. 내가 꼭 보고 싶은 책이 있을 땐 내 거주지 근처의 큰 도서관의 홈페이지에서 희망도서로 신청한다.
그럼에도 내가 우리 도서관에서 만난 책 중 딱 한 권만 추천하자면, 문목하의 <돌이킬 수 있는>을 소개하고 싶다.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001921793
책 표지를 만져보면 요철로 표현된 나선형 그림이 느껴진다. 이 소설의 중심이 되는 소재가 바로 이 나선형의 싱크홀이다. 어느 날 정체불명의 싱크홀이 발생해 주변은 폐쇄된 유령도시가 되고, 그곳에서 생존한 사람들은 각자 부수는 힘을 가진 파쇄자, 움직임을 멈추는 정지자, 변화 이전으로 되돌릴 수 있는 복원자의 초능력을 가지게 되었다. 신입 수사관 윤서리는 부패 경찰을 도와 싱크홀 생존자 암살 작전에 투입되면서 초능력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처음 몇 페이지는 이 소설의 세계관을 이해하며 전개를 따라가느라 버거울 수 있지만 중반 이후로는 계속 이어지는 반전에 눈을 떼지 못하고 빠르게 페이지가 넘어간다. 그리고 가장 끝 장의 마지막 대사가 긴 여운을 남기며 소설이 끝난다. 개인적으로는 원하는 결과가 나올 때까지 수 천, 수 만 번의 처절한 시도를 반복하는 주인공 윤서리의 마음이 책을 덮을 때까지 깊게 와닿았던 소설이었다.
책을 추천하는 건 여전히 조심스러운 일이다. 투자나 재테크와 같은 분야는 추천할 수도 없고, 나 또한 도서관의 장서를 모두 다 읽어본 게 아니니 개인의 취향을 반영해 소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돌이킬 수 있는>의 판타지적 요소는 30대 여성인 나에게 매력적이었으나 도서관의 주 이용층인 어르신들에게는 그렇지 않을지도 모른다. 언젠가 내가 나만의 공간을 열고, 작가로서 책을 출판하게 되면, 그때는 내 책을 추천해 드릴지도 모르겠다. 이거, 제가 쓴 책인데 한 번 읽어보시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