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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보람 Mar 03. 2024

전화번호 070

소통은 멀고 수신 거부는 가까운 그 번호

   우리 도서관의 전화번호는 070으로 시작하는, 인터넷 전화를 사용하고 있다. 지역번호로 시작되는 전화번호였으면 좋았겠지만 이건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전화번호가 070으로 시작하다 보니 여기에 얽힌 에피소드도 꽤 많은데, 가장 큰 것은 바로 수신거부와 관련된 것들이다. 070으로 시작하는 번호로 광고 전화나 스팸 문자들이 많이 오다 보니 수신 거부를 하는 사람들이 매우 많고, 어르신들의 경우도 자녀들이 070으로 시작하는 번호를 수신 거부 처리해 주는 경우가 많다.



   우리 도서관은 반납예정일 전날에 반납 안내 문자를 보낸다. 당연히 도서관 대표 전화번호인 070 번호로 문자가 전송되고, 대부분의 이용자는 정상적으로 반납을 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연체가 되지만 가끔 문자를 받지 못했다며 전화로 화를 내시는 분들이 있다. 070으로 시작하는 번호의 전화와 문자를 모두 수신 거부 하더라도 발신은 정상적으로 되는 모양이다. 아무튼 전화로 화를 내는 분들께는 언제, 몇 시, 몇 분에 문자를 보냈으며, 반납 안내 및 연체도서 안내도 언제 몇 번이 발송되었는지 정확하게 말씀드린다. 070 번호가 수신 거부 처리되어 있는지 꼭 확인하시라는 말도 덧붙인다. 어르신들은 수신 거부가 되어 있는지 아닌지도 모르는 경우가 많아 핸드폰을 내밀어 보여주시면 화면의 메뉴를 눌러가며 같이 확인한다. 그러면 보통은 더 말을 얹지 않고 거기서 끝내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문제는 같이 확인할 수 없는, 전화로 자신의 말만 진실임을 호소하는 사람들이다.








   어느 날 오후, 출근해 보니 동료 선생님의 눈빛이 다급했다. 한 이용자가 동료 선생님께 전화로 자신은 책을 반납했는데 연체가 돼서 다른 도서관에서 책을 못 빌린다며 소리 지르며 화를 냈다고 한다. 어떻게 대처할지 몰라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기에 다시 천천히 사실을 되짚어봤다. 이용자는 반납 안내 문자를 받은 적이 없다고 했고, 도서관 시스템에서는 안내 문자 수신에 동의하는 것으로 나와 있었다. 그런 경우 문자를 받지 못했다면 높은 확률로 070으로 시작하는 번호를 수신거부했기 때문이다. 그 이용자의 번호로 다시 전화를 걸어보니 신호가 가지 않았고, 전화와 문자 모두 수신거부 되어 있을 가능성이 더욱 높아졌다. 도서는 기간 안에 반납되지 않아 연체로 처리됐고, 이용자는 자신은 그 책을 반납했다며 강하게 주장하는 상황이었다. 나와 동료 선생님은 도서관을 뒤집어 탈탈 털 기세로 반납했다는 책을 찾아봤지만 책은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았다.



   도서관의 전화기로 이용자에게 전화를 걸어보았으나 070 번호로는 전화도, 문자도 받지 않았다. 할 수 없이 핸드폰으로 전화를 했고, 070 번호를 수신거부 했냐고 물으니 자기는 그런 건 모른다고 한다. 나는 우리 도서관에서 반납 안내, 연체도서 반납 요청 문자를 5회에 걸쳐 발송했으며, 발송한 날짜와 시간도 알려드렸다. 확인해 보시라는 말씀만 드리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그분에게서 회신은 오지 않았다.



   그다음 날 저녁 8시가 넘은 시각, 처음 보는 젊은 여자분이 도서관을 두리번거리며 둘러보더니 책 한 권을 데스크에 내려놓고 빠르게 사라졌다. 반납 처리를 하고 보니 전날 전화로 호통을 쳤던 그 이용자가 대출했던 책이었다. 하하하. 그 시각, 아무도 없는 도서관엔 나의 바람 빠진 헛웃음만이 가득했다.



   오랜 시간 여러 회사에서 근무했지만 070 전화번호를 사용하는 건 처음이었다. 나 또한 일반인의 입장에서 070 번호로 걸려오는 전화는 받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늘 고민이었고, 주로 받지 않는 쪽을 선택했다. 가끔 컴퓨터 앞에 있을 때 전화가 오면 꼭 구글에서 그 번호를 검색해보곤 했다. 대부분은 보험, 설문조사 등 광고 전화였다.  일일이 검색해 보는 일은 꽤나 귀찮지만 내가 원하지 않는 쓸데없는 전화에 내 목소리도, 기분도 낭비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역번호를 쓸 때는 전혀 걱정하지 않았던 일이, 지금은 이용자와 도서관의 소통을 가로막는 크나큰 장벽이 되고 있다. 인터넷전화를 쓰는 게 지역번호를 쓰는 것에 비해 얼마나 비용 절감이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현장의 불편함을 안다면 개선이 필요할 것 같다. 070으로 오는 전화는 다 광고나 스팸전화라는 인식을 변화시키는 것보다 도서관 전화번호를 바꾸는 게 더 빠르게 이용자와의 간격을 줄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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