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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보람 Feb 28. 2024

잊으신 물건은 없으신가요?

분실물은 꼭 찾아가세요


1.

   해가 조금 기운 오후 3~4시쯤 도서관에 들어와 저녁 9시가 다 됐을 때쯤 도서관을 떠나는 할아버지가 있다. 항상 노트북과 스탠드를 가지고 다니며, 자리에 앉으면 노트북을 켜고 무슨 일을 하시는지 노트에 계속 뭔가를 적고 계신다. 언제부턴가 할아버지가 떠난 자리에는 어느 날부터 필통, 노트 한 권, 텀블러 하나가 쌓이기 시작했다. 하나둘씩 챙겨 드리는 게 늘어날 때마다 연세가 있으시니 깜빡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혹시 어디 아프신 건 아닌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아버님, 이거 아버님 거 맞으시죠? 어제 놔두고 가셨어요."


   "아이고, 내가 치매가 있어."



   어르신은 더 설명하지 않았지만 이 말에서 이미 일상에서 어느 정도의 불편함을 느끼고 있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본인이 직접 치매라는 단어를 말하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을까. 그게 사실이더라도 납득하기 어려웠을 텐데. 안타까운 마음에 말을 잇지 못하고 물건만 조용히 어르신의 자리 위에 놓아드리고 돌아섰다.



2.

   도서관의 분실물은 아주 다양하다. 책에 잠시 꽂아둔 책갈피에서부터 고가의 핸드폰(보통 깜빡 두고 갔더라도 찾아간다), 혼자 남겨진 블루투스 이어폰 한 짝, 핸드폰 충전기 같은 전자기기부터 머리끈, 각종 헤어 액세서리, 손수건,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은) 가방, 그리고 현금까지도.



   크리스마스이브의 오후, 그날도 조용히 도서관을 한 바퀴 도는데 문학 서가 앞에서 바닥에 떨어진 현금을 발견했다. 꼬깃꼬깃 접힌 만원 지폐가 한 장씩 세 개였다. 나는 일단 그 삼만 원을 주웠고, 누가 떨어뜨린 지 알 수 없는 상황이라 주변 사람에게 물어보는 건 어렵다고 판단했다(물어보면 다 자기 것이라고 할지 모르니). 조용히 자리로 와 CCTV를 돌려보니 초등학생쯤 된 한 어린이의 외투에서 지폐가 떨어지는 게 보였다. 아이는 지금 도서관에 없다. 지폐가 떨어진 현장의 CCTV로는 어린이의 일행을 볼 수 없었고, 다른 CCTV로 어린이의 동선을 따라가 보았다. 어린이들이 혼자 오는 경우는 거의 없고, 그날은 주말이라 분명 가족과 같이 왔을 거라 짐작했기 때문이다.



   CCTV 속 아이는 다른 아이들의 옆에서 책을 꺼내보다가 다시 넣었다가를 반복하고 있었다가 일행과 함께 도서관을 나서는 모습이 보였다. 3만 원을 떨어뜨린 아이와 같이 나간 여자아이 1명, 남자아이 1명은 인근 지역에 살며 일요일마다 아빠와 함께 우리 도서관에 오는 남매였다. 이들과 일행이라니, 다음 일요일이면 돌려줄 수 있겠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분실물로 현금을 가지고 있다는 건 꽤 부담스러웠고, 잃어버리지 않을 곳에 보관하긴 하겠지만 그래도 많이 신경 쓰이는 일이었다.



   일주일을 기다리고, 해가 바뀌었지만 아빠와 아이들은 오지 않았다. 현금을 가지고 있는 게 너무 부담스럽기도 하고 주인을 아는데 주지 못하는 게 답답해서 아이들의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 정중히 방문을 부탁드렸다. 알고 보니 돈을 흘린 아이와 그 아버지의 아이들은 사촌지간이라고 한다. 그다음 일요일에 아이들과 함께 온 아버지에게 3만 원을 건네드리고, 사건은 일단락되었지만, 만약 그때 내가 지폐가 떨어진 걸 보지 못했다면, 누군가가 그 돈을 가져갔다면.... 어떡하지? 상상만으로 아득하다. 



   15년 전 어떤 영화관에서, 영화를 끝까지 보고 출구로 나왔더니 눈에 보이는 한 개의 큰 쓰레기통 위에 적혀있던 문구가 생각난다.


'정리는 저희가 하겠습니다. 잊으신 물건은 없는지 확인해 주세요'



   그 뒤로 항상 자리를 비울 땐 놔두고 간 물건은 없는지 여러 번 살피게 된다. 여기에 두 번 다시 오지 않을지도 모르고, 타인의 손이 닿으면 내가 남겨둔 흔적은 없어질 테니까. 그런 의미에서 도서관에 두고 가신 게 있다면, 꼭 찾아가세요. 기억을 잊어버리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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