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모르는 시절을 살았던 사람들에게 현대 기술의 발전은 어렵고 버겁다
책은 처음 등장한 시점부터 지금까지 그 형태가 크게 달라지지 않은 제품 중 하나이다. 여전히 내지는 거의 종이로 이루어져 있고, 표지 또한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 보통은 종이를 재료로 후가공을 거친 경우가 대부분이다. 분명 책의 형태는 그대로인데, 책을 소비하는 방법은 많이 달라졌다. 종이책이 주류이긴 하지만 전자책이나 오디오북 등 심지어는 책을 직접 읽지 않아도 대신 요약해 주는 유튜브 쇼츠도 등장했다. 손에 직접 들지 않아도, 눈으로 활자를 따라가며 읽지 않아도 되는, 이전엔 상상도 못 했던 모습으로 책을 만날 수 있다.
어르신들에게 요즘의 공공도서관은 진입 장벽이 높은 장소이다. 여기가 뭐 하는 곳인지 궁금해서 들어와 본 어르신들은, 이것저것 책을 꺼내보다가 책 한 권을 데스크로 가져온 후 주민등록증, 복지카드 등을 내민다(가끔 던지시는 분도 있다). 이걸로는 대출할 수 없다고 말하면 그럼 뭘 적으면 되냐고 묻는다. 아마 8-90년대의 옛날엔 어떤 양식이나 대장을 기입하는 방식으로 대출/반납이 이뤄졌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처음 도서관을 이용했던 2000년대 초반에는 이미 카드형 회원증에 바코드를 찍어 사용하던 시점이었다. 시간이 지난 만큼 세상은 많이 바뀌었는데, 아직 어르신들이 이를 따라가기엔 무리라는 생각이 많이 든다.
처음 회원가입부터 난관이다. 우리 도서관은 대출 서비스를 이용하려면 지역 도서관 홈페이지에 회원으로 가입해야 하는데, 그 과정을 하나하나 따라가는 게 컴퓨터 사용 자체가 쉽지 않은 어르신들에게는 생소하고 어렵다. 본인 인증까지는 어찌하더라도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입력할 때 문제가 시작된다.
"아이디가 뭐여? 난 그런 거 몰러"
물론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스스로 만들기 어려워하시는 분이 많아 가입 과정도 도와드린다. 회원증 카드까지 손에 쥐어드린 후 잃어버리면 안 된다는 당부를 거듭하고 나서야 겨우 한시름 놓는다. 그런데 처음엔 아주 나이가 지긋한 분들이 아닌, 우리 부모님과 연세가 비슷한 분들이 회원가입을 어려워하실 땐 이해가 안 되기도 했다. 50년대에 태어나 평생 사업을 했던 우리 아빠, 60년대에 태어나 약 40년간 사무직으로 한 회사에서 근무한 엑셀 달인 우리 엄마에게 회원가입 정도는 전혀 어렵지 않은 일이지만, 이곳에서 만난 분들에겐 쉽지 않았다. 이들에게 도서관을 이용하는 과정은 조금 더 편해져야 한다. 할 수 있는 만큼 도와드리면서 불편함을 줄일 수 있도록 하지만 항상 더 좋은 방법이 없을까 생각한다.
예를 들면, 우리 도서관에 없는 자료 중 이용을 원하는 자료는 '희망도서' 제도를 통해 신청할 수 있다. 우리 도서관의 희망도서 신청 과정은 온라인과 오프라인 두 가지를 모두 사용한다. 하지만 온라인으로 신청하는 것보다 오프라인으로 신청하는 분들이 훨씬 많다. 도서관에 와서 희망도서명을 수기로 적을 수 있는 양식을 비치하고, 어르신들이 오며 가며 말씀하시는 책 중 자주 언급되는 것이 있으면 눈치껏 구매 목록에 포함시키기도 한다.
어르신들이 도서관에 오는 이유는 책을 보기 위해서만이 아니다. 소소한 도움을 받기 위해 방문하기도 한다. 깨끗한 화장실을 이용하고, 스마트폰 사용법을 물어보고, 버스가 언제 오는지 묻고, 모바일 온누리상품권은 어떻게 구매하는지 알려달라며 오신다. 어린 시절부터 컴퓨터와 인터넷 등 현대 기술에 익숙해진 나에게는 이 모든 게 누워서 떡 먹기지만, 모든 것이 편하고 전산화된 시대가 어르신들에겐 매일매일 부담만 더 가중시키는 것 같다. 편리하지만 쉽지는 않은 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